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자의 행복(마5:5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향한 간절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수있도록 우리의 요구대로 풍부한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인격의 변화를 원하시는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생활의 부요에 있는줄 알고 외적인 환경을 탓하며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집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이것저것 다 바꾸어도 소용이 없는것입니다. 이 세상의 환경을 아무리 변화시켜도 잠시뿐 그것으로 행복하여지지 않는것입니다.
변화되어야할 것은 나 자신이며 내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복을 위한 마음을 온유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복을 마음으로 받게 하셨는데, 첫 번째 관문인 가난한 마음은 마음문을 여는것이고 두 번째 관문인 애통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가득찼던 마음에 있는것을 회개함으로 비우는마음이고
세 번째 관문인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는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그리고 착하게 살려고 하면할수록
“선한 것이 무슨소용있는가? 사람이 그렇게 순해 빠지면 되느냐고 악착같아야지 합니다.
사람이 약삭빠르고 악해져야살지 사람이 좋으면 바보가 되는거야 ”하면서 마음속에 우월감과 욕망으로 열등감과 악한마음으로 가득차게 하는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비긋합니다. 우리에게 강팍한 것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온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온유한자가 행복하다고, 어쩌면 악하고 강하고 사나운자가 세상을 지배하는것같지만 그러나 참행복은 온유한자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온유한마음은 성령이 우리마음을 지배할 때 생기는 마음인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자신만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겸손한 마음인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라우스”라는형용사에서 온 단어입니다.
겸손하고 이해심이 있으며 다른사람에게 친절하여 서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늘이 준 성품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자만이 온유해질수 있습니다. 온유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자들만이 소유하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인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온유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마11:29절을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온유함이셨습니다. 말구유에 나심으로 시작된 그의 온유한 인생은 십자가에서 완성될때까지 그리고 죽으심에 들어갈때가지 온유자체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53:7절에서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더욱 드러나 보이는것입니다.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 입을 열지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마음이온유하셨고 죽기까지 온유한 일생을 사셨던것입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2:5-8절)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고저하는 마음임과 동시에 순종입니다. 그래서 살다가 슬픔을 당하여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문제가 닥쳐와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조용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이려니 하면서 참는것입니다.
때로는 이 세상이 부조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선한자가 고통을 받고 악한자가 형통합니다.
그럴지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악한자의 흥하는것에 대해 언제나 투기하지말고 불평하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온유한 사람은 불평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왜냐하면 불평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뿐만 아니라 불평은 마음에 교만으로 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십시오 결코 불평이 없었던 것을 봅니다.
형제들에게 팔렸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습니다. 어느곳에서도 불평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자신의 잘못들을 생각하며 근심하고 걱정하는 형제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지않습니까?
우리도 이러한 마음을 가질수는 없겠습니까? 온유한 마음을 말입니다.
온유한 성품을 가진 요셉은 가정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받았고, 보디발의 집에서는 총무가 되었으며, 감옥에서는 신임받는 죄수가 되었고, 석방된후에는 바로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나의 길을 여호와 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과 같이 온유한 성품을 소유하는 여러분되시기를 바랍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는것입니다.
실낙원 을 썼던 밀턴은 영국의 대문호로서 장님이었지만 그의 부인은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버킹검 공작이 시내를 지나다가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밀턴이 아름다운 미모의 부인과동행하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말하기를
장미꽃과같이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사시니 행복하시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밀턴은 그에게로 가까이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고 합니다.
“장미꽃은 아름다우나 만지면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가시가 있습니다. 마음에 가시가 있으면 옆사람을 찌르는겁니다. 건드러 보면 잘알 수 있습니다. 남편을 찌르고, 가족을 찌릅니다. 동료를 찌르고 아내를찌릅니다.
그러므로 서로 온유해질 때 행복이 있는것입니다.
“아무도 훼방하지말며 다투지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딤3:2)말씀하셨고, 롬12:18절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골3:13절에는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라고 했습니다.
온유는 생명이요 장수의 비결입니다. 온유는 분을 품지않게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온유한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것임이요 합니다.
여기서 땅의 기업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받은것처럼 믿음에 사람들에게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님지배하시는 미래에 약속된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새하늘 새땅, 하나님나라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기업입니다.
성령에 열매가운데 하나인 온유한 마음으로 성숙한 인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처럼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하겠습니다.
베드로의 성품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아시지않습니까? 그의 불같은 성격은 성경 여러군데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만나던 갈릴리바다에서, 십자가를 지시기위해 기도하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풍랑중에 물위를 걸어갈 때, 변화산에서, 그는 무척이나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요한도 사마리아 지방을 지날 때 거절하는 사마리아를 보면서 불을 내려 사마리아사람을 없애자고 하는 것을 보면 성격이 대개 급한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유한 인격을 위하여 연단하십니다. 인간들을 사용하실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연단해서 쓰시는 것을 봅니다. 시련을 통해서 단련한 후에 쓰시는것입니다. 고집을 꺽고 사정없이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치시는것입니다.
더러는 세례를 통해서, 더러는 성령의 뜨거운 불길로, 더러는 연단의 방망이로 때려서라도 쓸만한 그릇으로 빗어가십니다. 온유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36:26절의 말씀을 보면 “새영을 너희속에 두고 새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것이며 라고 합니다.
마음이 부드러운 것 온유한 마음입니다. 굳은마음 강팍한마음이요 불순종의 마음이요 교만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변화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심령이 온유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행복이 내 행복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마음이되어 그리스도께서 주기원하시는 그놀라운 은혜가 우리안에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