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삼상 1-2장

스네어 2014. 8. 19. 11:21

은혜받은 한 여인의 믿음 삼상 1:9~1:18

 

한 여름 지루한 장마 속에 추적추적 비가 계속 오고 있는 어느 주말 오후에 남편은 응접실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고, 아내는 옆에서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둘의 대화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아내가 하는 말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온난화 현상과 공해와 지각변동으로 인해서 아무래도 지구에 종말이 올 것 같아요. 재미있는 설문이 있는데 같이 풀어 봐요.” 그리고 하는 말입니다. “만일에 지구의 종말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때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남편 하는 말이 "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뜨겁게 사랑을 해야지." 그 아까운 10분 동안인데 그래야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아내의 말을 들어 보세요. “그 시간이 지금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구의 종말이 있더라도 여인이 무엇을 더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하하.

 

독일의 어느 마을에 갔을 때, 한 미술관을 둘러봤는데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한 젊은 농부 부부가 밭에서 일을 합니다. 유모차를 옆에다 두고 둘이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애가 우니까 아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고 젖을 물리고,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 그림의 제목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은 행복입니다. 정말로 이 모습이 행복이다, 저도 동감을 해보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성공학 강사인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의 정신분석 법칙에 의하면 사람은 정신적으로 3가지 공통된 법칙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신념의 법칙입니다. 누구나 생각하고 믿으면 믿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믿는 바대로 자기 운명을 살아간다는 겁니다. 믿는 대로 현실이 이루어진다. 둘째는 인력의 법칙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마치 살아있는 자석처럼 작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것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겁니다. 셋째는 상응의 법칙입니다.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표출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면세계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표출될 것이기에 속이 바로 되어야 속이 행복해야 아름답게 표출되어 현실도 아름답게 된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할 중요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성경에 보면 한나라고 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한나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어머니로부터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가장 제 마음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성경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망교회를 처음 설립할 때 설립 이전에 다섯 번의 수요일 저녁에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준비 기도회가 있었는데 기도회 첫 날 11명 모였을 때에 설교한 본문이 바로 오늘의 이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소박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는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가 좀 울적하고 슬퍼하고 있을 때, 엘가나라고 하는 남편이 아내를 위로하는 말이 아주 드라마틱합니다. 8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렇습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 세상에 이런 남편이 어디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나으니까 지금 아들은 없지만 슬퍼하지 말라고 이렇게 위로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바로는 한나가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는 여인은 아무리 남편이 사랑하고 주변사람이 뭐라 해도 상관이 없어요. 꼭 어머니가 되어야겠다는 겁니다. '한 여인으로서 어머니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 아니 어머니가 되기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가진 여자입니다. 이런 생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가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풀려고 했습니다. 왜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까.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이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문제를 풀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이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일단 오래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는 속으로만 기도했습니다. 옆에 사람이 무슨 말 하는지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입술만 동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묵상 중에 기도했고, 또 하나는 심취해서 기도했습니다. 마치 술 취한 자처럼 얼굴이 뻘게질 정도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이 오해를 할 정도였습니다. '이 젊은 여자가 술 취했구먼' 할 정도로 그는 심취한 가운데서 간절히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서원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기도에 응답하시면, 내가 원하는 대로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삭도에 머리를 대지 않겠습니다.' 곧 나실인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한평생 봉사하는 제사장을 만들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맹세하며 기도했습니다. 약속이 있습니다. 막연한 기도가 아닙니다. 들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약속을 합니다.

 

더 귀중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제사장의 마음이 감동이 됐습니다. 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멀리서 지켜보던 엘리 제사장의 마음이 감동이 됐어요.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감동이 올 때, 그가 축복기도를 합니다. 17절에 보면 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평안이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제사장이 축복하며 함께 기도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한나는 이 축복기도를 응답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믿고 응답으로 알고 돌아갑니다. 성경에 극적인 얘기가 나옵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 수색이 없으니라.(8)" 여러분, 아시는 대로 아들을 낳는다면 열 달 기다려 봐야지 아 그것도 무사할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닙니다. 축복기도를 받는 그 순간 벌써 응답된 것으로 알고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으니라' 굉장한 믿음입니다.

 

미국의 최근 급성장한 교회인 레이크 우드교회의 죠엘 오스틴( Joel Osteen)목사님이 요새 두 번째로 낸 책 가운데 보면 Become a better you라고 하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임신 초기에 여자는 몸에 변화가 없다. 외형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고 또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의사가 딱 진단을 하고 나서 '임신입니다.' 하면 어떻습니까? 그런 줄 믿어야 합니다. 자기 몸에는 아무 자각도 없고 느낌도 없지만은 의사가 '임신입니다' 하면 임신된 거예요. 될 줄로 믿고 몸조심해야지. 마음가짐도 조심해야지. 그리고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죠. 이것이 여인의 생활이 아니겠는가 하구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역사할 때에 확실하게 내 안에 역사하면 이제 그 다음부터 점진적으로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이제는 기다리고 또 나로서는 준비하고 순종해야 될 바가 있다는 것이죠. 이게 다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아주 수십 년 동안 기억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입니다. 수요일 저녁에 설교하는 도중에 어느 미국 사람 하나가 저 뒤에 와서 앉았어요. 그리고 부목사님에게 메모지를 써서 줬어요. 부목사님이 이렇게 빙 둘러서 강대상에다 메모지를 놓고 갑니다. 설교하면서 읽어보니까 설교 끝에 자신이 간증할 마음이 있는데 허락해 주시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이름도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설교 끝나고 나서 "Mr. would you come here?" 그랬죠. 했더니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어요. 여기에 딱 서더니 나보고 통역을 하라고 그래요. 할 테니까 말하라고 그랬더니 간증을 시작하는데 자기가 지나가다가 여기에 종탑이 보여서 들어 왔는데 당신이 '세계 기독 실업인회 회장' 이랍니다. 어쩌다가 인천을 왔다가 종소리가 나서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간증 많이 다니면서 한 솜씨입니다. 보니까 잘 합니다. 그리고 하는 첫마디가 나는 부자입니다.- I am rich." 그럽니다. 그래 부자라는 걸 설명을 하는데 어느 정도 부자냐? 자가용 비행기가 7. 여러분, 자가용 자동차가 아닙니다. 자가용 비행기가 7대 랍니다. 또 그 다음 두 번째 얘기가 재미있어요. "나는 공부를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을 3년을 다녔답니다. 그래서 4년째 또 다니려고 갔더니 교장 선생님이 오라고해서 갔더니 "네 친구들 다 졸업했는데 뭘 또 배우겠다고 왔냐" 그러더래요. 그래서 대답을 그렇게 했답니다. "정말 그러네요. 많이 배워서 나는 그만 배우겠습니다." 하고 학교를 그만 뒀답니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마친 사람이에요. 그리고 열심히 일을 했어요. 인쇄소 직공으로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일해서 이런 세계적인 부자가 됐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좌우명 되는 성경 구절을 외우는 거예요. , 내가 통역을 여러 번 해 봤는데, 대게 운만 띄우면 성경 몇 장 몇 절인지 제가 알거든요, 그런데 이 양반이 외우는 성경은 몇 장 몇 절인지 알 수가 없어요. 들어 보시겠어요? "가서 먹고 얼굴에 근심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거 외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이게 오늘 본문입니다. 다음에 말하는 걸 보니 이런 이야기입니다.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큰 사업을 해도 근심은 없습니다. ? 기도하고 한 일이니까. 오늘도 기도하고 하는 일이니까 기도하고 아멘한 다음에 되는 일은 어떻게 전개되든지 그건 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믿는다는 거예요. 그런고로 기도하고 아멘, '가서 먹고 얼굴에 수색이 없다' 그것이 자신의 신조라고. , 열렬하게 이렇게 간증을 하는 것을 통역하면서 저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 여러분, 많이 기도합니다. 애써 기도합니다. 아니 일생 기도합니다. 그런데 얼굴에 수색이 많아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한나는 믿고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어요. ? 이제부터 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이거든요. 하나님의 축복이니까 말입니다. 이래서 사무엘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다음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서원을 갚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했으니까 바쳐야지요. 젖 떼자마자 - 네 살 때 젖을 뗍니다, 바로 성전에 바쳤고 성전에서 자라게 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옷을 지어다가 바치고 이 여자는 멀리서 저것이 내 아들이거니 하고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내 아들이라고 부르질 못했어요. 하나님께 바쳤으니까. 멀리서 옷을 지어다 바치고 돌아서는 한나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엘리 제사장이 다시 복을 빕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바친 아들을 대신할 자녀를 주세요.' 하고 또 복을 빌었더니 세 아들과 두 딸을 덤으로 낳았대요. 이 기도생활이 말입니다, 이렇게 좀 덤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하나 구했는데 하나님은 다섯을 주거든요. 나는 요걸 구했는데 하나님은 더 큰 걸 주세요. 좀 이런 재미가 있어야 신앙생활이지. 안 그래요? 하나님은 어째서 내가 항상 구해도 하나도 안 주실까? 이거 가지고야 되겠습니까? 내가 구하는 것보다 넘치게, 넘치게, 넘치게 이게 한나의 믿음이요, 한나의 신앙생활이었어요.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강철왕 카네기(Dale Carnegie)의 사무실에는 아주 낡고 별로 값도 나가지 않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바다가 아니라 뭍에 놓여 있는 낡은 배 한척과 두 개의 노가 이리저리 흩어져 놓여 있는 그림입니다. 그것은 무명의 화가가 그린 것이요, 값나가는 것도 아닙니다만, 이 그림은 한평생 카네기의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그 그림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은 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 그러면 이 배는 바다로 나갈 것이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았단 말입니다.

 

한나의 믿음,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을 믿는 것, 응답을 현실화 하는 것, 그리고 서원을 갚는 것, 그리고 더 바람이 없습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의 믿음, 다시금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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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닌나는 누구냐? 삼상 1:1~1:18

 

