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마5:1-12

스네어 2009. 11. 20. 16:36

팔복의 의미 3 (마5:1-12절)

예수님께서 팔복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먼저는 하나님뜻대로 살게하시려는데 있고

두 번째는 현재의 삶가운데서도 천국의 모형으로 살아가라고 주신것입니다.

사실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팔복은 이 세상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려는 복은 일시적이요 잠시적이라면 팔복은 영원히 소유하여 하나님나라에서도 누릴 수 있는 복이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의 복을 받은것같이 팔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복을 누리는것같이 팔복을 누리려고 합니다.

세상복을 받고 세상복을 누리려 하듯이 하려고 하면 더욱더 공허하고 소외당하는 마음뿐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할 팔복은 영적인 복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심령이 가난해도 복입니다. 애통하는 일을 만나도 복입니다. 어느 누구도 온유한마음으로도 대할 수 있고 의를 위하여 살 수 있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청결하게되며 화평케 하는 peace maker가 되는 복을 갖는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할때에도 그냥 내 마음만 쏟아놓으면 아무소용이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이 들으신중에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없이 하는 기도 아무의미가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기도 공중에 퍼지는 메아리요 독백이되는것입니다. 기도는 독백이아닙니다. 들으시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 가르켜 주신 팔복을 통해서 하나님과 진지하게 나누는 대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팔복이 그냥 순서없이 써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앞서 말씀하신 단계가 없이는 다음단계에 들어갈수없는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첫 번째 관문인 마음이 가난한 상태에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는것입니다.

가장먼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은 마음이 가난해지는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풍요로워질려고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잘살아볼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굉장해지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가난을 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가난해지라는 말씀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이 법은 적용되고있는것입니다. 현대사회에 “군중속에 고독”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풍요속에 빈곤”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없는것입니다.

여럿이 있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함께 해줄 이웃이 없고 친구가 없고 사람이 없는것입니다.

내가 먼저 가난해져야 다른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것이며 내 심령이 가난해져야 다른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는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를 원문그대로 표현대로 정리해보면 “마음이 거지처럼 쭈그리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자 ”아무도 돌보아주는 이 없이 추운겨울에 양지바른곳에 쭈그리고 앉아서 올데갈데도 없이

애처롭게 앉아있는 상태 우리는 그러한 상태를 금방 떠올릴수있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런상태에 있는자가 복이있다는것입니다.

항상 죄인의식으로 살아가는 삶 어디에 내 자신을 내놓을수없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앞에서 빚진자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절실해지는자, 가난해지기를 원하는자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다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앞에 내놓을수는 없지만 하나님만이 알고계시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그 약점을 통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앞에서 죄인처럼 늘 죄의식으로 살아가는 자세를 참 복이 있다고 오늘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함으로서 절실해지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진정한 복

첫 번째관문을 통과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온유한자가 되는것입니다.

온유함이란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로 모세를 말합니다.

그의 성품이 온유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불같이 화를 내며 반석을 칠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는 온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온유함이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인것입니다.

내중심에서 살지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

다른 사람을 보면 아파할줄아는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슨일을 대할 때 다른사람의 입장에서 보라고 말합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말입니까? 진정한 마음은 상대를 먼저생각할 때 온유해지는법입니다.

그런사람이 다른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할수있다는것입니다.

온유한자는 애통하는 마음도 갖는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즐거운마음이 아닙니다. 가슴을 끌이며 심히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누가 누구를 위하여 애통할수있다는 말입니까? 사랑이 있는자가 마음이 가난해서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자가 다른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온유함이 있을 때 비로서 애통의 자리에 함께 앉게 되는것입니다.

이렇게 애통할줄 알아야 의를 위하여 목마를줄도 알게된다는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옳은일을 위하여 살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내자신의 이익이 탈수되고 오직 내 이웃과 형제들을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래도 제 이익이 있어야 그 문제에 관여하고 간섭하여 관심을 갖는것입니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다른사람을 이해할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서 세상을 향해 의로운 마음을 가질수있다는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의로운 마음을 가진자가 되면 모든이들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애처롭게 대하는 마음 내가 가서 도와주지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되는 마음, 도저히 저 사람 혼자서는 해낼수없겠다고 생각되는 상태 그런상태가 긍휼히여김을 갖고저 하는 마음인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보시기에 혼자내버려두어서는 멸망 당할것같기에 내어버려두실수가 없었던것입니다. 가서 내가 간섭하지않으면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기에 독생자를 보내주신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에서부터 출발한것입니다. 이것을 연민이라고도 하는데 전라도 사투리로 짠해서 불쌍해서 자꾸 마음이 가는상태가 되는것입니다.

 

이러한 긍휼한 마음은 결국 모든이들로 하나되게 합니다.

긍휼한 마음은 내 자신의 희생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먼저 손내밀어야 하고 내가 먼저 희생해야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저사람은 어떻게 하나 그런 계산이 들어있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할지라도 내가먼저 희생하고 내가먼저 수고를 한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살아갈려고 한다면 당연히 모든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되는것아닙니까?

마음의 청결을 가진자 -- 마음에 두마음을 가지지않고 깨끗하고 단순한자에게 화평의 길을 주시고 어느곳에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모든이와 더불어 하나되는것입니다.

이러한마음에 이르는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건설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시고 싶으신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이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추해도 그리고 믿는자들을 향해 유혹이 강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팔복을 통해 강건질수 있고 강건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상대로 한 영적전쟁에서 늘 승리할수있는것입니다.

팔복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신앙의 중심으로 산상수훈의 사랑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중심의 윤리로서 간직해야 되는것입니다. 율법의 성취를 위해서 율법의 정신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랑의 자세 그 사랑은 믿음과 소망이 포함된 중요한 정신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러한 팔복의 근본된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는 기도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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