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큰 체험(마17:1-8절)
우리들의 신앙에 체험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은혜의 체험이 많을수록 그 만큼 우리의 신앙은 견고하고 더 힘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체험이 많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철학도 종교적의식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만나는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하나님을 만난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져오고 있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 의해서 지금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옛속담에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불을 만져본사람만이 불의 뜨거움을 알고 성령의 뜨거운열정을 맛본사람만이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직접 체험을 해야 실감이 난다는뜻입니다.
그런점에서 신앙은 체험을 통해 점점 굳게 다져지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여 치료받은 다음에는 누구보다 치료에 큰 확신을 갖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업에 실패한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이 재기했을 때 그는 어떤어려움이 와도 절대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는것과 같습니다. 신앙의 체험은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팔레스타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변화산으로 가셨습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형되시더니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찬란한 모습으로 말씀을 나누는것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져 있을대 하늘에서는 구름속으로부터 주의 음성이 들려오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 그 말을 듣는순간 두려워 떨고 있는데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들려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신비한 체험을 제자들에게 하게할때에는 어떤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많은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많은 지지를 받고있는 학설이 제자들에게 “예수가 누구인가”를 확신케 하려는데 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큰 믿음을 가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체험하게 될 때 큰 일을 감당하는 일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점에서 저와여러분에게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 확신케 하는 신앙의 큰체험, 은혜의 체험들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제자들이 경험한 예수님을 보면
1.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보다 더 밝게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평상시얼굴이나 모습이 아니라 전혀다른모습
즉 하나님의 그 본체의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를 본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이후 재림하셔서 영원히 함께 살게될 천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로만 듣던 엘리야와 모세도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보이지않고 승천한 선지자의 대표요 모세는 하나님께 직접 율법을 받아서 기록한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을 체험한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고자 하신의도가 분명하다면 함께 갔던 제자들이 다른제자들에게 본 것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눅9:36절에 보면 “제자들이 자신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않았다”고 증거하고있는것입니다.
이상하지않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다른제자들에게 본 것을 말해주어야 하지않겠습니까? 그 해답은 마가복음9:9절로 갑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니 인자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날때까지는 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말라 하시니”
10절에 보니까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자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가 예수께 묻습니다. 왜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엘리야가 왔는데 대우하지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엘리야는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던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변화산 사건은 바로 16장21-28절까지에서 장로들과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많은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난후에 있어진 사건이라는데 그 의미가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는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를 가지신 부활의 주님을 보게 하셨던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를 모르는 제자들은 화려하고 멋진 예수님님의 영광의 모습과 꿈에도 그리던 엘리야와 모세를 직접대면하고보니 얼마나 멋있고 얼마나 좋았으면 산위에다가 초막을 짓고 거기서 살자고 했겠습니까? 아직 때가 이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안일만을 위히여 사는 제자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과도 같은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죄와 문제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는 그 때에 이 사실을 알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신것입니다. 그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면 그 주님을 만나기만하면 세상문제, 엄청난고통, 모든 어려움들이 도리어 충만한 기쁨이 될줄로 믿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2.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듣기도 합니다.
본문5절에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들려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온 인류가 들어야할 말씀이요. 지금 우리가 들어야할 하늘의 소리인줄로 믿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인류의 길이요 삶의 진리요 영원한 생명의주인입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도 “너는 내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이 있어야 할줄 압니다. 큰 체험은 큰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큰 믿음은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행9:1-10에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은 예수님의빛과 음성을 만나고난 뒤에 비로소
편견과 아집의 인본주의가 깨어지고, 복음을 바로 알게 되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신앙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다른 것은 모두 배설물이
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체험은 반드시 큰 변화가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렵고 떨리는 신앙의 큰 체험을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변화산으로 속히 올라가야 합니다.
1) 은혜를 받을만한 장소에 가야 합니다.
본문1 절을 보십시오 “따라 높은산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비를 맞으려면 비가 내리는곳으로 가야합니다.
불을 붙이려면 불이타는곳에 가야합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한사람도, 요단강이 멈춘기적을 체험한사람도 다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은혜가 임하는 장소에 가 있었습니다.
그 장소에 있을 때 덩달아 은혜를 체험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덩달아 기도가 터질줄 믿습니다.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질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20장에서 도마는 다른제자들과 함께 하지않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못합니다. 그후 주님을 만났으나 의심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자리입니다. 벌써 은혜받을사람은 다릅니다. 각종예배, 각종 기도회 각종 성경공부에 빠지지를 않습니다. 은혜가 임하는장소에 열심히 찾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9년도에는 열심을 내어 은혜받는자리에 늘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 기도하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 은혜를 체험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지않았지만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따로 높은산에 올라간 것은 기도때문이었습니다. 눅9:28절을 보면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때에” 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체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기도할 때 방언의 은사도 예언의 은사도 체험합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하고 성령의 불세례도 받기도합니다.
기도하다가 환상도보고 병고침도 받고 신령한 체험을 받습니다. 기도하다가 잠을 자면 꿈을 통해서 응답을 받기도 합니다.
3) 예수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할때 은혜를 받습니다.
지금 우리는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만 바뀌는 때가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도 무섭게 변화하는시대입니다.
언제 어떤 변화가 우리를 기다릴지 두렵기만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예수을 따르고 있지만 확실한 신앙의 방향을 잡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변화산사건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유혹과 고통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때 보여준 변형의 사건은 오직 예수의 가치를 알게 한 것입니다.
부활이후에 만나게될 예수만이 그들의 신앙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한 빛나고 화려한 예수 그분이 우리가 소망해야할 우리가 만나야할 구주아니십니까?
그런데 우리모두는 현실앞에 서있습니다. 환난을보면 두렵습니다. 가난을보면 슬퍼집니다. 화려함을 보면 황홀해집니다. 풍랑을 바라본 베드로는 바다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물질을 바라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을 속이는 죄로 죽었습니다.
잘못된 가치관, 변화하는 가치관, 따라가면 우리는 죽습니다. 세상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을 따라가면 우리는 멸망합니다.
예수만 가치있는 존재로 보여야합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오직예수뿐입니
어떤 스페인의 화가가"최후의 만찬"을 복제하여 보급하기로 마음먹고 성심껏 그림을 그리기시작했습니다. 그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친구들이 와서 극찬을 했습니다.
그가 그린 술잔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가치를 드러내려고 그린 술잔이 더 아름답다는 말에 크게 상심하고 그 술잔을 지워 버렸다는 일화가있습니다.
지금우리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보다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은 어떤것입니까?
다 소용없습니다. 다 부질없는짓입니다. 인생의 모든경험을 했던 솔로몬이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며 헛되도다” 영원히 변치않을 “오직 예수만 바라보는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은혜를 체험하는 자리에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듣고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을줄 믿습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오직 예수뿐인줄 알아 예수만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될줄 압니다.
아니 신앙의 큰체험을 하게되면 오직 예수만 보이게 됩니다.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큰일을 감당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2009년도에는 큰 은혜를 체험하여 예수가 누구신가를 확실히 아는 큰복을 받고 주님위해 크고 멋지게 쓰임받는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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