진주를 살 때에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식별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진주를 가지고 이에다가 이렇게 긁어보면 자연산 진주는 이가 거끌거끌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진짜입니다. 그러나 기계로 만든 인조 진주는 그냥 대량으로 생산을 하니 이에다 긁으면 그냥 미끄러지듯이 지나갑니다. 전혀 부딪히지 않습니다. 또한 자연산 진주는 흠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인조 진주는 모양은 깨끗합니다. 흠이 없고 완전하며 어디에도 점이 없습니다. 여자들이 되면 이 정도는 알아야 진주를 살 때 속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옷이, 직업이, 가정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먹는 음식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다 같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해 보거나 만나보면 교인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받은 사람은 속일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말속에 끊임없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표현 안하고 숨겨놓을 수 없는 보화입니다.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오늘 찬양대가 찬양한 대로 만입이 있어도, 만입으로도 다 찬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은혜는 그냥 주시는, 값없이 주시는 공짜입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꿔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가 너무 귀하니까, 죄사함의 은혜가 너무 귀하니까 이것은 돈으로 주고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주고 살 것 같으면 록펠러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빌 게이츠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6천조억불로도 살 수 없습니다. 너무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에서, 저주에서, 사망에서, 마귀에게서 건짐 받는 구원은 우리에게 전혀 받지 아니하고 그냥 주시는 값없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으로 우리가 거룩해서, 완전해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도록 의로우려면 이것은 천만년을 수고하고 노력해도, 구원하나 얻기 위해서 온 인류가 영원히 노력해도 이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받을 만한 의로울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의 은혜는 그 사람이 의롭거나 의롭지 않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놀랍고 감사한 겁니다. 우리가 어떤 공로나 노력, , 권력으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값없는 긍휼로, 사랑으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아들이 죽으심으로 그 아들의 공로로 우리를 살리시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며, 그 아들이 이 땅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전혀 투자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며,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믿음을 보시고 큰 것을 채워주시는 영원한 것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늘 찬송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늘 기쁘게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혼? 잠깐인데. 직장? 잠깐인데. 학교 다니는 것? 잠깐인데. 젊음? 잠깐인데. 언젠가 곧 떠나야 될 순간을 앞에 두고 천국 문이 열려있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지 않고, 내 있을 곳을 예비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놀라운 은혜의 티켓을 하늘나라 여권을 여러분은 가지고 계시니 얼마나 행복한 자입니까?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구원의 은혜를 쉽게 주셨지만 구원받은 자의 성도의 삶은 어렵게 하십니다. 믿음은 쉽게 믿었지만 믿음을 지키는 것은 어렵게 하셨습니다. 천국까지 가도록 우리의 길은 열어 놓으셨지만 가는 길은 장애물이 많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가는 날 동안 여러분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이 믿음 지키기 위해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과 시험과 환난이 있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공로 없이 하룻밤 사이에 잠자고 나니까 해방이 됐습니다. 그것은 자기 공로가 아닙니다. 그러나 애굽을 떠난 다음에 광야의 길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하시되 구원의 은혜는 값없이 주시나, 구원 받은 자의 삶은 하루하루 좁은 길을 걸어가게 하시고 십자가 짊어지고 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 죄를 짓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길은 너무 쉽습니다. 죄를 지을 때 무슨 고민이 있습니까? 술 먹을 때 울어가면서 눈물 흘려가면서 심히 노력해 가면서 몇 년 힘써서 술 먹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람피우는 사람이 힘쓰고 고민하며 어려워 눈물 철철 흘리며 바람피우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 가는 길은 누구든지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가고 싶은 대로 가며,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악의 길입니다. 넓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마지막은 천국이 아닙니다. 멸망입니다. 영원한 멸망, 땅에서도 멸망, 하늘에서도 갈 곳이 없습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하나님 앞에 믿음의 길을 걸어간 모든 사람들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믿음 지키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다가 모든 고난이 왔습니다. 여러분! 주일을 지키려면 고생합니다. 손해 봅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요셉도 믿음 지키다가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 보디발 아내가 하는 대로 따갔더라면 감옥도 안 갑니다. 감옥 갈 일이 있습니까? 믿음 지키다가 감옥 갔습니다. 하나님 두려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특별히 대우했을 겁니다. 낮에도 일 안하도록 만들어 주고 남편이 신던 신도 가져다주며, 옷도 가져다주고 특별대접을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은 아니지만 멸망의 길입니다. 감옥은 아니지만 감옥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는 끝납니다. 그는 살 수 없습니다. 부모님, 형제 못 만납니다. 높은 자리 올라갈 수 없습니다. 죄를 짓고 잘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죄는 멸망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 갔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엄청난 어려움, 손해, 환난 다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감옥이 끝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지만 사자 굴에서 오히려 왕에게 총회를 받는 총리가 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오히려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총리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졌습니다. 가족을,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영광이 왔습니다. 모든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환란, 고난, 어려움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구원의 은총은 값없이 받고,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좁은 길로 가고 어렵게 살며, 힘들게 살고, 편한 길이 있습니까? 행복한 길이 있습니까?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런 길은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나옵니까? 좁은 길, 믿음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믿음 지킬 때에 많은 손해와 아픔과 어려움도 오고 쫓겨나기도 하며, 여러 가지 환난 핍박이 있지만 이제와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달려가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놀라운 축복이 예비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많은 현대인들의 불행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너무 쉽게 행복하고 쉽게 잘 살며, 적당하게 살고 편하게 살며, 편하게 믿으려고 하는 오늘 물결들이 우리 한국교회를 너무 덥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연예 신인같이 희희낙락하면서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실패자의 길, 멸망의 길, 지옥의 길,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쉽게 살았군요. 평안한 길로 갔군요. 마음대로 놀았군요. 하라는 대로 했군요. 하고 싶은 대로 했군요.” 이런 삶은 본인과 가정과 그 나라의 불행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하여 주시는 한나의 삶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 사무엘서는 새로운 시대에 놀라운 새 장이 열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라 그러면 사실은 이 사무엘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이스라엘의 역사, 족장들을 삶과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애굽에 가서 나중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거쳐서 가나안에서 사사 시대가 있었습니다만은 그런 시대는 오랜 방황하는 시대이고, 또 사사 시대 때도 어떻게 보면 부족시대입니다. 12지파가 다 따로 나누어져서 살던 시대인데, 사무엘에 들어와서는 통일왕국시대가 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이 건설되어 온 세계를 향하여 크게 기여하는 새 시대가 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대단한 번영과 자유와 발전을 우리가 누리고 있지만 앞으로 10년이나 20년 지나면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통일될 때에 사무엘 시대가 우리나라에도 열릴 것입니다. 그때에 모든 그 시대 문화와 정치나 그 시대 사람들은 우리시대를 보고 그전에 남북분단시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앞으로 좋은 시대를 바라보면서 사무엘 시대를 기도하고 사무엘 시대를 준비하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1, 딱 열면 누가 나오느냐 여기에 중요한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한나라고 하는 여인입니다. 한나는 평범한 여인입니다. 한나는 대단한 여인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불행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한나라고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사무엘 시대의 창을 여십니다. 한나는 결혼해서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남편에게는 한없는 사람을 받았지만 자녀를 못 낳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새로 장가를 갔는데, 그 부인은 브닌나라고 오자마자 자고 나면 자녀들이 태어납니다. 계속 자녀들이 많이 태어납니다.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그러나 한나는 울고 부르짖어도 자녀가 태어나지 아니합니다. 이것만 있었으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래도 살 수 있습니다. 남편이 사랑하고 살 수 있는데, 자녀를 많이 낳은 브닌나가 늦게 들어왔지만 한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여자들 세계를 잘 모릅니다. 남자는 직장에 나가니까 집안에서 여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브닌나와 한나, 두 여인에게 남편이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브닌나는 한나는 괴롭힙니다. 여자가 여자를 괴롭히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시어머니, 며느리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남자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힙니다. 밥하라고 그럽니다. 애도 없는 주제에 밥하라고, 밥하고 나면 설거지하라고, 좀 피곤해 자면 애도 없는 것이 자빠져 자냐고, 일하라고, 물론 그런 것은 안 나옵니다.

 

안 나와도 여기에 보면 학대했다는 것이 나옵니다. 못 견디게 만드는, 그러니까 계속 울고 통곡하는 것이 나옵니다. 너무 어려운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욕을 막 합니다. 못살게 합니다. 잠은 무슨 잠을 자냐고 일만 시킵니다. 먹는 것은 무엇 하러 쳐 먹냐 그러고, 화장은 왜 하냐고 그러고, 머리는 무엇 때문에 파마하냐 그러고 못 살게 합니다. 음식을 안 먹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안 먹느냐?” 남편은 모르는 겁니다. “나는 열 아들보다 당신이 더 귀하다.”고 그러나 참 위로자는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브닌나는 오자마자 아들을 계속 낳았습니다. 한나는 힘쓰면서도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들을 잘 놓는다고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막 잘 태어난다고, 그게 형통하다고 해서 복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돈 버는 겁니다. 돈을 마대로 끌어넣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도 복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잘 되느냐? 왜 이렇게 좋으냐? 그것도 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셔야 됩니다. 한나는 왜 안 되느냐? 안 된다고 해서 이게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나가 왜 안 되었습니까? 왜 아들을 못 낳았습니까?

 

오늘 본문에 여호와께서 성태치 못하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막으셨습니다. 완전 막은 것은 아니라 여기는 왜 막으셨습니까? 태의 문을 먼저 열고 믿음의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한나에게는 믿음의 복을 먼저 주시고 하늘 문을 먼저 여시고 태의 문을 여시려고, 하늘의 문을 여시고 기업의 문을 여시려고, 영적인 문을 여시고 육의 문을 여시려고 이 문을 닫으신 겁니다. 이것이 순서가 좀 늦어지는 건데, 이런 순서에 의해서 우리가 살아야, 한나와 같은 이런 후자의 복을 받아야지 전자와 같이 이렇게 먼저 아들을 놓고 부족함이 없으면 저 문이 열리느냐? 안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내가 암만 나으면 잘 믿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다. 암 나아보십시오. ‘그러고 안 믿습니다. 믿음이 그냥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가지면 오히려 반대입니다. 어떤 분은 잘 살면 내가 잘 믿겠다하는데 잘 살면 오히려 못 믿기 쉽습니다. 물론 잘 믿어서 잘 산 사람은 잘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살고 잘 믿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잘 믿는 사람은 부자라도 천국 갑니다.

 

우리가 한나의 길을 걸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나는 다 있었고 고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영적고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아닙니다.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한나는 모든 것이 없는 것 같고 시달리며, 눈물 밖에 없었지만 이 눈물이 내 영혼을 적시고 속사람을 소생시키는 시냇가의 생수와 같았습니다. 이 눈물 때문에 한나의 영혼은 살아나는 겁니다. 이 눈물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상한 심령을 위로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한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찾으라고, 기도 하라고, 위의 문을 열라고, 천국 문을 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문을 닫으시는 겁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좋은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은 세상의 것이 먼저 옵니다. 행복이 왜 이렇게 일찍 찾아옵니까? 1020대부터 5060대가 받아야 할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의 번영과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다 후회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하여 은혜를 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 은혜를 주십니까? 우리는 한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한나는 사랑하는 남편을 통하여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한나의 은혜는 브닌나를 통하여 받은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브닌나가 밉고, 브닌나가 없어지고, 브닌나한테 이기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나를 위대한 어머니로 만든 것은 브닌나입니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하나님께 나가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귀하게 들어 쓰실 분에게는 하나님은 브닌나를 주십니다. 다윗 왕에게는 사울이 평생 브닌나였습니다. 모세에게는 바로 왕이 브닌나였습니다. 에스더는 하만이 브닌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질병이 브닌나였습니다. 야곱에게는 형이 브닌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수많은 남자들이 브닌나였습니다. 다 그에게 아픔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브닌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을 만나보면 다 아픔이 있고 기도제목이 있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일수록 아픔이 있습니다. ‘내게는 왜 이런 어려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내게 있는 이 아픔, 내게 있는 고통, 내게 있는 이 시험이 여러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어려움을 당할 때에 우리를 어려움에서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브닌나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힘을 주십니다. 천국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해 줄 때 하나님 아버지! 이 분은 건강하게 해 주시고, 가정도 평안하고 만사형통하며, 아무 어려운 일이 없도록 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면 안 됩니다. 기도할 때 주여! 오늘도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당하는 환란고초 많으나 이길 힘을 주시니 더욱 크신 은혜라 답답할 때 기도로 쓰러질 때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니 주여 감사합니다.(복음송 - 더욱 크신 은혜라)

 

미국 세관에 어떤 직원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습니다. 너무나 큰 어려움이 왔습니다. ‘이제 어떻게 사나? 아이들하고 가족들을 어떻게 하나?’ 너무 너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말하기를 여보! 당신은 글 쓰는 능력, 그런 은사가 있는데 글을 쓰세요?” “여보! 내가 무엇을 먹고 글을 씁니까? 직장 없이 우리 아이들하고 어떻게 삽니까?”, “제가 만약을 위해서 이렇게 모아놓은 것이, 저축해 놓은 것이 있는데 1년을 먹고 살 수 있어요.”라고 알려줍니다.

