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1-24절 말씀
반응
요즘 세대를 보면 너무도 반응이 없는 세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가르치고 있는 중등부가운데 그러한 모습을 봅니다.
10년 전에만 해도 아이들은 자립심도 있고 나름대로 리더쉽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아이들은 나름대로 창조적이고 나름대로 피동적입니다. 나름대로 적극적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세대를 특별하게 규정을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회학교를 지도해 보면 아이들이 참 반응이 없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웬만큼 웃겨서는 웃지도 않습니다. 아이들 앞에 설려면 개그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금의 반응을 보여 줍니다. 웃던지 조소(썩소)를 보내던지
반응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설교에도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반응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들의 삶을 좌우 하고 그 교회를 좌우할 것입니다.
교회마다 좋은 설교 들은 쏟아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이 없다라는 것은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설교와 말씀에는 분명한 반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또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친히 임하고 계시기에 그러한 반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다시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빌 존슨의 책입니다.
“하늘이 땅을 침노할때”
이 분의 책 맨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분이 결혼식 주례를 갔는데 결혼하는 부부가 그 목사님께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 결혼식 안에서도 제한당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혼식 안에는 암 선고를 받고 2-3년 안에 죽게될 시안부 인생이 찾아 왔습니다. 복합적인 병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결혼식이지만 그를 치유하는 기도를 하기를 시작했고 그는 치유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크러스트 붐(cluster bomb)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그 믿음을 폭발시키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빌 존슨 목사님의 교회는 아주 행복한 교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운데 있으면 반응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반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소를 보내고 예수님을 향하여 이단자처럼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반응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 이름은 요한이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세례요한에 들어왔는데 특별히 우리는 요한을 예수님을 예비하는 자로 알고 있으나 오늘 저는 예수님께서 그를 향하여 반응하는 자라고 말씀하심을 보며 우리도 말씀과 기사와 이적가운데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세례요한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나요 그는 곤란에 처해 있습니다.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고 갈릴리의 통치자이었던 헤롯 안디바의 결혼 문제를 공개적으로 책망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로마에 있는 동생을 방문해서 자기 동생의 아내를 유혹하고 그런 다음 본처와 이혼을 하게 됩니다. 요한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태 속에서 그의 행위를 비난했으며 그것 때문에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는 사해 근처의 화산 마케루스 성채 속에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생각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도끼를 그 나무에 대지 않고 있는 것 같이 보이고 요한 자신이 상상한 메시야와 다를 수 있기에 그는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의심은 그런 토양에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처음 신학을 시작하고 원기가 왕성했을 때에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면서 이 땅과 이 날와 교회가운데 도끼가 대어지지 않는가에 대한 의심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그 고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특별히 교회 가운데 이루어지길 소원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지 않음을 보고 고민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과 말을 하면서 우리가 미친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이야기하면서 소망이 없는 현실을 떠나 수도원생활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고 말하고 수도원으로 가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결혼하고 나니깐 없어 졌지만!~~
이당시 현실로써도 요한은 비판력이 있는 왕성한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의심이 곪아서 터지기 전에 지혜롭게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직접 문의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가서 그들이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말하라고 명하십니다.
4절부터 6절 말씀입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이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해 현재 이 땅 가운데 실현되고 있고 네가 지금 연약한 가운데서 있더라도 진실이 있고 진리가 있으면 자유 함을 말하고 있고 특별히 복음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있으면 지금의 현실 속에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반응하는 자는 복되다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응입니다. 지금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세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나니 자유해지는 것이 이것이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혹시 반응이 없나요 그러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해보세요. 예수님 그분이 지금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구나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라고 주장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가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반응하지 않지만 그는 이전부터의 소명인 예수님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이 땅 가운데서 반응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천국에는 아직 적합하지 못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의 인격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얼마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우리는 요한보다 천국에 가까이 있는 모습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노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줄을 믿습니다.
11절 ‘침노를 당하고’ 12절 ‘침노하는 자는 그것을 빼앗는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천국을 침노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침노한다라는 뜻은
1)천국이 폭력을 쓰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2) 천국은 힘쓰는 사람들을 통하여 빼앗아 간다.
3) 천국은 스스로 힘 있게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첫 번째와 세 번째를 선호하는데 천국이 폭력을 쓰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천국은 스스로 힘 있게 전진하고 있다 다시 부언해서 말하면 천국은 맹렬히 힘을 쓰는 사람들, 소문을 듣고 예수께 와서 따르는 사람들이 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어떤 대답을 들었습니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은 이사야 35:5-6, 이사야 61:1절을 듣게 됩니다.
현대에 추측하기를 쿰란의 공동체였던 에센파의 일원이 요한이라는 가설이 맞고 또한 그의 모습을 볼 때에 그는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안심하게 되고 그는 이제 그의 사역에 여한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사람 요한을 규정하기를 엘리야에 대한 예언한 것이 세례 요한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하기를 너무 설명하기 힘들기에 귀있는 사람은 들으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반응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를 말씀하기를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라고 말씀합니다.
반응하는 성도 되어서 교회가 새롭게 되어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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