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사야 18장 - 22장

스네어 2012. 9. 5. 15:09

1. 18장

사 18:4 앗수르를 멸망시키시고 구스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

아프리카에서 기독교 국가를 찾아보는 것 매우 힘든 일입니다. 에디오피아를 아는 사람들은 마라톤, 육상 정도를 잘하는 후진국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디오피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민족이었고 이사야의 예언을 멸시하지 아니하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들었다가 주변의 국가와 동맹을 맺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임을 깨닫고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민족이 되었고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하나님을 아는 민족이 되었다.

18:4절의 감찰하신다는 내용은 어떠한 감찰인가?

군대에서 감찰부, 기무사, 헌병대 삼부 합동조사라는 것을 합니다. 중대한 사항에 대하여 조사를 할 때 이렇게 조사를 합니다. 그대 조사하는 수사관들은 조사를 할 때 떠벌이지 않고 조용히 조사하게 됩니다.

사건의 전모를 살피고 누가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 한다. 그러한 것을 감찰한다고 합니다.

 

좀 지난 드라마이지만 장금이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장금이에서도 감찰 상궁이 나오는 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사건의 전모를 조사하고 정확한 것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조사, 감찰은 틀릴 수 있습니다. 잘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늘 올바른 판단과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단적인 이야기가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도둑이 있지만 돈 많은 도둑은 사회에서 대접을 받으며 호의호식을 합니다. 그러나 돈없는 도둑은 감방에서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오늘 하나님의 속성을 쪼이는 일광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가을 더위의 운무와 같다고 합니다.

쪼이는 일광을 피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가을 더위의 운무를 피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 무소 부재하시다는 것입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어느 곳이나 계십니다. 사람의 마음가운데 계십니다.

감찰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심판하시기 위해, 또 심판을 해야하지만 돌이키기 위해 그들을 감찰합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사람의 마음을 감찰합니다.

인생을 감찰 합니다.

의인을 감찰합니다.

땅끝가지 감찰합니다.

내손의 수고를 감찰합니다.

원통함을 감찰합니다.

죄악을 감찰합니다.

우리를 구스처럼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의 즐거움 향락을 쫒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만 따라갈 수 있는 우리 광산의 권속 되시길 축원합니다.

2. 19장으로 넘어 갑니다.

19장 1절을 보면 애굽의 마음이 녹는다. 애굽의 우상들이 여호와 앞에서 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에 임박하여 있습니다. 임박한 심판을 하실 때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악인은 스스로 멸망한다라는 말을 기억하듯이 그들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라, 가정 하나님께서 붙드시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시길 원합니다.

기원전 725경을 주석학자들은 이사야 19장의 배경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때에는 두 명의 아몬 대사제직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시절입니다.

수도 테베에는 피바람이 붑니다. 그들은 우상과 마술사, 신접한자, 요술객을 찾습니다. 온갖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이 애굽에서 행하여지게 됩니다.

사회적인 혼란이 오게 됩니다.

사회적 혼란 뒤에 찾아오는 것이 무엇인가요? 혼란 뒤에 항상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입니다. 애굽은 비와 관련이 있는 나라입니다. 비가와서 나일을 적시고 나일강이 범람하면 그들은 나일의 신이 축복을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강 상류부터 퇴적되온 거름이 농산물을 비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고 나일의 축복은 더 이상 없습니다. 곡물도 어업도 그들이 자랑하던 파피루스 갈대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갈대는 약 2m까지 자라서 갈대를 역으면 배를 만들 수 있는 재질이지만 그런 것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혼란이 옵니다.