 

여러분! 여자들은 언제나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반듯이 감추어 놓은 돈이 누구나 있습니다. 금방 돈이 있다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장신대 다닐 3년 동안 너무 그때 어려웠습니다. 등록금을 못 내어 힘들면 집사람이 등록금을 줍니다. 그 어려운 때에 돈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있냐 그러니까 반찬 아끼고 남겨 그것을 모아놓은 거랍니다. 그래서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또 한번 필요해 숨겨놓은 것이 있냐고 도와달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없답니다. 왜냐하면 졸업했는데 왜 제가 그렇게 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숨겨 놓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런 준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모아놓은 것 가지고 이분이 글을 썼습니다. 열심히 기도 하고 두 분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겁니다. 여러분!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서 위대한 작품이 나옵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쉽게 하지 않습니다. 인류역사에 위대한 조각이든, 음악이든, 예술 어떤 분야든 간에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서 위대한 작품이 나옵니다. 이 사람도 아픔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이 책이 유명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주홍글씨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나다니엘 호손이라고 하는 분이 이 글을 써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위대한 어머니가 되고 위대한 사무엘이 탄생되며, 위대한 가정이 만들어 지고 위대한 시대가 오며, 위대한 놀라운 교회가 탄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형통하게 살다가 어려움이 오면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살하는 길로 갑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못 이깁니다. 쉬운 것은 너무 잘하는데, 어려울 때를 못 이깁니다. 우리나라에 정신병자가 3백만 명이나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좋은 시대에 왜 정신병자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 것입니까? 우울증 환자가 몇 백만이 왜 이렇게 나옵니까? 어려움을 못 감당하는 겁니다. 이것은 브닌나의 길입니다. 한나의 길은 어려움을 잘 감당하는 겁니다. 축복이야 감당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축복은 저절로 누릴 수 있는 거니까. 우리는 천국도 얻고, 하늘과 땅의 복을 다 누리는 한나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2년 민주당 대통령이 되어서 네 번이나 연임을 했습니다. 이 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전 국민의 4분의 1이 실업자였습니다. 우리는 7%, 5% 그래도 대단한데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38개주에서 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는 아마 미국이 50개주도 아닐 겁니다. 1932년대이니까. 38개주의 은행이 몽땅 문 닫는 그런 불황이 와 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때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첫 번째 나오는 인물이 루즈벨트입니다. 위대한 대통령은, 위대한 나라는, 위대한 사람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려움이 왔을 때 어려움을 잘 감당하는 겁니다. 어려움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한나의 길을 가면 어려움에서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가 나라를 이끌면서 얼마나 기도합니까?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17시간을 혼자서 계속 기도한 사람이 루즈벨트입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17시간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국가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을 네 번이나 역임을 했습니다. 이분은 그 책에 보면 1921년 병에 걸렸는데 척수회백질염에 걸렸습니다. 저는 이 병에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척추를 못 쓰게 되면서 걷지를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며, 휠체어에 기대고 겨우 지팡이를 잡아야 일어나는 안타까운 병입니다. 건강해도 어려운데 이런 장애를 가지고 어떻게 미국 같은 큰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로 가면 이겨낼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능치 못하심이 없으실 줄로 믿습니다.

 

지난 3월에 제가 백악관을 다녀보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그럽니다. “이 자리는 루즈벨트가 집무했던 자리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입니다. 항상 밤에 주무실 때는 침대까지 이동을 해 주는 비서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날은 비서가 자버려 루즈벨트가 밤새도록 그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의자를 제가 봤습니다. 그렇게 연약한 몸을 가지고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기도하면, 무릎을 꿇으면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브닌나를 이기려고 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 됩니다. 브닌나의 상처를 받아, 브닌나를 적으로 알고, 브닌나의 길로 가면 브닌나도 망하고 한나도 망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브닌나의 아픔을 가지고 뒤돌아서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갑니다. 주님을 찾아갑니다. 기도의 동산을 찾아갑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흘린 눈물이 이렇게 놀라운 일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교인이 되어서도 너무 오늘 쉽게 기도 하려고 그러고 쉽게 믿으려고 그러며, 쉽게 살려고 그러고 교회에 와서 짐 안 지려고 그러며, 쉽게 믿는 길 있습니다. 등록을 안 하고 맛만 보고 이 교회 저 교회 갔다가 이 교회 맛 끝나면 저 교회 맛보고, 그러면 쉽기야 쉽습니다. 뒤에 앉았다가 빨리 나가고.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짐을 져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면 힘듭니다. 가정 안 지키고 살려면 쉽습니다. 이 다방에 가서 아가씨를 사귀었다가 저 순자네 다방 가서 한참 놀다가 이렇게 돌아다니면 쉽습니다. 그러면 한나는 될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교회는 문제가 다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서 문제를 만나고 문제가 있으며, 이 세상에 주의 종들도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종이 복을 받는 겁니다. 십자가 때문에 은혜를 받습니다. 할렐루야!

 

아프리카 마사이마라라고 하는 곳에 저도 가보고, 여러 동물의 왕국을 늘보여주는 짐바브웨라든지, 탄자니아라든지 가봤습니다. 제가 제일 놀랐던 것은 사자 있는데 가면 사자가 놀라지 않습니다.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1미터 앞까지 갑니다. 차 세워 놓고 내려다보면 봐라그러고는 누워 가지고 놀고, 장난하고 그럽니다. ‘나 사자는 동물의 왕이다. 너희들은 와봐야 새 발의 피다.’라며 그렇게 놉니다. 그래서 동물 가운데 가장 힘 있는, 능력 있는 사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자기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코끼리 또한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이 두 동물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동물에게도 적은 있습니다. 이 동물을 못살게 구는 적이 있는데 그 적이 무엇이냐? 파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의 파리는 우리 파리의 두 배, 세배가 됩니다. 동물들에게 달라붙는 이 파리는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눈이고 코고 귀고 다 달려들어서 물어뜯는데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한순간도 있지 못하고 머리를 흔듭니다. 계속 꼬리를 치고...

 

여러분! 저는 이 의미를 몰랐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자는 그 파리 때문에 2, 3년의 생명이 연장된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사슴 뜯어먹고 잠만 자 보십시오. 금방 병들어 죽을 텐데 못 견디는 겁니다. 코끼리도 계속 귀로 부채질 합니다. 그 큰 동물이 먹고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납니다. 잠만 자 보십시오.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이 파리 때문에 사자의 생명이 연장되고 건장해 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새벽기도 왜 나옵니까? 파리 쫓으려고 나오는 겁니다. 매일매일 달려드니까 아버지그러고 기도하고 왜 우리가 교회에 나옵니까? 한주일이라도 안 나오면 파리 때문에 안 됩니다. “모든 사탄의 세력 다 물어갈 찌어다.” 그러면 또 물어갑니다. 내일되면 또 달려듭니다. 세상 끝날 까지 파리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쫓아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루도 기도하지 않고는 안 되도록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지나놓고 보면 그것같이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한나가 복을 받은 것은 바로 브닌나가 날마다 애를 먹이니까 한순간도 마음 놓지 않고, 한순간도 잠 못 자도록 계속 충동질하고 격동시켜서 한나가 되고 위대한 어머니가 된 겁니다. 다음 주일은 한나의 기도에 대해서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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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도하던 여자입니다 삼상 1:26~1:28

 

