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4:18-25 믿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하란으로 이사하여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말씀이 창1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복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복은 창12:2,3절에 기록된 대로 너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해주며,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그 사람에게도 복을 주지만 너를 저주 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저주하겠다고 하시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약속을 정리해보면 네 자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의 사람이 되도록 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가장 큰 복중의 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결혼을 하였지만 자녀를 낳을 수가 없었는데 자녀를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은 저주중의 저주라고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당시 작은 족장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는 상황에서 큰 족장 사회를 형성한 사람들이 힘이 있었고, 전쟁을 할 때에도 숫자적으로도 크게 유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족장 사회를 넘어서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다른 족장들도 넘보지 못하는 강대한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신 복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에는 자손들이 번창하고 큰 사회와 민족을 이루는 것이 족장들의 최고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아브라함의 형편과 상황을 보면 사실 이런 복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창11:26절의 기록된 대로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입니다.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그런데 하란은 롯을 낳고 아버지 보다 더 빨리 세상을 떠났으므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 아브라함 자신은 자녀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약소한 집안인데 어떻게 큰 민족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창17: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브라함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창대해지는 그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니까 엄청난 복의 사람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믿음입니다.
본문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독) 18~21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정리(질문) - 아브라함이 가진 6종류의 믿음
①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긍정의 믿음, 가능의 믿음
②약하여지지 않는 믿음 -실족하지 않는 믿음
③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 -말씀에 의심이 없는 믿음
④오히려 믿음으로 견고하여짐 -견고한 믿음
⑤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영광 돌리는 믿음
⑥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 -확신 있는 믿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복에 대한 약속을 주실 때 나이 75세였습니다.
그런데 80세가 되고 90세가 되고 99세가 되어도 여전히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한지가 24년이 지났습니다.
이정도 되면 우리들 같으면 그만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아니 약속을 하셨으면 내년에라도 아들을 주시던가 아니면 10년후에 라도 아들을 주셔야지 24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이젠 포기할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포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원망 불평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는 둥, 하나님은 능력이 없다는 둥 별 소리를 다하면서 하나님을 등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24년이 지나 몸이 노쇠하였어도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긍정의 믿음, 가능성의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좀 더디게 응답해주셔도 끝까지 바라고 실족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이 자꾸 약해지고 실족합니다.
이런 저런 소리를 듣습니다. 부정적인 소리를 듣고, 불평불만의 소리를 듣고, 불신앙적인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 때문에 실족하고 믿음이 약하여 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눅17:1~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다른 사람의 믿음을 실족하게 만들어서 믿음을 떨어뜨린다면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화가 임할 것이고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 보다 차라리 자신이 연자 멧돌을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말 때문에 전체가 그 말을 듣고는 모세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눅7:23절에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자들에게 자꾸 안 좋은 소리를 해서 믿음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영혼을 실족시키는 일이요 죽이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소리를 하고, 용기를 주고, 믿음을 세워주고, 은혜를 끼치는 말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앙적인 말을 들어도 그것을 걸러 들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신앙은 좋은 필터와 같습니다.
좋은 필터는 좋지 않은 오염된 물이 들어가도 오염된 물이 정수되고, 세균도 다 걸러내며 맛이 좋은 물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필터가 좋지 않으면 오염된 물이 그대로 나올 수 있고, 세균도 걸러지지 않으며, 물맛도 없습니다.
좋은 신앙은 좋은 필터와 같아서 별 소리를 다 들어도 속에서 걸러냅니다.
이것은 들어서 좋은 말, 이것은 들으면 안 되는 말,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분별력과 능력이 있어서 실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현재 상황이 실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9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은 자신도 100세가 다 되어서 늙었지만 아내도 나이 많아서 이미 태가 죽은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생리가 끊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이 없었고, 믿음도 약하여지지 않았으므로 복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서 사자 밥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니엘은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칠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잡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복음을 위해 죽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알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전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양 -세상 흔들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20~21절 말씀 다시 한 번 더 봉독하겠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좋지 못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의 적극성을 띠어서 오히려 믿음이 더 견고하여 졌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까지 돌리는 믿음을 소유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성숙한 믿음이요, 이것이 칭찬받을 믿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히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뿐만 아니라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믿음을 약하게 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말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믿음이 더 견고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이 되어서 확신 있는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믿음을 가졌을 때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22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말씀은 창15:6절의 말씀을 근거로 말한 것입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본문 22절의 말씀에서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의입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잘나고 똑똑해서 의인이 아니라, 성공하고 출세해서 의인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자가 의로운 사람입니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고 의롭다고 칭해 주신 것입니다.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하나님은 죄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결과를 또 다르게 표현한다면 인정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23~24절에 보시면 의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역시 믿음입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이지만 믿음의 내용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아들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24~25절 함께 봉독 -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곧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한 길이 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 일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이미 죄가 깨끗하게 씻겨진 줄 믿습니다.
아직도 죄를 짓고 살지만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고, 우리의 모든 죄는 주님이 십자가위에서 도말하셨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 믿음을 지킵시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조롱과 째찍에 맞고,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몸을 조각내고 칼로 죽일지라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히11:36~37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말세에는 사탄이 마치 굶주린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믿음을 가지고 지키는자만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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