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추수절을 앞두고

스네어 2009. 10. 9. 11:45

감사하는 생활을 합시다(시100:1-5절)

어느목사님가정에 도둑이 들어 많은 물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감사기도를 드리는겁니다 그것을 본 성도가 목사님께 어떻게 도둑을 맞았는데 감사합니까? 위선아닙니까?라고 따지듯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1) 지금까지 한번도 도둑을 맞지 아니한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2)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도둑맞지않은 것을 생각하니 감사하고

3) 아직도 남아 있는 물건이 있으니 감사하지않습니까

4) 더욱더 감사한 것은 나를 도둑놈으로 안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행복론을 지은 저자 칼 힐티는 “감사하는 삶을 살면 늙지않는다”고 했습니다

옆사람과 인사하면서 “감사하며 삽시다”

“소문만복래”라고 억지로 웃을수는 없지만 웃으면 복이옵니다

감사하는곳에 웃음이 있습니다 옆사람과 한번 더 인사합시다 “웃으며 삽시다”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1623년부터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620년9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들이 추위와 굶주림이란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이기며 토착민 인디언과의 싸우면서 농사를 지어 그 첫해수확을 감사함으로 드렸던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한국에서도 세계그리스도인들의 유래를 따라 1912년 11월 둘째 혹은 셋째주일을 정하여 하나님께 모든교회가 감사하고 있는겁니다 감사의 마음이 오늘 한주만이겠습니까?

평생에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웃으며 살수는 있는가? 본문으로 돌아가봅시다

오늘 본문은 그리길지않는 본문이지만 인간의 고통과 고뇌 아픔과 슬픔을 전혀느낄 수 없는 아주 밝고 희망찬 삶을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전심으로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시편기자를 기쁘게 했을까? 가장중심절인 3절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시편100편의 결론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되시기에 온땅이 노래를 부르고 기쁨으로 그 앞에 나아가는겁니다 감사함으로 그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궁정에 들어가는겁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어떤하나님이셨기에 이처럼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가?

3절을 구체적으로 다시살펴보면 3가지인데

1)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그의 소유삼아 주셨기에 기쁘고

2) 그의 기르시는 앙과같이 지키시고 인도해주시니 즐겁고

3)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살려주심에 감사하고 있는겁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그의 자녀삼으신 것이 기뻐하자는겁니다

사람처럼 자기자신에게 끈질긴 집착과 관심을 가진 존재는 이땅에 없을겁니다

그러면서도 죄로 말미암아 가지는 부정적인 사고와 비교의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다른사람과 비교하고 외모를 비교하면서 가장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는 것이 또 인간입니다

그러나 창조의식은 바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겁니다

“창조주께서 나를 이렇게 지어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오늘 시인의 묘사처럼 세상에서 유일한 창조물임을 선포하자는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에서 나같은 사람이 또 있는가 이세상에서 나는 단 한사람뿐입니다 복제품이 아닙니다 독특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어떤 작품을 보고 원망하고 저주하면 곧 그 작가에 대해서 저주하고 원망하는겁니다

자신의 환경과 처지만을 바라보며 체념하면 조그마한 감사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우리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 그분을 바라보면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알면 내게 있는 멋진 은사나 재능이 아직개발되지못했다할지라도 의미있는인생을 살게되는겁니다 기대가 되고 소망이 되는 인생이 됩니다

 

3중장애로 몸은 뒤틀려있고 말도 더듬고 어디한군데 쓸만한구석이 없는 송명희자매!

시인이요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전까지 유일한 희망이 죽는날을 기다리는것이었습니다 왕년의 맹인가수 이용복씨처럼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체념하며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가 15세때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라디오를 통해 극동방송을 청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되었고 거기서 삶의 목적을 발견하여 자신에게 귀한 인생을 주신 그분을 발견하고 사랑을 전하고 은혜를 나누는 간증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불편한 육신을 저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원망하지않습니다 도리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육신이었다면 라디오를 듣기위해 골방에 갇혀있지않았을것입니다 불편한 육신으로 인생의 가장 귀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건강한 육체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을 전하던 기억이납니

하나님의 걸작품이신 여러분! 아직 우리가 가지는 무한한 잠재력이 개발되지않았습니다 귀한 은사와 재능을 개발하기위한 공사중입니다 그러니 유일한 걸작품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그 목적대로 쓰임받기를 소원하시기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생명이 다하는날까지 돌보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선언하고 있는데

두 번째로 기르시는 양과같이 지키시고 인도하시니 즐겁다는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는 것이 즐겁습니까? 지겹습니까?

옆사람에게 묻습니다 사는 것이 즐겁습니까 지겹습니까? 내가 살려고 발버둥치면 괴롭고 근심뿐입니다 이 험한세상 그러나 인도함을 받는대로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양과 목자의 관계로 즐겁게 사는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겁니다

양은 어떻습니까? 일단 성품이 유순합니다 다른동물처럼 공격무기도 없습니다

뿔이 달렸다든지, 발톱이 날까롭다든지, 이빨이 튼튼하다든지 그렇지를 못합니다

방어력도 없어서 공격해오면 당하는겁니다 눈도 나빠서 1미터앞을 보지못하기 때문에

양들은 바로 앞에 양뒤꽁무니만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종종 길을 잃기도 하는겁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기도합니다 눈앞에 것만급급해하다가 살길을 잃어버린 양과같은 인생입니다 사단의 공격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양을 인도하는 목자는 어떻습니까? 요10장에서 목자의 생활을 그려놓았는데