성경에 기도의 어머니하면 한나를 첫째로 꼽습니다. 한나는 정말 보통 어머니가 아닌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한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한나는 기도 하나로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온갖 저주와 불행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이 여인이 소생하여 만인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한나는 사무엘을 낳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이 거룩한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기도로 얻은 아들, 기도하던 곳에 와서 나는 기도하던 여자.’라고 그 아들을 주님에게 바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이 여인의 삶을, 들소의 뿔을 높임과 같이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기도의 어머니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어머니가 있지만 기도의 어머니를 우리가 찾고 있습니다. 기도의 어머니는 기도의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모자가 다같이 훌륭한 인물로 등장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마 한나와 사무엘을 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훌륭해도 어머니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가 훌륭해도 그 어머니를 예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아마 한나와 사무엘과 같이 이 두 모자가 다 위대하게 된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한나는 기도로 본인도 훌륭하게 되고 모든 슬픔과 눈물을 씻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또 사무엘도 어머니의 기도의 영향을 받아 일생동안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는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사사로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드느냐?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셔서 이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도는 실로 은혜의 삶이요, 기적의 삶이요, 생명의 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예찬할 수 없는, 다 말할 수 없는 은혜가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외하고 교회사, 인류역사의 오늘날까지 가장 위대한 인물을 손꼽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를 꼽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로 카톨릭에서 귀하게 보는 분을 개신교에서는 귀하게 보지 않고, 개신교에서 귀하게 보면 카톨릭에서 귀하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루터가 그렇게 훌륭해도 카톨릭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칼빈이나 루터를 그렇게 예찬하지만 카톨릭은 또 입장이 다릅니다. 여러분,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카톨릭도, 개신교도 모든 종교가 다같이 귀하게 보는 첫째 인물은 이 어거스틴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어거스틴도 원래는 청소년 때부터 탈선한 탕자였습니다. 이미 사람을 버렸습니다. 못 쓰게 되었습니다. 끝난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 모니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하나님 앞에 매어달립니다. 이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한나와 같이 기도하던 여자가 됩니다. 기도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기도밖에 몰랐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 한 가지로 하나님 보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면서 이 아구스트누스는 살아납니다. 32살 늦게 이 아들이 한 순간에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여러분, 이 분의 신학과 이 분의 사상이 오늘 교회사에 우리의 교리까지 가장 중요한 골격을 이 한 사람이 다 형성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교리도 어거스틴에 의해서 다 나오고 수많은 이단과 기독교의 갈림길 속에서도 교회 정통성을 끝까지 유지하도록 이끌어 준 분이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그래서 이 어기스틴과 모니카는 두 분이 다 카톨릭에서는 성자라고 그러는데 이 반열에 모자가 다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계적인, 몇 천 년에 걸쳐서 위대한 인물이 어디서 만들어지느냐? 한 여인의 손을 모아 기도하고 무릎 꿇는 이 눈물에서 위대한 일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오직 기도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 가장 훌륭한 어머니는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절망, 99%의 절망이 있고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불행과 슬픔과 침륜에 깊이 빠진 삶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못 일어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은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인간은 영적인 피조물입니다. 요사이는 생물학적으로만 인간을 보는데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도 동물과 똑같고 먹고, 자고, 밥 먹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잠자고, 뭐 다를 게 뭐 있냐? 동물도 말하고, 동물도 생각하고, 인간도 다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음식과 동물의 음식이 다릅니다. 인간의 사상과 동물의 사상이 다릅니다. 인간의 윤리와 동물의 윤리가 다릅니다. 인간이 가정을 이룩하는 것과 동물이 가정을 이룩하는 것은 다릅니다. 인간은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피조물입니다. 종교적으로도 기독교의 눈으로 사람을 보아야 됩니다. 유교는 단순히 인간을 도덕적인, 윤리적인 그런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그런 입장에서만 인간을 봅니다. 도덕적으로 갖가지로 얽어매서 사람을 꼼짝 할 수 없게 만들어서 수 천 년 동안 유교의 그늘 아래서 조금도 인간은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도덕도 지켜야 해요. 물론 예수 안에 도덕도 지키지만 도덕 위에 신앙이 있고 도덕 위에 믿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해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런 영적인 인간관계의 책임을 다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책임을 다 해야 되고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만물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능력 있는 피조물로서 살아야 되는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오늘 현세를 다 탈피해서 벗어나서 요다음 세대만 윤회설을 주장해서 다시 태어나는 데에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도 중요하고 여기의 삶도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나서 천국 가고 금생과 내생, 땅과 하늘, 나와 자손 영원히 우리가 책임져야 할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우리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거룩하고 영원하고 신령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대화하고 하나님을 사귀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기적을 만들고 에덴동산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건설하는 이런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귀신과 대화가 아닙니다. 창조자와의 대화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리리라.” 고 했습니다. 시편 68절에는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시편 9115절에는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시편107편에는 저희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리니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얽어매는 온갖 저주에서 기도의 줄을 붙잡으면 하나님이 인간의 줄을 끊어 버리시고 자유와 평화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나가 자기를 둘러싼 슬프고 억울한 일이 한 없이 많이 있고, 아무 소망이 없고, 삶의 의미가 없었지만 기도하면서 하루아침에 먹구름은 다 걷어지고 자기를 둘러싸던 온갖 저주는 떠나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모든 슬픔의 종류가 크든 적든 어떤 것이든 기도는 다 넘어설 수 있고 이길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고,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질병도 기도하십시오. 어려움도 기도하십시오. 어머니의 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 가정을 살립니다. 자녀를 살립니다. 자녀에게 물려주는 유산은 교육과 지식과 건강과 물질이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기도의 유산은 더 큰 것입니다. 물질 물려주고, 건강 물려주고, 지식을 물려주어도 그 자녀는 불행할 수 있지만 믿음을 물려받은 믿음의 아들은 절대로 불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건 기적이에요. 기도를 물려주었는데도 그 자녀가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링컨의 어머니는 여러분이 아는 대로 너무 무식하고 두 내외가 공부하나 하지 못했고 주변에 아예 학교가 없었어요. 링컨을 낳아서 어머니의 손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의 손을 만들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링컨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천하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신앙을 물려받아서 그의 가는 길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절망 밖에 없었지만 그는 우편배달부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적인 지도자로, 대통령으로 인류 역사에 위대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전에 제가 그 설교를 했지 않았습니까? ‘백악관을 기도 실로 만든 대통령’, 백악관에 들어가더니 백악관을 기도 실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인간의 능력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잘 나봐야 얼마나 잘나고 알아 봐야 얼마 더 알겠어요? 건강해 봐야지요. 그게 차이가 얼마 있겠어요? 혈압 차이밖에 없어요. 조금 많아 봐야 얼마 많겠어요? 인간은 다 연약합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사람은 약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절대로 약하지 않습니다. 질그릇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손에 있는 능력이 같이 하기 때문에 그는 없어도 만들어내고 그는 어떤 어두움 가운데서도 빛을 찾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가운데 하나가 기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도는 선물이에요. 기도하면 이루어주십니다. 없는 것 다 주십니다. 땅을 달라 하면 땅을 주시고, 하늘을 달라 하면 하늘을 주시고, 세계를 달라 하면 세계를 주시고, 명예를 달라 하면 명예를 주시고, 건강을 달라고 하면 건강을 주시고,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하니까 아들을 주셨어요. 하나님은 달라고 하는 대로, ‘구하라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자기를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나는 여기서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으니 높은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잘 나고 출세한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대단한 사람들, 세계적으로 많이 만납니다. 한 주일에도 억수로 많이 만납니다. 만나보면 과거를 자랑하는 분들 있습니다. 대단한 부모님, 대단한 재산, 부자, 좋은 집,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좋은 학교, 어디에서 박사 받고 어디에서 뭐 하고 많이 만납니다. 힘이 얼마나 좋고 능력 있고 천하를 호령했던 분들을 많이 만나지요. 그러나 다 별 수 없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늙는 길 막을 수도 없고, 병든 길 막을 수도 없고, 요만한 시험 하나도 이겨낼 수 없어요. 대단해도 별 수 없어요. 그러나 과거에 기도했던 사람, 그 사람은 다릅니다. 그 사람은 과거에 다른 자랑 할 것이 없어도 기도했던 사람의 오늘은 놀랍습니다. 기도했던 사람의 내일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막을 자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개인적으로도 행복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은 가정을 살리고 나라와 민족을 살려내는 줄로 믿습니다. 국가의 어려움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살려주십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앗수르에게서 나라를 건져내었고, 다윗은 기도해서 이스라엘에 평화를 주시고 번영과 발전을 주셨어요. 여인은 누구보다 약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여인은 강합니다. 어머니는 약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어머니는 강합니다. 기도로 내 가정, 주신 내 자녀들, 사무엘로 길러내고, 어거스틴으로 길러 내고, 링컨으로 길러 내는 우리교회의 어머니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나라 정주라는 곳에 박연순 집사님이 예수 믿고 첫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처음 믿을 때가 좋습니다. 처음 집사 될 때, 처음 권사 될 때 좋습니다. 처음 안수집사, 장로, 목사 될 때가 좋습니다. 저도 목사 안수 식에 가서 안수기도 해 보면 밑에 눈물, 콧물이 다 엉켜 있습니다. 얼마나 눈물, 콧물 쏟아서 감사하고 첫사랑은 다 아름답습니다. 부부간에도 첫사랑이 아름답습니다. 비가와도 둘이 같이 비 맞으면서 걷고, 토끼같이 비를 맞아도 둘이 좋아하고, 눈이 오면 둘이 공연히 눈싸움하고, 좋아하고, 눈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 첫사랑이니까. 첫사랑은 아름답습니다. 뜨겁습니다. 신앙생활도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는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그랬습니다. 열심을 내고, 교회가 좋아서, 예배가 좋아 가지고, 목사님이 좋아 가지고, 어쩔 줄 모르고, 그러다가 서서히 식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안돼요. 첫사랑을 일생동안 유지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도 첫사랑, 교회도 첫사랑,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으면 멀고 춥고 배고프고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박연순 집사님도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논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고 교회 사찰로 들어가서 봉사하고 너무 좋으니까. 그런데 선교사가 이 이야기를 들었어요. 알 매킨이라고 하는 선교사가 듣고. 참 주의 종들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참 아름답거든요.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 교회도 정말 잘 믿는 첫사랑의 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배 마치고 청소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주일 날 우리 교회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얼마나 많아요? 몇 톤이 됩니다. 그것 다 밤 열한 시까지 치우고 둘러앉아서 전부 찬송 부르고 가고, 첫사랑이에요. 수 백 명이 교회 화장실 다 닦고 가는 거예요. 사실 이런 것은 교회 직원들이 해야 하는데 하나도 우리 교회 직원들이 손 안 대고 교인들이 안팎 청소 다 하고 갑니다. 이것이 뭐예요? 첫사랑이에요 첫사랑. , 첫사랑을 돌아보면 그렇게 행복해요. 여러분, 이런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이 분이 너무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니까 선교사가 그 아들을 데려다가 공부를 시켰어요. 저 중국에 데려다가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미국 데려가서 프린스턴에서 공부하고 예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 장관이 됩니다.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었어요. 이 분이 백낙준 박사예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하여튼 기도하는 어머니마다, 신앙의 열심을 내고 주님을 사랑하는 어머니마다 다 잘되는 거예요. 모니카도 그 어머니와 아들이 다 잘 되고, 한나도 사무엘도 다 잘 되고, 링컨의 어머니도, 그 아들도 다 잘 되고 박연순 집사님도 그 어머니의 아들도 다 잘 되고, 모두 다 기도의 속에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기도하는 사람은 할 이야기가 많아요. 응답이 많아요.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우리 모두 기도의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제 공로가 아니에요. 백 가지가 저는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 덕택이에요. 내가 여기 된 것도 우리 어머니요,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된 것도 우리 어머니 덕택이에요. 어머니가 그 가난한 가정에서 그 자녀들 많이 낳아 기르면서 새벽기도 하루도 안 빠지고, 주일을 얼마나 잘 지키고, 들에 가서 다 일하고도 저녁예배 꼭 나가고, 남루한 옷을 입고, 아주 먹지 못하고 비벼 놓으면 여동생들이 다 한 순간에 먹어버리고, 굶주리고 아이들이 젖을 먹어 가지고 젖이 다 말라서 바짝 말라서 너무 잡아 당겨서 길이가 여기까지 내려오고, 옷을 입으면 늘 젖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교회, 신앙생활 철저하셨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한 순간도 성미를 잊어본 일이 없고, 한 길로 기도의 어머니, 눈물의 어머니로 저를 기도해 주셨어요. 저는 한 순간도 어머니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음식을 먹어도 어머니 생각, 좋은 곳에 가도 어머니 생각, 어제 설교 준비하다가도 어머니 생각이 나는 거예요. 어머니 기도가 아니면 어떻게 내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다 어머니의 덕택입니다. 얼마나 어제도 어머니 생각을 하고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 너무 너무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안 울었으면 어떻게 내가 이런 은혜를 받겠습니까? 기도의 어머니를 만난 것이 저의 축복입니다. 땅 하나 못 물려주고 아무 재산 못 물려주었지만 그 기도한 그것만 내게 물려 주셔도 저는 오늘 이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기도의 어머니는 헛되게 살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천한 곳에 있어도 그 자녀들 다 금 그릇같이 만들고 세계적인 그릇으로 만듭니다.

