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님의 제자 그리고 교사 눅 9:57-62, 마8:19-22

스네어 2010. 5. 15. 10:20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 눅 9:57-62, 마8:19-22

오늘 주신 말씀 눅9:57-62 말씀은 병행구절인 마8:19-22에도 언급된 내용으로 예수님의 후기 유대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뒤돌아보지 말고 예수님만 따르라 하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앞 단락인 9:51-56에서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의 배척을 한 사건을 기록한 후 본 단락에서는 제

자 됨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곳에서 환대를 받을 예상을 했지만 환대르 받지못하니 야고보와 요한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 불을 내려 저들을 멸절하심이 어떠함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가시고 다른 마을을 가시다가 한사람을 만나 그를향하여 제자들을 향하여 우리를 향하여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먼저 “어디로 가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하며 성급하게 따르려는 자들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하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궁핍이나 사람들의 배척과 같은 고난도 감수해야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부친의 장례를 이유로 주님을 따르기를 주저하는 자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심으로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함을 교훈하셨습니다.

인륜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도리가 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미루거나 중지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가족과의 작별을 조건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지체하려는 자에게는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심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가 어떤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합당한 자세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영적 교훈을 말씀을 따라가며 주님 주시는 은혜 받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제자의 합당한 자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고난과 희생의 각오를 해야 합니다. (57-58)을 읽겠습니다.

“길 가실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 하시고”

주님을 좇겠다고 나선 한 사람에 대한 완곡한 거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듣기에 따라 주님을 좇겠다고 자청하며 나선 호의적인 사람을 너무 야박하게 내치는 것 같습니다.

왜 따르기를 자청하는 사람을 거절했을까요?

마태복음 8장 19절을 보면 따르려던 사람의 직업과 그의 능력을 잘 알수 있습니다.

마8: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라고 자청한 사람이 서기관입니다.

당시 서기관은 상당한 지식인이며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서기관 같은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된다면 주님의 권위가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서기관이 주님을 좇기로 한 이유가 인간적인 출세와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을 좇겠다고 자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은 서기관이 생각한 것처럼 영광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서기관의 청을 완곡하게 거절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각오하는 결단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우리 성도들이 모두 깊이 명심하고 있어야 할 말씀인줄 믿습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결단 없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신앙의 실패자가 되기 쉽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 교회만 다니면 축복을 받을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 축복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교회 다닌다고 무조건 병도 고치고 건강해지며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고 출세한다는 식의 현세적 축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축복관은 현세의 축복을 무시하지 않지만 보다 영적이고 내세적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내세의 축복을 위해서 현세에서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적인 축복을 받으려고 교회에 나왔다가 복음으로 인해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내 신앙을 버리고 버블을 안고 떠나 가버립니다.

눅14:33“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육신의 떡을 얻고자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영생의 떡을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자 많은 무리들이 떠나버립니다.

나는 과연 십자가의 고난의 자리까지 따를 수 있는 결단과 각오가 되어 있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상황이 변할 때마다 흔들리는 일차원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어떤 상황 하에서라도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온전한 제자들로 성숙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영광은 어떤 상황 하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에게 주어짐을 잊지 말기 원합니다.

제자 된 교사의 자세도 이러함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둘째로 복음이 가장 큰 대의명분입니다.(59)

스스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의 청은 거절한 주님께서 다른 사람에게는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하며 한발 물러서자 “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십니다.

주님이 유족들을 죽은 자들로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아니하므로 그 영혼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합니다.

주님이 인륜을 무시한 발언을 한 것입니까?

사실 부모의 장례는 어느 민족이나 막론하고 인륜지사의 중요한 일입니다.

유대의 관습을 기록한 메길라에 “ 부친의 장례는 토라의 연구나 할례, 심지어 어떤 율법준수나 성전봉사보다 우선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향해 유대인들이 [율법을 모독하고 전통을 깨뜨리는 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람은 서기관으로서 자신의 부모에게 상속을 받고 따르겠다라는 간절함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반인륜 적 이기보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토록 가족을 소중히 여기신 주님께서 왜 이렇듯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던 것일까요?

뱅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 동메달을 획득한 캐나다 조안 로체 선수를 기억하고 큰 감동을 받습니다.

