설교

마태복음 7장

스네어 2007. 11. 9. 20:34

마 7장 13-14

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합심기도 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지난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했다면 용서를 구하고 진실히 살았다면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사합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마늘도둑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도둑이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원님이 생각하기를 마늘도둑을 없애기 위해 일벌 백개하길 원했습니다.

세가지 벌을 말을 했습니다. 세가지중에 한가지를 택하거라

1. 마늘 100개 먹기을 것이냐

2. 곤장 50대를 맞을 것이냐

3. 벌금으로 금화 한냥을 벌금으로 낼 것인가? 한가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 도둑은

한참을 고민하다 마늘 100개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 먹으니 먹을 만 합니다. 한 개 두 개 먹다보니 입이 얼얼합니다. 속도 쓰립니다.

10개 먹고 한참을 생각 20개 정도를 먹고 도저히 못 먹겠습니다. 차라리 곤장을 맞겠습니다. 곤장 50 맞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도 한 대 두 대는 맞을만하지만 포기합니다....15대...20대 맞고 ....안되겠습니다. 차라리 금화 한냥 벌금을 내게겠습니다. 벌금을 낸 후에 겨우 풀려났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마늘도둑이라면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뭐 마늘, 곤장, 벌금 뭐든 하나를 택하겠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결정, 선택을 올바로 하지 못함으로 이 모든 벌을 한번 씩 맛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는 여러 교훈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슨 선택이든지 그 선택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합니다.

 

7장 하반 절에 비유 문과 길, 나무 비유, 지혜로운 건축자의 비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조법을 통해 나타나 있습니다.

대조를 하면서 무엇을 하길 원합니까? 그 중에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두 가지 문이 있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넓은 문 좁은 문, 넓은 길 좁은 길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고민이 많은 생활입니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이 마냥 즐겁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러한 욕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길을 포기하고 가는 길이 좁은 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적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길은 갈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가면 되는 곳 그곳이 넓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쉽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길 결국이 멸망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주님은 좁은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왜 적을 까요? 천국이 적어서 좁아서 그럴까요? 집이 없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요한복음 14:2절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모든 사람이 거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천국은 넓고 아름다운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줄서서 들어가야 하기에 통과하기가 어려워서 그런가요?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내어 �지 아니한다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14절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그 길을 찾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음의 편협성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타 종교에서 기독교에서 비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기독교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그들도 똑같이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못된 짓 더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의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면 그냥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실가운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 10 :9 ‘내가 문이니’, 요 14:9 ‘나는 길이니 예수님이 자신이 문이고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행 4:2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다른 이름을 주신일이 없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시골 노인이 평생소원이 청와대 들어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청와대 앞에서 그는 청와대 앞에서 말합니다. 저 안에 좀 들어가고 싶어요. 나 좀 들여보네 주세요! 그러나 앞에서 경호팀에서 말합니다. 경호팀에서는 할아버지를 만류하십니다. 안 됩니다. 방법을 묻습니다. 초청을 받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초청받은 사람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청와대보다 좋은 곳 우리도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의 초청을 받은 사람은 그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선택을 통하여

 

인생에는 두 종류의 종말이 있습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좁은 길, 좁은 문의 길의 결과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를 많이 들었습니다. 백두산의 발원된 물이 서쪽으로 가면 압록강입니다. 동쪽으로 가면 두만강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택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이 선택을 말씀합니다.

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길을 걸어갈 때 천원짜리 만원짜리 어떤 것 줍겠습니까? 저는 욕심이 많아 둘다 줍숩니다..ㅎㅎㅎ 떨어져있는 것 둘 다 주울 수 있습니다.

문과 길의 길은 좁은 길, 좁은 문이냐가 중요합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이 가기 위하면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 개 가운데서 선택이 아니라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좁은 길가기위해서는 넓은 길 가려는 것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포기 없이 바른 선택은 없습니다.

아직은 그 길이 열려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문은 닫혀질 것입니다. 너희는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대가가 지불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좁은 길, 문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다른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식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만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넓은 길, 문으로 가는 사람들을 좁은 길, 문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삶이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것입니까?

어떤 삶인 가요!!!

산상수훈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 애통한 것, 온유한 것, 화평케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 쉽게 노하지 않는 것, 간음치 않는 것, 마음으로라도 정결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보복하지 않는 것, 원수를 사랑하는 것, 올바른 금식하는 것, 하늘에 보화를 쌓아 놓는 일 등등 좁은 길의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희생이 있으나 그런데 이 일 가운데는 승리가 보장되어있습니다.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합니다. 마 28:18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길을 미리가신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이 길로 나아오라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이 도와주시고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부릅니다. 그 땅에서 목자들이 다투니깐 롯을 부릅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결과는 넓은 길 넓은 문으로 향했으나 멸망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선택이 있었습니다. 넓은 길, 문을 선택하지 않습니까? 생각건데 그곳에는 축복과 기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결코 축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던 아브라함가운데는 그의 길은 좁은 길 좁은 문이었으나 그길 가운데 축복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만족이 아닙니다. 삶에 부요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가면 그곳에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 30:19 생명과 사망을 우리 앞에 두셨다 복과 저주를 두셨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이중에서 우리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은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길 사망의 길이 있다. 복의 길 저주의 길이 있다. 생명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복의 길은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길 원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핍박을 당해도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길 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의 길을 소유했습니까? 누가 꼬득이고 누가 나를 이끌어 내리려 하여도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생명의 길로 나아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 뭐라해도 그 생명의 길을 가시길 원합니다.

기쁨으로 그 길을 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장에서 말씀합니다.

25절부터 35절 말씀을 볼까요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가 될만한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어떤사람이 제자인가 그사람들은 자기의 형제와 자매, 부모를 또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을 제자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말은 자신이 사탄의 장난으로 넘어질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 싸움하면 가장 분노할때가 언젠가요 그때는 부모욕하면 분노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궁극적으로 분노할수 있고 그것 때문에 신앙을 버릴수 있는 요소를 제거하라

두 번째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이것은 목숨의 가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장식을 하라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라는 것 이것은 목숨을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큰 도전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3절에는 소유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걸리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나아가는 길 그길이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간에 예수님은 비유를 드셔서 말합니다. 건물을 건축하다가 중단하는 것 그것은 무의미하다. 왕이 이웃나라가 전쟁을 왔을때 그 진영의 숫자보다 우리 진영이 부족하면 화친을 하라 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도 예수를 따를때 대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그것이 세워질 것인가? 싸울때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것인가요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선택을 했을 때에는 그길을 담대히 따라가라 그것이 오늘 본문의 협착하여 찾는 이가 없는 데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을 가실까요 생명의 길 좁은 길을 가는 우리가 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 속에서 제자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이 땅의 소금이고 상수리나무 밤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이 땅의 거룩한 씨라고 하는 데 그 씨가 될 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에 후회가 없는 모든 성도들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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