 

오늘 이렇게 먹을 것 많고 입을 것 많고 살기 좋은 시대라도 다 백 퍼센트 대학에 들어가는 이 시대지만, 그러나 기도하지 아니하니 훌륭한 인물도 안 나오고 훌륭한 어머니도 안 나오는 거예요. 헛된 일에 모두 시간을 빼앗기고 헛된 일에 모두 분주한 거예요. 우리는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기도를 본받아 저도 기도의 사람이 되었어요. 저도 사교적인 성격이 참 많고 학교 다녀도 상당히 활동적이고 규율부도 하고, 학생회장도 하고, 막 그런 성격이었는데도 어머니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도의 길로 들어갔어요. 새벽종을 어려서부터 치고 내가 목회자의 길로 가지 않았는데도 새벽종을 일찍부터 내가 친 거예요. 열일곱 살부터 새벽기도를 하면서 새벽종을 치고 학교 다닐 때나 군에 갈 때나 신학교 때 목회 할 때나 새벽기도를 놓치지 않았어요. 항상 하나님 앞에 일찍 가서 난로 불 켜고 마루 닦고 먼저 예배 준비를 하는 거예요. 교인들이 다 가도록 기도하는 거예요. 항상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의 줄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리고 늘 기도를 멀리 바라보았어요. 하나님, 나의 길은 하나님의 손에 있사오니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 주시고 저에게 은혜를 주시되 40부터 은혜를 주십시오. 십 대부터 기도하던 사람이 빨리 응답해 달라고 할 텐데, 멀리 바라보았어요. 40대에 하나님 내게 복을 주십시오. 저는 서른 네 살에 하도 어려워서 신학교 다니는데 너무 고생하고, 먹을 것도 없고, 갈 데도 없고, 그래서 아이고! 내가 왜 마흔이라고 기도했는지 서른 네 살이라고 할 텐데........ 서른일곱 살 때는 마지막 견딜 수가 없는 위기가 왔어요. 더 이상 살 소망도 없었어요. 그러나 내가 마흔 살부터 축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조급하게 하면 안돼요. 멀리 보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명성교회 개척을 서른여덟 살에 했어요. 이 교회를 개척하고 마흔 살에 요전에 지금 이 교회 바로 전에, 이 자리에 교회가 천오백 석이었어요. 83년도에 천오백 석이면 큰 교회입니다 그 때로는. 아주 큰 교회였어요. 개척하고 3년 만에 천오백 명 들어가는 교회를 세웠어요. 그리고 그 교회도 금방 차고 넘쳐서 4, 5부 되어서 1987년에 이 교회를 새로 건축한 거예요. 개척하고 7년 만에! 다른 것 없었어요. 아무도 없어서 요만한 상가 종점에 얻어서 거기서 집에도 가지 않고 의자에 누워 가지고 1년을 자면서 하나님 앞에 또 기도했어요. 하나님, 사람도 없고 여기는 종점이고 올 사람도 없고요, 이 고덕지구를 개발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지역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목회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역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 지역의 그린벨트를 풀어주십시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혼자 상가 위에 올라가서 고덕지구를 보고 손을 들고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 지역에 복을 주셔서 은혜를 주신 거예요. 나올 교인이 없어서 새벽기도 19809월에 25명을 목표하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25명만 보내주십시오. 그래가지고 내 손으로 전부 등사를 해서 그것으로 교재를 삼고 새벽기도를 시작했어요. 한 달 동안 계속 그러면서 다녔는데 첫 날 시작해보니 놀랍게도 25명이 나온 거예요. 나는 머리만 세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서 새벽기도가 끝나니까 반은 안 나오고 반은 계속 나왔어요. 그래서 열두 명, 열 세 명이 새벽기도를 계속 이어가면서 기도의 줄을 잡게 되고, 기도의 불이 켜지면서 교회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여러분, 어떤 불이 꺼져도 기도의 불만 켜면 어두움은 다 물러가는 거예요. 가정도 기도의 불을 켜시라고요. 기도를 불로 비유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기도의 불이 꺼지면 안 된다 그러셨어요. 가정의 기도의 불이 꺼지면 인생의 불이 다 꺼져요. 아무리 좋은 남편을 만나도 기도의 불이 꺼지면 그건 나무토막하고 사는 것이지 행복이 없어요. 인생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불이 켜지게 되어 있어요.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잃었던 모든 것을 찾습니다.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이라고 하는 분이 지은 책 가운데 <잃어버린 불을 찾아서>가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이 책이 너무 좋다고 소개가 되어서 어떤 책인가? 하고 샀어요. 이 책의 내용이, 프랭클린을 여러분, 알지요? 세계적인 과학자요, 정치가요, 출판가요, 교육가요, 계몽사상가요, 작가이지 않습니까? 지금 피뢰침, 이것도 프랭클린이 발명을 했습니다. 이중 촛점 안경도 이 분이 발명 한 겁니다. 시계 초침도 그때까지는 분침만 있었는데 초침도 프랭클린이 만들었어요. 중요한 것 수없이 발명한 사람이고 미국의 유명한 독립선언문도 이 분이 기초위원으로, 그거 다 만든 거예요. 귀한 분입니다. 이 분은 청교도 정신을 가지고 신앙을 가지고 이 분도 배운 것이 없어요. 열두 살에 출판사 직공으로 1학년도 못 다닌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놀라워요? 그런 지혜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면 다른 건 다 따라갈 수 있어요. 어느 공부도 못 따라갈 게 없어요. 고시도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믿는 이 기도의 손만 모으면 다른 건 다 풀리게 되어 있는 거예요. 어떤 공부도 어려울 게 없어요. 하나님 잘 믿어 봐요. 이 분은 우리가,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이걸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찾는 방법을 세 가지로 이야기를 하는데 첫째는 근면해야 되고 부지런해야 되는 거예요. 쾌락을 버리면 쾌락이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쾌락적으로 가면 쾌락은 다 떠나요. 참새가 날아가듯이 다 날아가요. 하나님을 향하여 부지런하고 근면하면 온갖 기쁨이 다 찾아온다는 거예요. 쾌락이 오히려 찾아온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쾌락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쾌락을 찾아가는 인생은 잃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을 찾아가야 쾌락도 따라오고, 부지런하고, 꾸준하고, 신중하고, 절대로 낙심하고 좌절하지 말고 뭐든지 단 기간에 한탕주의로 금방 뭘 이루려고 하는 이런 생각을 버리고 꾸준하게 멀리 장기전으로 나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시내에 어떤 극장에, 권사님이 그 극장 사장이에요. 그런데 그 극장에 하루는 어떤 분이 극장을 다녀가면서 자기 반지를 잃어버렸나 봐요. 전화를 하면서 반지 좀 찾아주세요. 반지를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밑에 사람 시켜서 보니 반지가 없어요. 그 분도 끈질기게 1주일을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매일 반지 찾았어요? 반지 찾았어요? 반지 없어요?’ ‘없다고.’ 그래서 이 권사님도 교인이니까 그것 좀 잘 찾아보라고. 그런데 7일 째에 그걸 찾았어요. 일곱 째 날, 그걸 찾았어요. 그런데 그 분이 엿새 동안 전화하더니 일곱째 날은 또 그 날부터 안 하는 거예요. 포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권사님이 깨닫기를 아, 하나님 앞에 기도도 끝까지 기도해야지, 그 하루를 남겨 놓고 포기했다가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 예수님이 낙심치 말고 기도하라. 고 했어요. 끈기 있게, 꾸준하게 하라는 거예요. 일을 하든,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든, 뭐든지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꾸준하게 나가라는 거예요. 이것이 잃어버린 부를 찾는 거예요. 절약하라 이런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고 여기에 제일 중요한 사상은일 뭐냐? 하면 마지막에 말하는 거예요. 이 세 가지가 아무리 있어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모든 조건을 갖추려 하지 말고 기도를 우선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결혼의 조건, 행복의 조건이 다 갖추어 졌지요. 그러나 행복이 없는 것은 기도가 빠졌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운전을 할 때 운전도 잘 하고 자동차도 벤츠, 그리고 좋은 고속도로 제 아무리 좋은 것을 갖추어도 하나님이 동행하지 아니하시면 그 자동차는 믿을 수 없어요. 내가 아무리 건강하고 운동 많이 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그 건강 믿을 수 없어요. 아무리 좋은 일류대학 나오고 인물이 신성일 같이 좋고 아무리 좋은 집이고 건강하고 인기가 만점이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시면 좋은 걸 잃어버리는 거예요. 빛이 없는 가정이 되는 거예요. 생명 없는 가정이에요. 기도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다 있어도 기도하십시오. 완전해도 기도하십시오. 걱정 없어도 기도하십시오.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기도를 빼면 안 됩니다. 다 할 수 있고 다 이루어진 일도 틀림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기도하지 아니하는 일은 이루어져도 후회하는 거예요. 실패에요. 기도하세요. 기도는 승리의 관을 씌어 주시고, 생명이 연장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 생명을, 기도하는 생명을 연장하여 주십니다. 기도하면 풍성함을 얻습니다. 부유함이 따라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여기에 오 목사님 사모님이 몇 년 전에 완전히 뇌수술하고 살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어요. 온 교인들이 기도하고 목사님이 기도하고 그러셨는데, 사모님이 정말 천국을 가셨어요. 가셨었는데 천사가 만났더니만 다시 돌아가라. 그러더래요. 오 목사님 있는 데로 다시 돌아가라. 그래서 난 여기가 너무 좋아서 안 가렵니다. 그러니까 야야, 박종순 목사님도 돌아갔는데 너도 돌아가라 하더래요.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박종순 목사님도 암이 온 몸에 다 퍼져서 장 다 내고 그러니 박 목사님 지금 잡수시면 바로 큰 곳으로 바로 내려가는 거예요. 다 들어냈어요. 그런데도 기도하니까 박 목사님 지금 더 건강하게 일하시는 거예요.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지혜의 보고라고 합니다. 온갖 지혜를 주시고 기도하면 축복의 보고예요. 기도하면 은혜의 보고예요. 모든 은혜를 내려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려면 기도의 친구를 사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생 그 친구 간에는 변함이 없고 손해를 끼치지 않고 좋은 친구가 됩니다. 결혼을 하시려면 다 두고 기도하느냐? 안 하느냐? 그걸 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없는 데서도 있게 하지만 좋은 조건 다 갖추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녹슬게 만드는 겁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사람을 쓸 때도 기도의 사람을 써야 해요. 여러분, 회사를 발전시키려면 기도의 사람을 찾으세요. 한 사람이 천 명 ,만 명보다 나은 거예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제 한나는 기도를 통하여 자기의 삶이 변화되었고 복을 받고 기적이 일어나서 이제 떳떳하게 나는 기도하던 여자입니다.’ 자기를 그렇게 소개했어요. 우리의 미래가 어둡고 불확실한 시대에 살지만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의 미래는 아무도 막을 자가 없고 시온의 대로로 열어주시고 황무지에 장미꽃같이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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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던 곳으로 돌아온 여자 삼상 1:21~1:28

 

