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1:1-11
삶의 우선권을 유지하지 않은 결과가 무엇인가?
학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시기에 성전건축 중단 시에 학개와 스가랴에게 임한 말씀이고 같은 배경의 말씀이 되는 것은 스가랴의 말씀과 같은 시대 같은 사건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있습니다. 세 번에 걸쳐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606년 597년 586년 완전 멸망합니다. 이스라엘 땅을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536년에 귀환하고 있습니다. 1차 포로기가 606년인 것을 보면 70년 만입니다.
그들은 돌아와 처음으로 하는 일이 성전 건축이라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주변 나라에서 바벨론에게 편지를 보내고 사신을 보내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여호와 성전이 있으면 어떠한 나라도 정복하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성전이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조공을 드리고 바벨론도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강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이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하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보면 그들은 충분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멀리 아프리카로 서부 아시아로 유럽으로 조공을 들여 올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주변 국가에서 이렇게 방해를 하므로 다리오왕 2년 520년입니다. 16년간 건축이 지연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2절에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건축할 시기가 아니야 아직 때가 아니야 주변에 반대가 있어 지금우리의 처지를 봐야지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아니야 내가 할 수 없어 그러나 그것이 우리기준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우리가 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4절에 말씀합니다.
성전은 황패했는데 너희는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 판벽이라는 말이 어렵습니다. 이이야기는 벽과 지붕에 장식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계속 이야기하십니다. 5절입니다. 너희의 행위를 살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지속되면 그 결과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너희가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고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않고 마실지라도 목마르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일꾼이 삯을 받아도 구멍 뚫린 전대에 넣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무엇인가요?
만족을 위해 살지만 만족이 없다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건축은 지연되고 자기의 만족을 위해 살 때
10절에 하시는 말씀이 하늘은 이슬이 그치고 땅은 산물을 그쳤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면돼.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있어 맞는 말이지만 맞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육공동체이기에 우리의 삶엔 영혼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육도 잘됩니다. 육이 잘되면 영혼도 잘됩니다. 그래서 영육이 모두가 중요합니다. 이것에 더불어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해 육을 위해 수고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수고하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일하는 것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칙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그 안에서 불어버리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관심이 있으시기에 애정이 있으시기에 그렇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불의한사람이 불의한 일로 재산을 증식하고 그가 잘되어도 그에겐 그것은 자신이 짊어질 큰 죄악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가 그러한 상황이 되면 하나님은 죄악의 짐을 가볍게 하시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불어 버릴수도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많은 것을 파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은 죄의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의 모습이 어떻게 되나요.
창세기 3장 18절에 보니 너로 인하여 땅에 저주를 받고 소산이 마르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파괴가 왜 이루어지나요. 하나님의 뜻을 모른 결과입니다.
또 자신과의 관계가 깨진다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덴에서 옷을 벗던 안 벗던 상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의 상실은 자신과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타인과의 관계도 망가뜨리게 됩니다. 서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 치마를 입고 다니게 됩니다. 수치를 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고 하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려주지 않으면 그 수치를 가릴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와 땅의 저주 왜 일어납니까?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이 땅 가운데 풍년이 왔습니다.
그러나 저 북녘 땅을 보세요. 하늘에 비가 그치고 땅에 소산이 없음을 바라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믿습니다. 이 땅의 800만 크리스찬의 부르짖음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나마 남은 이땅의 거룩한 씨앗들이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의 가정도 회복되길 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핍박, 환란, 근심, 걱정, 질병, 자녀들의 앞길에 장애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사업이 힘든 적이 있습니까? 왜 이런 것이 찾아 왔는가 고민해보고 회개의 기회를 삼는 이 새벽되길 축원합니다.
롬 8장 19절에서도 이 땅의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을 기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중한 성경을 찾기를 원합니다. 호세아 4장 1절부터 3절입니다.
이 땅에 진실, 인애가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고로 그 땅에 그러한 저주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모든 환경이 영향을 받습니다. 땅의 산물이 그쳐집니다.
몸살이 걸리는 것 그것은 몸이 혹사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그것은 쉬면 고쳐집니다. 신앙에도 상식이 있는데 영적으로 잘못된 것은 예배를 회복하고 여러분의 경건의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회복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하고의 관계가 깨지는 것 그것은 상식이 파괴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저는 이 구절을 주목해서 보게 됩니다. 산에 올라가서 전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산에 올라갈까요?
모세가 올라간 시내산 말씀의 산, 기도의산입니다.
엘리야가 올라간 산 갈멜산 능력의 산입니다.
예수님이 올라간 산 감람산 기도의 산입니다.
모세가 죽기 전 올라간 산 느보산 비젼의 산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한데 그것은 대가가 필요합니다. 댓가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산에 오르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성전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나요?> 우리가 돈을 내는 것 중요합니다. 성전을 위해 교회를 위해 돈을 내는 것 중요하지만 그이상의 것을 하나님은 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기도의 산에 오르는 것을 하나님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모두 기도의 산에 오르면 어떻게 됩니까? 자연스럽게 헌신하게 됩니다. 부자연스러운 헌신은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헌신하면 부자연스럽습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가장 새벽기도로 유명한 김삼환 목사님의 명성교회를 보십시오. 새벽에 3만명의 역사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우리는 새벽의 3만명을 보면서 우와~~탄성을 지르지만 그 교회에는 하나님의역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역사하심을 통하여 그 교회가 움직여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더 많이 감당하는 좋은 교회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그러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때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경험할 것입니다.
산에 오르시길 축원합니다. 기도의 산에 오르시고 경건의 산에 오르시길 축원합니다.
호세아 2장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야기하십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19절 20절입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께서 장가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우리에게 장가들겠다는 것입니다. 고멜과 같은 우리에게 음녀된 우리에게 장가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관계회복을 위해 우리에게 장가를 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어떤 것인가요..호세아 2장 21절부터 23절입니다. 응답이 있다...땅에서도 응답이 있다...긍휼을 받는다..긍휼 레헴(어린아이를 싸듯이)우리를 긍휼이 여기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이지만 그들을 향하여 내 백성으로 삼아 주겠다라고 말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좁은 길입니다. 그곳은 협착한 길이기에 찾는 사람이 심히도 적다는 것입니다.
저는 짧은 인생의 경륜을 가졌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알게 하심은 새벽의 시간이고 경건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경건의 골방을 만들고 하나님께 엎드리면 회복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새벽에도 간절히 부르짖다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성도들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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