어머니가 경기를 보러 왔다가 평소 앓고 있던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자 대진표를 뽑는 순서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해 당당하게 동메달을 목에 걸고 울던 그 모습은 충분히 온 세상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가대표 선수로써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대표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덜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습게 여기진 않아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코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하고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일은 성도에게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이 땅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대의는 바로 그리스도와 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인간의 윤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처럼 중요한 인륜마저 무시될 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땅의 일을 더 크고 급한 일로 생각해 왔던 우리의 태도를 반성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만사를 뒤로 하고 그 부름에 응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 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최우선 사명으로 알아 가장 먼저 헌신하고 충성하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 교사들도 가장 큰 대의 명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사명자입니다. 내가 주일날 빠지면 그 어린 생명들은 어디로 갑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분신을 낳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의 분신입니다. 그렇듯 여러분의 학생은 여러분의 분신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의 바른 자세를 확립하기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로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61-62)

겨우내 일었던 땅이 녹고 이제 농부들은 새롭게 농사짓기 위해 땅들을 일구어 나갑니다. 지금은 영농 기술이 발달하여 땅을 일구는 일을 거의 기계가 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사람이 직접 쟁기를 가지고 땅을 일구곤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를 가리켜 '손에 쟁기 잡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는 밭을 일구기 위해 이제 막 밭에 들어선 농부 같은 존재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는지를 교훈 받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먼저 쟁기를 힘 있게 잡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밭가는 농부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쟁기를 아주 힘 있게 잡습니다. 왜요?

밭을 깊게 일구어 자양분과 산소를 많이 공급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사명의 쟁기를 힘차게 잡고 있습니까?

교회학교 교사면 교사로서, 성가대원이면 성가대원으로서, 구역장이면 구역장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굳게 잡고 있느냔 말입니다.

그러나 꼭 잡는다고 힘 있게 잡는다고 무리한 힘이 들어가면 안 되죠?

소가 끌 수 있는 깊이만큼 넣어야지 너무 깊게 넣으면 소가 가지 못합니다.

소를 무리하게 몰면 쟁기가 깨집니다.

사실 성도들 가운데는 자기의 사명과 직무를 가볍게 여기고 소홀하게 대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자기의 사명과 직무를 내던지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주님은 이런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히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정녕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고 싶으십니까?

지금 쥐고 있는 여러분의 사명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을 다해 사명을 수행해 나가십시오.

그러나 무리한 힘을 가하지 말고 부드럽게 결대로 순리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손에 쟁기 잡은 농부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거나 뒤돌아보는 법이 없습니다.

왜요? 밭을 똑바로 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뒤 돌아보면 이랑이 비뚤 비뚤 해져 일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혹 누가 말을 걸더라도 농부는 결코 그 사람 얼굴을 쳐다보며 대화하는 법이 없습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오로지 앞만 쳐다보며 이랑을 똑바로 갈면서 대답할 뿐입니다. 소의 뿔과 꼬리와 쟁기머리가 일직선이 되도록 하고 그 이어진 선이 밭둑에 있는 작은 풀이나 돌 나무등과 일치 시키고 좌로나 우로 비뚤어지지 않도록 기준점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루하고 힘들어도 헛짓 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마칠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신지요.

사명을 감당하다가도 세상 친구가 유혹하면 사명과 직책 맡은 것을 외면하고 세상 친구를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한 유혹과 흔들림이 올 때 창세기 19:26에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뒤 돌아 보았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해 버린 롯의 아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그리스도를 푯대 삼고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앞만 향해 달려간다고 말한 사도 바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빌 3:13, 14).

끝까지 일을 해서 온전하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 쟁기를 잡은 농부는 언제까지 일합니까? 일을 다 마칠 때까지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사와 같이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합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일찍 일어나 일하고 내일 못하면 모레 일찍 일어나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일을 다 마치기 전까지는 결코 쉬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농부의 근면성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근면하고 성실하게 끝까지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을 하기로 작정하는 성도 되기 원합니다.

혹 직책을 맡은 지 채 일 년도 안 되어서 자리를 떠나거나 포기하거나 방치한 적은 없으신지요.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순교를 눈앞에 두었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부럽지 않습니까?

우리도 장래에 죽음을 앞두었을 때 후손들 앞에서 이러한 고백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뒤따르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은 끝내 많은 소산을 거두는 복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는 주님의 말씀은 툭하면 사명의 자리에서 이탈하고 벗어나려는 우리의 못된 습성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에게는 이러한 습성이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명령에 겸허히 순종 합시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감당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시다.

결코 한 눈 팔거나 뒤돌아보는 일 없이 끝까지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되기 원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 앞에는 하늘의 영광과 상급과 기쁨이 있을 줄 믿습니다.

결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고난과 희생의 각오를 해야 합니다. (57-58)

둘째로 복음이 가장 큰 대의명분입니다.(59)

셋째로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61-62)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구원자로 믿고 영접한 자는 주님을 믿음으로 마음의 평안과 이 땅에서의 축복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고난과 희생을 감내할 만한 성숙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슬픔을 감추고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 때문에 뒤돌아보지 않고 주님나라를 향하여 일로매진하는 고고하고 고결한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늘에서 주시는 참 복을 받아 누리는 귀한 성도 여러분 되시기 원합니다. 아멘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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