찬송가 197장에 보면 1절에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2절 주님의 권능은 한 없이 크오니 돌 같은 내 마음 곧 녹여 주소서. 3절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주사 굳세게 하소서. 왜 기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이 찬송가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험하고 우리는 한 없이 약합니다. 그러나 늘 기도에 힘쓰면 큰 권능을 얻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또한 매우 크십니다. 우리를 살리고도, 우리로 이기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온 인류의 것을 다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약하여 늘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우리의 사랑과 기도가, 우리의 열심히 한결 같을 수 없습니다. 넘어집니다. 약합니다. 변합니다. 실망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기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어린아이까지, 노인으로부터 남녀, 높거나, 낮거나, 있거나, 없거나, 누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 할 때만이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저 높은 곳으로 하나님께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흔히 풍랑에 비유하고, 바다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집사님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현대조선의 대표이사로 있어서 제가 한번 가보았습니다. 25만 톤급을 동시에 10척을 짓는 답니다. 자동차로 한참 다닙니다. 배 하나도 얼마나 큰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에 올라가야 됩니다. 너무 큽니다. 그보다 더 큰 배도 만듭니다. 그러나 그 배도 태평양에 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큰 풍랑을 만나면 24만 톤, 50만 톤급도 그냥 종이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풍랑 앞에 누가 큰 소리 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시애틀에서 마침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 컨테이너선에 올라가봤습니다. 그분이 와서 꼭 좀 기도를 해 달라고 해서 조종실에 가서 기도하고, 선장실이며 갑판도 올라 가 보았습니다. 엔진 크기가 5층이 넘습니다. 어마어마한 엔진입니다. 그러나 태평양 바다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새 발의 피 입니다. 새 발의 피가 무엇인가 아직도 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큰 재벌도, 큰 통치자도, 지식 있는 사람도, 세상에서 영육의 힘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이 항해를 잘 마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갈길 다가도록 목적지까지, 저 천국까지 나의 길을 인도하실 우리 하나님,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산에서나, 들에서나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승리합니다. 그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가 상하지 않도록, 우리를 안전한 항해가 되도록 우리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시편 91편은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람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보십시오. 우리의 위험한 요소요소에,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위험한 모든 곳곳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 천사들을 다 배치해 놓았다는 겁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하시려고 지켜주시려고, 화살과 놀람과 백주의 황폐케 하는 파멸과 밤에 일어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 바다, , 동물의 위험, 모든 저주, 질병, 전염병, 내 좌우편에 천명이 넘어지고 만 명이 쓰러져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32절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불에서, 물에서, 강에서, 산에서 건지실 이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에스겔 3637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아무리 내일 아침에 너를 돕는다고 약속하고, 이렇게 놀라운 약속을 했지만 너가 구하지 아니하면 못 준다는 것입니다. 약속했다고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너가 기도 하는 일에 내가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몫입니다. 믿는 것과 기도 하는 것은 내 할 일입니다.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까지 오셨지만 구원은 내가 믿어야, 내 할 일을 해야 구원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하셨지만 기도해야 이루어집니다. 약속을 했다고 할지라도 내가 오늘 한 시간 이후 너를 도와주리라.” 그래도 너가 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약속의 사인을 내가 해야 됩니다. 기도는 내 할 일입니다. 기도는 은혜입니다. 모든 일에 은혜주시고 축복해 주실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원시시대나 오늘이나, 동서양이나, 모두 문명이 발달한 나라나 어느 나라나, 우리 인간은 신을 찾고 기도하며 빌고 내려왔습니다. 돌에다가 나무에다 빌고 파키스탄 사람은 뱀에다 빌며, 제주도에는 지금도 18,000개의 신이 있어서 빈다고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태양을 향하여 빌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끊임없이 빌어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우리는 기도할 때 어디에 기도합니까? 나무에다가, 태양에다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 원숭이, , 태양, , 별 모두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은 창조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도 인공위성 띄우는 데도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돼지 머리 가져다 놓고 절을 했습니다. 인공위성을 띄우면서도 돼지 몸통도 아니고 머리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그럽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돼지가 우리의 구원이 아닌 창조자 하나님이 우리 구원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기도 하면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은 받으셔서 하나님 앞에 올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기도의 중보자입니다. 우리 기도의 길을 열어주신 분도 주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바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올려서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올리십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언제나 마지막에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만 반드시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고, 사도행전의 모든 기적이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할 때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든 간구는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은 들어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낱낱이 하나님 앞에 올려서 우리 주님이 결재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 뜻대로 하시오이렇게 해서 결재가 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한 마디 한 마디 기도를 주님이 받으셔서 하나님 앞에 올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면 응답 받습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어린아이의 기도도, 토굴 속의 기도도, 내 마음의 기도까지 하나님은 다 들어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잔이 넘칩니다. 은혜와 능력과 도움을 받습니다. 큰일도 이 세상에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일도 주님은 도와주셔서 감당하게 하십니다.

 

미국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있습니다. 이분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국무장관입니다. 흑인여성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교부장관이 따로 있는데 미국은 국무장관이 외교부의 모든 일, 국내외의 일을 다 진두지휘합니다. 미국의 외교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외교입니다. 전 세계를 조절하는 외교입니다. 강대국만하더라도 중국, 러시아, 인도, 영국, 독일, 일본, 브라질 이 모든 세계를 다 같이 조절하고 협상하며, 이끌어내는 역할을 라이스 국무장관이 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 아래 아시아 담당, 유럽 담당, 아프리카 담당이 있습니다. 이 약한 여성이 어떻게 이렇게 큰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몇 년을 지금 한 결 같이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고 나면 국무총리가 바뀌는데 이분은 보십시오. 계속 잘 감당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 났습니다. 이분이 어떻게 일을 감당하느냐? 그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늘 기도한다는 겁니다. 항상 아침마다 기도하고, 백악관에서 금식기도까지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부르짖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느냐? 이미 어려부터 아버님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 아들도 기도 안하는 아들 많습니다. 장로님 아들 가운데도 기도 안하는 아들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라이스는 아버지가 목사님이신데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이것이 라이스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없는 것 때문에 기도하면 없는 것이 축복이고, 가난 때문에 질병 때문에 기도하면 가난이 질병이 축복이고, 오늘 이 한나는 브닌나 때문에 기도해서 브닌나가 축복이고, 슬픔을 당하여 기도하면 슬픔이 축복이고, 어려운 일을 당하여서 기도하면 어려운 일이 축복이라는 겁니다. 라이스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부시와 함께 기도 하고 이래서 큰일을 감당하는 겁니다. 여러분! 국무장관 일이 얼마나 큽니까? 크든 적든 기도하면 하나님은 도와주셔서 솔로몬에게는 세계적인 지혜를 주셔 세계적인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 기도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기도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 속에 기쁨 충만하네(찬송가 480) 기도하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지난 3월에 제가 베른이라는 의원의 초정을 받아서 국회에 갔습니다. 이분은 8선의원입니다. 그래서 저보고 라이스가 마침 옆에 와 있으니까 가서 보겠느냐? 지금 국회의원들하고 청문회를 하는데 같이 의논하는데 보겠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언론을 통해서 봤지만 가까이에서는 못 봐서 국회에서 라이스를 봤습니다. 보니까 우리끼리 말해서 인물도 별로이고 그렇게 몸도 약합니다. 그런데 온 세계를 지금, 세계의 국무장관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약한 데에 콤플렉스, 열등감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부족하다, 흑인이다, 그런데 대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이 세상 끝에서도 기도하는 곳에는 늘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면 받는 응답이 많습니다. 기도하면 채워 주십니다. 기도하면 살아납니다. 내 모든 잔을 넘치게 채워 주실 이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에 학생이 있었습니다. 1988년에 등록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초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가정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무도 도와둘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남매가 장학관에 들어와 공부를 했습니다. 그중 한명이 성균관 대학을 졸업 했습니다. R.O.T.C.를 해서 등록금은 해결이 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가 됐습니다. 강원도 춘천 산골에 가서 장교생활을 하는데 거기서 여기까지 주일날 세 시간 넘는 데도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고 3년 동안 장교로 있으면서 여기 예배를 꼭 참석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대학교 때 특별히 우리교회에서, 여름철에 우리 대학부 집회 있지 않습니까? 은혜를 많이 받았답니다.

 

여러분! 교인들은 그렇습니다. 자연도 철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중학교 때 은혜를 잘 받았어도 고등학교 때 넘어집니다. 또 고등학교 때에는 고등학교에서 믿음생활 잘 할 수 있는 은혜를 그때 따로 받아야 됩니다. 고등학교 때 넘어가도 대학에서 또 넘어집니다. 대학교 다니면서 또 그때에 대학생활에 맞는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 옷을 갈아입어야 됩니다. 대학졸업하고 또 흔들린 사람 많습니다. 결혼하고 또 흔들립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찬양 인도하고 앞에 나오고 이러 가다도, 대학을 졸업하고 완전히 힘 빠져 나가는 얘들도 많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대학교 때 잘 믿었다고 해서 믿음이 한 결 같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넘어지기 때문에 항상 기도해서 내가 그때 맞는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할렐루야!

 

얘가 대학교 때 은혜를 받아 장교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군에서 3년 동안 돈을 알뜰히 살뜰히 모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6개월 가 있을 수 있는 돈이 되어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에 가서 6개월 동안 지나고 다음 주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뉴욕에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가다 보니까 성균관대학교 지도 교수님을 딱 길에서 만난 겁니다.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 경택아! 너 웬일이냐?” 둘이 또 만났습니다. “어학연수 왔습니다. 선생님은요?”, “나는 교환 교수로 왔다. 너 어떻게 지내니?”, “저는 다음 주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 들어가면 뭐 하는데?”, “길이 없습니다. 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대학에 와서 대학원을 해라그래서 대학원을 거기서 마치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하나 길이 열려집니다.

 

여기 와서 장학관을 지낸 장학관 출신이 오늘 1부 예배에도 3명이 나왔습니다. 금주선 목사님. 여러분! UN이 있듯이 기독교에도 UN이 있는데 그것을 W.C.C라고 합니다. W.C.C.에서 한국 사람으로는 지금 최고의 선교 국장으로 가 있는 분이 금주선 목사님입니다. 이분이 에딘버러에서 Ph.D.를 하셨는데 우리교회 장학관 출신입니다. 앞으로 이분이 오늘도 이야기를 했지만 멀지 않아 W.C.C 총무까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금 목사님이 실력이 있는지. 정성욱 교수님도 지금 여기 1부에 같이 다 나왔습니다. 맞춘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하버드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옥스포드에서 Ph.D. 정말 최고의 수재입니다. 덴버에서 교수로 있는데 그분도 우리 장학관이고, 유학을 했습니다. 오늘 이강건 목사님도 1부 다 같이 다닙니다. 이분은 히브리 대학에서 Ph.D.하셨습니다. 지금 하마스라고 하는 분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강건 목사님이 안내를 해서 제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히브리 대학의 Ph.D.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세계에 10위권에 있는 대학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 우리 장학관 출신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지하자원도 없고, 다른 자원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길러야 됩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돈으로 계산을 못합니다. 경택이가 거기서 교수님을 만나 졸업하고 그 다음에 길이 없더랍니다. ‘어떻게 하나 혹시~’ 하고 박사 과정, Ph.D. 과정을 여러 대학에 신청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우리 아들이 졸업한 메사츄세츠 주립대학에서 오라는 겁니다.

 

등록금 하나도 안 받고 박사학위 받기까지, 가정생활비까지 다 대주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그런 길이 열려 저한테 편지를 했습니다. 제가 이런 것을 잘 모르는데 세밀하게 적어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대학부 다닐 때 늘 사모하며 바라보던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모했는데도 아무리 웃어도 걔가 안 웃어줍니다. 얘가 반응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모 했는데, 제가 이제 여기서 다시 기도하니, 얘가 마음이 움직여서 주님이 도와주셔 지금 저하고 서로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목사님! 주례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보십시오. 하나하나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작년에 제가 주례를 했는데 벌써 이번에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왜 기도합니까?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 모든 인간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의 힘보다 더 큰 능력, 우리의 모든 삶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이것은 복음입니다. 주께서 내길 예비 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 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복음송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기도는 탈출입니다. 한나는 기도해서 절망에서, 고통스러운 삶에서 탈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힘으로 탈출할 수 없는 모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기도하면 우리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가정에 있는 모든 불행, 저주, 멸망, 질병, 여러분을 덮고 있는 감당할 수 없는 모든 검은 먹구름들을 기도할 때 우리는 거기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한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좋은 모델입니다. 사무엘상 110절에 보면 그녀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이 어려움 앞에, 그녀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오래 기도하고 성전에서 기도 했습니다. 실로에 가서 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한나는 좋은 기도의 모델입니다. 늘 기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로 기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은 너무 큰 놀라운 능력을, 큰 선물을 가져다줍니다. 시편 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히브리서 5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울고 기도 했는데 그는 서원했습니다. 성경은 서원한 분들이 많습니다. 야곱도, 한나도, 사도 바울도 서원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서원할 수 있습니다. 너무 큰 가난에서 주여! 나를 살려주시면, 일으켜 주시면 내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도무지 고칠 수 없는 병에서 주여! 나를 고쳐주시면, 히스기야 같이 나에게 건강을 주시면 건강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자녀를 주십시오. 자녀를 주시면 내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분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아들을 안고 보니까 너무 사랑스러워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분도 제가 많이 보았습니다. 태어난 애가 너무 착하고, 그렇게 사랑스럽더랍니다.