정치적인 붕괴가 오게 되는 데 애굽의 정치적 붕괴는 멤피스, 놉, 소알 세 개의 직할시를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대한민국의 광역시와 같은 기능으로 보면 됩니다. 그 도시는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에 애굽의 모둥이 돌과 같다고 13절에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지도자들은 미련해 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있기에 애굽의 미래는 평탄하지 않습니다. 애굽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를 멸망시킬 때 그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버립니다.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때 그들의 태도를 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되돌아가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더욱 강팍해져서 멸망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바로 왕이 출애굽하려는 백성을 막아서다 더욱 강팍해지는 모습과 같이 10가지 모든 재앙이 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지 마시길 바라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들 모두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됨을 깨닫게 하십니다.

애굽에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중이 번개가 치자 아이쿠 하나님 하듯 애굽도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3. 19:24-25 돌아온 나라들을 하나님이 고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백성을 이방 백성이라도 회복시키시고 축복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왔다고 대단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인도해주심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되길 소원합니다.

25절 보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이 음성을 듣는 우리 되길 소원합니다.

 

4. 20:1-6

애굽의 수치는 이사야의 벗은 몸과 같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그런 절박함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계십니다. 이사야에게 벗은 몸으로 그 사실을 전하고 다니라 말합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아마 호세야에게 고멜을 취하라 보다 더 어려운 주문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묵묵히 순종합니다.

순종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보았습니다. 그냥 귀로만 들은 것이 아닌 실제 하나님을 보았기에 그는 벗고 다니는 수치를 견딜수 있는 것입니다. 허준이라는 드라마를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허준에서 허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난처한 상황 속에서 인체의 장기 위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조롱합니다. 네가 어찌 인체의 장기를 아느냐? 그러나 허준은 확실히 압니다. 자신의 스승 시신을 해부하고 기록해 보았기에 확실히 압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일은 두렵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깨달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자신을 보여주시고 자신을 의지하라 알려주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목장리더, 중고등부 리더, 부리더, 주일학교 리더, 부리더, 교사, 봉사, 전도 등등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 보세요.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분들은 부끄러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길거리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전도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조금 힘들고 어려운 것들 헤쳐 나갈수 있습니다.

 

5. 이사야 21장 1-17

이사야를 읽어본 분들은 이사야의 이야기가 스토리가 이어지는 이야기인가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이야기와 같은 맥락 속에서 이야기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순차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사야를 일기 좋아하는 분들은 매우 힘들어 합니다. 이사야엔 심판의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책이 이사야입니다. 하기에 이사야를 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회복입니다.

치유입니다.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를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장에선 심판이 이야기 되어 집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계시를 꿈을 꾸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꿈을 꿨는데 이러 이러했어 그런데 대부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이야기 보다 남들의 꿈을 대신 꿔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집사님 꿈에 집사님이 이렇고 저렇고 그런데 이런 꿈들은 안 꾸는 것이 좋고 꿈을 꾸었더라도 이야기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꿈을 꾸면 기도해 주면 좋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예언 계시는 매우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적이고 그 상황 속에 자신이 직접 들어가 있기에 매우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21장의 계시는 심판의 내용 중 12번의 내용이 나오는 데 8째부터 10번째까지의 예언이 나와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을 이야기하는데 엘람(노아의 아들 셈의 장자 엘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사 페르시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을 이야기 합니다. 엘람 곧 페르시야 제국이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을 말합니다. 실제 기원전 539년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은 멸망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어떠합니까? 마병들이 줄즐 지어 오고, 나귀, 낙타에 장병들이 줄지어 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에 이사야도 떨고 있습니다. (1-10)

두마에 대한 심판도 나와 있습니다. 두마는 에돔입니다. 에돔에도 멸망의 날이 오는데 평화도 오지만 곳 심판의 밤이 도사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12)

아라비아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바벨론의 피난처가 되고 그들이 잘하던 일들 중에 상인들이 무역을 하다가 수풀로 도피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기에 그들은 숨기고 숨는 일들을 잘 했습니다. (두로와 무역을 하면서 앗수르를 피해 다녀야 했기에 그런 일들이 잘되고 쉽게 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드단 게달 다 멸망한다. 죄악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시고 멸망을 시킨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백성들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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