3절을 보면 양의 이름을 각각불러 인도하여 냅니다 4절에 보니까 양을다내어놓고 앞서가면서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에 데리고 다니면서 먹이고 마시게 합니다

10절에보니까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합니다

11절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이것이 목자입니다

그런데 14-15절에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목자라 내가 내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것같이 나는 양울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아니하는 다른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하십니다

곧 목자의 삶은 양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요, 양은 목자와 떨어지면 죽는다는말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을 죽음을 무릎쓰고 지켜주는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도 우리는 예수님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노래합니다

목자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모든 것 맡아주심에 즐거워하는 인생을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죄와허물로 죽었던 우리들! 인생의 한치앞도 분간하지못하고 제 이익에 급급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섬기지못하고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고 사는 우리들!

세상의 방법과 세상의 공중잡은권세자인 마귀의 지배를 받아 하는일마다 생각하는것마다 악한것들만 만들어내는 우리들! 우리가 가는곳에는 비교의식과 부정적인 자아들로 미움이있고 다툼있고 문제가 있고 고통만이 있던 우리들!

그래서 사는 것이 고통이고 불안이고 두려움이 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선한목자되신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불안하지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필요롤 아시고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히4:15절에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다고 했습니다” 저와여러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양 나의 형편을 자신의 형편인양 느끼시고 해결하십니다

뿐만아니라 근심과 염려의 모든짐까지도 맡아주십니다

마11: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짐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안에서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예수안에서 고통은 고통이 아닙니다

고후4:8-9절말씀처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를 이 약하고 천한 질그릇에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에 즐거움이 넘치시기를

목자되신 예수님을 가지고 보니 즐거운 인생이 되었다는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질그릇같은 내인생에 보배되신 예수님을 가질수있습니까?

예수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면 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예수죽인 것을 몸에 짊어질수있습니까? 감사함으로 그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궁정에 들어가라는겁니다

그러면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신줄 알게된다고 노래합니다

셋째 구원자되심을 인하여 감사합시다

여기서 하나님이라는 단어와 여호와라는 단어가 구별되이 쓰이고 있는데

하나님의 용어가 모든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분에게 쓰이는것이라면

구원에관하여 대표성을 가진단어가 여호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예호바”에서 온 단어입니다 예수아, 여호수아 라는 단어들도 예호바라는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라는 이름도 “저희백성을 자기죄에서 구원할자”라는 뜻입니다

창조자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예수를 나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형벌을 대신받게하시되 물과 피를 다쏟기까지 죽이셨습니다

그 죽음의 문에 함께 들어간자들이 죄아래에서 해방된겁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죽으신 그 십자가사랑을 체험하게되는겁니다 그러고보니 찬송이 나오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알고보니 구원의 기쁨이 넘치더라는겁니다

 

렘33:10-11절을 다같이 찾아봅시다 같이 읽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없고 짐승도없던 유다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다시말하면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삭막하던곳, 불순종으로 쫒겨났던 유다땅이 황폐하여 져서 사람도 짐승도 살수없던곳 소망이 없던곳에 이제 다시사람사는 소리가 들립니다

즐거워하는소리, 기뻐하는소리 신랑과 신부의 소리가 들린다는겁니다

왜냐하면 처음과같이 돌아오도록 회복해주셨기떄문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생이 대신 죄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살맛나는 인생으로 바꾸시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받은자는 잃어버렸던 인생의 목적을 찾고 살맛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자들이 있는곳은 살맛나는 세상이 됩니다

그 살맛을 본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감사제를 드리러 모여드는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회복된 천국에 소망이 있습니까?

인생이 기대가 되고 살맛이 납니까? 다같이 따라서 합니다 “예수를 만나니 살맛이납니다” 추수감사예배로 모인여러분들이 모두가 살맛나는 인생들이 다되시길 소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감사하고 사실렵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 아닙니까?

생명을 가지고 살수있도록 지켜주심이 감사아닌가 말입니다

오늘도 중환자실에는 수많은 사람이 가슴조이며 밤을 지새고있습니다

오늘도 세상에는 수많은 사건사고로 고통과 아픔을 맛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중에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이 구원받은 것에 감사합시다

살후2:13-14절에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했습니다

성도란 죄악중에 부르심을 받아 받아야할 심판을 받지아니하는 긍휼하심과 받지못할 은혜를 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리스도예수를 구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한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 감격으로 사십시다 그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깁시다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주신것에 감사합시다 아직 개발은 덜되었지만 귀하고 복된자로 창조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온땅이 그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을 증거합시다 그래서 여호와이름만으로도 기뻐하며 진리와함께 감사하는 우리가 됩시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은 영원한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도 날마다 넘쳐날줄 믿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살맛이 납니다” “당신 때문에 살맛이 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통해서 잃었던 감사를 회복하게하시니 감사합니다

귀하고 복된 인생으로 유일한 걸작품으로 창조해주셨지만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면서 원망하고 저주했던 우리들! 이제 목적을 분명히 알아 기뻐하는 인생이 되게하시니 감사합니다 다른사람과 비교하고 부정적인생각으로 살맛을 잃고 고통과 근심과 염려로 사는 나를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살맛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생명을 가지고 살수있도록 지켜주심에 감사하면서 매일매일을 살게해주세요

오늘도 질병으로 고통하는자들을 돌아보게하시고 아픔있는자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임하여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수있도록 감사하며 살수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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