 

그런데 애가 태에 있을 때 기도를 들었는지 그렇게 찬송 부르는 것을 어려서부터 좋아하고 유치원 때부터 교회를 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자고 하면 막 때렸답니다. 그리고 자기도 교회 안 나가 버렸답니다. 애가 너무 교회에 가려고 그래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너무 가난하다가 돈을 버니까, 물질의 축복을 받으니까 돈이 너무 좋은 겁니다. 그래서 교회까지 버린 이런 일은 너무 많습니다. 아마 10명이 물질의 복을 받았다면 8명은 교회를 떠납니다. 왜냐하면 돈이 주는 길이 얼마나 좋습니까? 돈이 주는 기쁨이 너무 좋아 가지고 떠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저도 사실 서원을 했습니다. 모르고 서원해도 서원하면 하나님 앞에 그 약속은 변치 않아야 됩니다. 저는 어떤 부흥사님이 부흥회를 하는 중에 하나님 앞에 일생을 바칠 분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습니다. 18살에 너무 은혜를 받아서 손을 들었습니다. 일어나라고, 축복기도 해 주겠다고 그래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많이 일어난 줄 알고 돌아보니 두 명 밖에 없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일생을 바치라고 그러니까 안 일어나는 겁니다. 저는 너무너무 은혜가 되서 눈물을 흘리면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다른 길, 너무 좋은 길이 많이 열려도 안 갔습니다. 절대로 안 갔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을 했으니까.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고, 오늘날까지 지나왔는데 제가 보니까 그때 약속을 너무 잘한 겁니다. 지금 제가 만약에 세상 그 길, 열려진 길로 갔더라면 사실은 제 나이가 60이 넘었습니다. 50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지금쯤은 일이 없어 등산하러 어깨에 메고 갈 텐데, 온 세계에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축복입니까? 할렐루야!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건강을 얻어서 암의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리는 분도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건강하니 너무 세상에 할 일이 많고 좋은 일이 많으니까 저버리는 분이 많지만 여러분은 한나와 같이 서원과 약속을 지키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성전중심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이 아주 기도의 가장 건전한, 좋은, 건강한 코스입니다.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하기를 백년을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늘 왜 기도가 안 됩니까? 백년을 살 것처럼 기도 하니까 기도 할 것이 없는 겁니다. 이 세상을 하루 살 것 같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면서, 하나님 앞에는 아주 태만한 삶을 살아가는 기도가 바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성도들, 기도의 전심전력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물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물음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늘 물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묻지 않았다고 역대상 1010절부터 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 묻는 겁니다. 자기 능력이 워낙 있으니까 안 묻는 겁니다.

 

유럽에 두 명의 위대한 장군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나폴레옹입니다. 이 나라는 믿는 나라입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을 믿지만 나폴레옹은 기도를 잘 안 했습니다. 자기가 워낙 능력이 있으니깐. 그래서 밑의 참모가 말했습니다. “전쟁에 나가면서 목사님을 모셔다가 꼭 기도하고 가십시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필요 없어. 전쟁은 내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야.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 전쟁과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모든 계획과 지휘를 자기가 합니다. 그는 전쟁도 지고 나라는 다 파멸되며, 자기를 따라가던 수많은 참모들을 다 죽이고 결국 자기도 귀향을 갔습니다. 귀향을 가서 마지막을 불행하게 보냅니다.

 

그러나 또 한명의 위대한 유럽의 장군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유명한 넬슨제독입니다. 영국 해군제독입니다. 영국은 해군의 나라지 않습니까? 이 장군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이 장군의 요절은 시편127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합니다. 특별히 전쟁이 일어나서 전쟁에 나갈 터에는 갑판위에서 군목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 했습니다. 항상 기도하므로 이분은 나라를 건져내었습니다. 루즈벨트도, 링컨도, 우리나라를 다녀간 맥아더 원수도 항상 기도를 먼저 했으며, 기도 하는 분은 자기도 살고 나라도 살며 모두가 삽니다. 넬슨은 나라를 살리고 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도 다치지 않게 했습니다. 자기도 영광이 왔습니다. 자기를 따르던 부하도 다 살릴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는 자기도 살고 자녀도 살며, 가정에도 모두에게 영광이 옵니다. 기도하는 주의 종은 자기에게도 영광이 오고 교회도 영광이 오며, 자기도 살고 성도도 살며, 나라에 기도하는 지도자가 생기면 나라도 살고 지도자도 살며, 모두가 다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삽니다. 일으키십니다. 구원이 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옵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을 당하여 눈물로 부르짖을 때 그 눈물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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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나타난 한나의 믿음 삼상 2:1~2:10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이어지는 과도기때 가장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보낸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또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사사였습니다. 사사라는 말은 최고의 통치자란 뜻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왕과 같은 위치에서 백성을 다스려나갔습니다. 이렇게 한 몸으로 선지자와 제사장과 그리고 왕과 같은 일을 맡아서 사무엘이 살아있는 동안에 이족들이 끊임없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쳐들어오기는 했지만은 그러나 사무엘의 기도와 사무엘이 세운 그 왕들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나갔을 때는 언제나 승리를 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믿음에 대해서 1장과 2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의 기도로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 내용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 인격, 교양이 말속에 다 들어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기도 속에는 그 사람의 신앙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한나의 기도 속에 들어있는 그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보면,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랬습니다.

한나의 기도에서 보여지는 그의 믿음은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즐거움을 얻고 누구로 인하여 기쁨을 얻습니까?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기도하여 얻은 사무엘로 인하여 기뻐하며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구한 어떤 것, 그것을 얻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아본 일이 있습니까? 그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선물이 좋습니까? 그 선물을 나에게 주신 그 분이 좋습니까? 선물만 좋아하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선물을 안주면 그 사람 미워합니까? 저는 선물을 많이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선물보다는 그 선물을 주신 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혹시 저한테 선물 받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다 못 해 생일카드라도. 그랬을 때 생일카드를 보고 카드가 좋았습니까? 아니면 목사가 그 속에 써낸 성경구절이나 여러분들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목사가 좋았습니까? 카드가 예쁘다, 카드가 좋다하고 카드만 만지작거렸습니까? 아니면 카드를 보낸 사람이 좋았습니까? 물어보는 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한나는 자기가 구한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를 나에게 주신 여호와로 인하여 나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병을 고침받았다든지 맺힌 문제가 풀렸다든지 막힌 길이 열렸다든지 어떤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든지 그래서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무언가를 얻은 것때문에 지위를 얻었거나, 명예를 얻었거나, 재물을 얻었거나 돈을 많이 벌었거나 권세를 누리거나 그런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것들을 나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37:4절 말씀에 보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인격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그 분을 함께 좋아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그 분에게 실망을 시키지 않겠다는 책임의식도 가집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자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을 좋아하고 그 분을 기뻐하고 그 분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은 자존심이 대단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당신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분이 아닌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이 한나의 기도에서 나타난 그의 믿음은 여기 보면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그랬습니다. 여기서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다는 말은 자기가 아들, 사무엘을 낳기 이전에는 아들을 낳지 못한 일로 인해서 자기 이름이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수치 속에 지냈는데 이제는 내 기도를 들어주신 여호와를 인하여, 또 아들을 얻음으로 인하여 내게는 영예와 능력이 주어졌다. 이 뿔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능력을 상징합니다. 어떤 명예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했을 때는 수치가 돌아옵니다. 소외감을 갖게 됩니다. 열등의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떳떳함이 생깁니다. 수치가 물러갑니다.

그런데 내 뿔을 높이신 나로 명예롭게 하고 나로 힘있게 하신 삶의 의욕을 갖고 하고 용기를 얻게 하신 것은 내 스스로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내 뿔을 높이셨다. 날마다 모든 일마다 모두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히스기야라고 하는 왕이 있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군대장관 랍사게와 함께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욕하는 그들의 편지를 받아서 성전에 들어가서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도움을 청합니다. 간구합니다. 철야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185천명 앗수르 군대를 다 멸했습니다.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의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병을 고쳐주시며 15년동안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그런데 한편 바벨로니아의 왕이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다가 나았다 하는 이 소식을 듣고 축하하기 위해서 몇 사람의 사신을 보냅니다. 그때에 그 사신들에게 하나님께서 나의 건강을 이렇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이 연장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높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 높이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과 보배를 자랑합니다. 무기고의 문을 열어 우리가 이렇!

게 군사력이 있고 무력이 있다,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예언합니다. 네가 자랑한 그 모든 것을 바벨로니아에 빼앗기게 될 것이다. 훗날 그가 자랑했던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주님만 자랑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주지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자랑하면 자랑한 것때문에 꼭 망합니다.

 

여러분에게 남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습니까? 그 재능을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쓰라고 주신 줄 믿고 그 재능으로 인해서 주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이루었을 때 자기 힘으로 얻은 것처럼 하나님 외의 그 누구도 자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재물, 지식, 지위, 명예, 그 어떤 것도 자랑하면 주님은 질투하십니다. 주님을 질투나게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요 누구든지 나보다 아내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심지어 자기 목숨을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마가복음 1028절 이하 말씀보면 주와 복음을 위해서 처자나 전토나 아들이나 딸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금세에서 백배나 얻고 핍박을 겸하여 얻으며 내세의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나의 믿음으로 변하고 바뀌어지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한나는 내 뿔을 하나님이 높였다고, 내 잃어버린 이름을 하나님이 높이셨다고 그렇게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또 내 원수들을 향하여 내 입이 크게 열리게 했다,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나는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지 못함으로 브닌나가 자기를 격동할 때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고 보니 입이 열렸다는 말입니다. 벙어리된 자에게 주님께서 에바다! 열리라고 외쳤을 때 말하지 않던 사람이 말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이 기도하게 되고, 찬송할 줄 모르는 사람이 찬송하게 되고, 전도, 예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던 사람이 예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입이 열린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나처럼 입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입이 열려야 합니다. 그가 브닌나에게 구박받은 이야기가 16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심으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그러나 이제는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전날의 한숨 근심이 변하여 이제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2절에서 주님밖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외칩니다. 한나의 기도 속에 나타난 그의 믿음, 구원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 하나님만이 구원자라고 외칩니다. 2절에 여호와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아멘.

구원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 누가 우리 죄를 담당할 자가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 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창조자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말씀만 순종합니다. 주님만 따라갑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하면 한나가 기도해서 응답받았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 다음에 한나의 기도 속에 나타난 그의 믿음은 3절에 나옵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니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아멘.

그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았냐 하면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는 저울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달아보는 저울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달아보는 저울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저울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무게가 나가지 않으면 버립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서 520절 이하에서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 벨사살 왕이 자기 부친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성물, 금으로 된 그릇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술에 취했습니다. 그날 밤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서 벽에다 무슨 글을 썼습니다. 그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을 모릅니다. 그 글을 해석하는 사람은 다니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글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이 메네라는 말은 세어보고 끝나게 했다. 메네 메네 반복한 것은 강조한 것입니다. 세어봤다, 세어봤다, 그런 뜻입니다. 데겔이란 말은 무게를 달아보니 모자라서 치워버렸다, 우바르신은 무어냐, 나라가 나뉘어서 다른 데로 넘어간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고 그래서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니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함으로 너를 하나님이 버렸다, 그리고 네 나라가 쪼개진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개인에게도 주님이 하신 경고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대한 주님의 경고이고, 오늘날 우리 교회에 대한 주님의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실을 주님이 갖고 있는 저울대에 우리를 올려놓고 주님?

?원하는 만큼의 무게가 나가지 못하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종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맡겼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주님의 저울대 위에 다는 날이 왔습니다. 그걸 평가하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만족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겨서 하나님의 저울대에서 만족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한 달란트만 더 남겼더라면 하나님의 저울대에서는 만족했을 것인데 그는 남기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어보고 달아보니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일이나 하나님 앞에 연보를 드리는 일이나 직분에 충성하는 일이나 전도하는 일에나 하나님의 저울을 갖고와서 하나 하나 재어보고 세어보고 달아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버립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므나비유에서는 충성된 종은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겼기에 하나님 저울대에 만족하였음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리니 하면서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충성된 자로 인정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서도 열 고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충성된 자에게 주어지는 두 가지 복, 하나는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가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하기 위한 것이니 어떤 일,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고 보람된 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교회생활하면서 하나님 일에 바쁘고, 하나님 일이 막 밀리고 하는 사람은 이미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생활하면서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 난 할 일이 없다.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일 많은 것이 복입니다. 회사에도 일 많아야 복이고, 공장에도 일 많아야 복입니다.

 

한나의 믿음은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한나가 울었던 것, 그 눈물이 하나님의 저울대에 올려졌습니다. 한나의 기도의 양이 금향로에 담겨지는 그 무게가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할만큼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으로 그는 외칩니다.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지 그러나 성령님은 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감독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 하나님, 사람이 보는데서만 열심이 있는 것과 사람이 안보면 게으른 사람은 외식하는 사람이요, 위선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보든지 안보든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하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내가 하나님이 기뻐할만큼 행동을 해야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주여! 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이 행함의 저울대위에 우리가 올라가서 하나님 편으로 우리가 기울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전도라고 하는 그 부분을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올려놓는다면 어떤 무게가 나가겠습니까?

베드로는 하루에 3천명씩 전도했다고 합니다. 무디(D. L. Moody)는 백만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3백만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평생에 몇 명을 전도합니까? 전도의 저울대위에 나는 과연 얼마나 나갈까? 주님이 기대하는 데까지. 벨사살왕은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세어보고 달아보니 모자라서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버림받는 사람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네게 많은 것으로 맡기리니 네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는 이런 복된 음성이 들려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대위에 언제 달리는가? 그것은 시험을 당할 때 저울대에 달립니다. 그 사람이 유능한 사공인지 아닌지는 홍수 날 때 노 젓는 모습 보면 알고, 힘이 얼마나 센지는 씨름 시켜보면 알고, 실력을 알려면 시험 쳐보면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 저울대 위에서 만족할 만큼 무게가 나갈 수 있는지 언제 드러날 수 있느냐면 시험 당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저울대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시험해보는게 바로 저울대위에 놓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모자란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믿음을 보였으니 그 아들을 믿음으로 바쳤습니다. 바쳤을 때 신바람 나서 바쳤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인정과 애정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킬 때 모든 말씀을 다 기쁨으로만 지키는게 아닙니다. 때로는 억지로 십자가 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마지막 한 움큼 되는 밀가루 가지고 음식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할 때 콧노래 부르면서 신바람 나서 갖다 바쳤다는 말이 없습니다. 배가 고픈데, 내 아들 굶고 있는데,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한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 지겠다고 달려나와서 십자가 졌습니까? 구경나왔다가 억지로 붙잡혀서 십자가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억지로 십자가 져도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기쁜 것만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내가복음에 사로잡혀서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부담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눈물 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저울대위에서 하나님 편으로 기울어지기 위해서 순종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시험을 만나면 두 마음으로 갈등에 빠집니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우리를 갈등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깨어있고 말씀에 무장되어 있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해 하고 좁은 길로 갑니다. 그런데 영성이 약한 상태에서 시험을 만나면 넘어져버립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시간마다, 매일마다 양자택일을 해야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그 때 여러분, 주님을 위하는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있어서 때로는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고, 기쁜 마음이 아니고, 억지로 할 때도 있다는 것 기억하십시오. 억지로라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제가 요한 웨슬레의 전기를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 1738524일 올드스게이트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에서 수요일 밤예배에 요한 웨슬레가 참석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때로는 교회 가고 싶지 않은 때도 있지 않습니까?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휘몰아칠 때도 그렇지만 하여튼 이러저러한 일로 교회 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겼습니다. 그래도 오늘 삼일기도회니까 가야지! 그런데 그 날밤에 주님을 만나고 그 날밤에 성령 받고 그날 밤에 새로워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제 경험도 평신도 때 때로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힘들어 오늘만은 쉴까? 오늘은 그만둘까? 그렇게 생각이 들어왔을 때 물리치고 그 날 가면 그날따라 눈물 콧물 흘리고 은혜 받았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교회 오고 싶을 때도 오십시오. 오기 싫을 때도 오십시오.

그러면 더 은혜 받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밤에도 오고 싶어서 온 분도 있지만, 그냥 마지못해서 오신 분도 있을텐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더 있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기쁨으로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쁨으로 하면 좋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 기뻐서 찬송 부르면서 십자가 지셨습니까? 넘어지고 쓰러지셨다는 그 말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꼭 자기 감정에만 맞추지 말고 말씀에 맞추어 사십시다. 한나의 믿음은 그런 믿음이었습니다.

감정은 자꾸 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그 믿음을 그가 가졌습니다. 기도하는 한나의 기도 속에서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을 볼 수 있는데 그는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5절 말씀에,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들은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식을 둔 자는 쇠약하도다. 이것은 역전된 새로운 변화를 말합니다. 전에 유족하던 부자였던 사람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잉태치 못하던 임신이 되지 않던 자는 자녀를 일곱을 낳았다. 한나는 전에는 정말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대로 행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는 일곱 자녀를 낳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가 일곱을 낳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곱이란 말은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 사무엘까지 여섯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하나도 낳지 못하던 한나가 육남매를 낳았습니다. 결국 나중된 자가 먼저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열매가 없고 지금은 내가 곤고한 것같고 누군가로부터 멸시 천대를 받은 것같고 너무 힘들고 어렵고 그래서 한나가 아이를 낳기 전에 번민에 쌓이고, 번뇌에 쌓여서 울면서 몸에 경련이 일어나기까지 기도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중된 자로 먼저 되게 하신 6남매의 자녀를 낳게 하신 그런 은혜가 있는 것이니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에 나타난 한나의 믿음, 6절에서 8절 말씀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느니라.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느니라.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한나의 이 기도 찬송, 찬송하며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 속에서 위대한 믿음을 발견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 죽고 사는 것, 부자 되고 가난하고 높아지고 낮아짐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 믿음이 위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욥이 그 믿음을 가졌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라. 사람이 어떠한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모든 것은 내 노력에 달려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에 따라서 죽은 믿음을 가지면 어떤 역사도 없습니다. 적은 믿음의 사람은 책망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해서 순종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는 그런 사람에게는 표적이 따르는 역사가 있게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한나의 슬펐던 날들이 기쁨의 날들로 바뀌어졌습니다. 가장 상처많은 여인이 가장 영광스러운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사람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신앙생활이나 생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이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주 앞에 돌렸던 영광보다 이후에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손에 인간의 생명이 달려있습니까? 살고 싶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로 낙인찍히면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두어 갑니다. 헤롯왕을 하나님의 사자가 치니 충이 먹어 죽었더라. 그러나 다니엘은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했더니 사자굴에서도 살려 주셨더라. 죽었던 나사로, 나흘이 되어서 몸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주님이 살리셨더라. 하나님 앞에 쓸모있는 사람, 하나님의 교회에 공적인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이면 병든 사람도 고쳐 쓰시고, 망한 사람도 복빌어 쓰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 사람은 죽기까지 충성하고 전부 주앞에 맡겨드리고 말씀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3: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또한 내가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하나님 그 기둥에 하나님의 이름을, 새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하리라.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우리 모두 한나가 믿었던 하나님, 우리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한나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한나에게 복주신 하나님, 우리에게도 복주실줄 믿습니다.

우리는 한나처럼 기도합시다. 우리도 한나처럼 우리의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합시다. 우리도 한나처럼 제사장을 의지하며 나는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한다고 무릎꿇고 기도를 받는 이런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실 때 한나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도에 나타난 그의 믿음이 9-10절에 나옵니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중에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이 한나의 입을 통해서 장차 나타날 왕, 거룩한 왕, 다윗이 왕으로 성장될 것을 예언했고, 이 다윗은 결국 기름부음 받은 자로 표현한 것은 장차 메시야가 올 것까지 예언했으니 성령충만을 받게 되면 장래 일까지 말하게 되었습니다. 한나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더니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까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나처럼 믿음을 갖고 살면 육신의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신령의 세계의 비밀도 알려주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 그리스도 그 분이 거룩한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는 날, 한없는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과 만족함을 줄 것이니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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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하는 믿음 삼상 2:18~2:21

이 시간에 사무엘상 218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 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 니다. 여기서 '역사'라는 말을 '사역' 이라는 말로 바꾸어 '사역하는 믿음' 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사랑의 수고와 소 망의 인내와 믿음의 역사가 너희에 게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세 가지를 말하였습 니다. 첫째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 말씀은 사랑은 반드시 그 사람으 로 하여금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에 수고가 없 고, 희생이 없다고 하면 이것은 사 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하는 사랑, 마음으로 그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둘째로 '소 망의 인내'입니다. 즉 희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 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다 참고 이겨낸다는 뜻입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나로 하여금 모 든 어려움을 참게 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참아낼 수가 없 습니다. 앞날에 대한 소망이 없기 까닭에 고난이나 손해가 닥쳐오면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 망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 소망 이 그로 하여금 참아내게 한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믿음의 역사'입니 다. 믿음은 반드시 무언가를 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 을 바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정하 였습니다. '하게 하는 믿음'이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 다.

 

첫째로 봉사하게 하는 역사(18-). 이 말씀을 결론부터 말하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가만히 있도록 내버 려두지 않고 반드시 봉사하게 합니 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봉사하는 것을 보면 그의 믿음을 알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봉사 하지 아니하고 감정과 기분, 그리고 이해타산을 따져서 하는 경우도 있 습니다. 즉 이해타산을 따져 수지가 맞을 것 같아서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가지를 못합니 다. 나중에 기분이 나빠지거나 손해 를 보게되면 반드시 그만두게 됩니 다. 그러나 믿음은 감정과 이해타산 을 초월해서 봉사하게 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아리마대'라고 하는 곳 에 유명한 사람, 요셉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가리켜 흔히 '아리마대 요셉'이라고 합니다. '아리마대'는 지 역 이름입니다. 이 아리마대 요셉을 가리켜 성경은 첫째로 '숨은 제자'라 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제자인 데 숨어서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누가복음 23장에 '저는 의인 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의인이라는 겁니다. 셋째로 '부자'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부자 이면 성경에서 부자라고 하겠습니 까? 넷째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 이라고 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 라고 하는 것은 유다나라가 로마의 식민지로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 중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서 뽑아 70명으로 구성된 공회입니다. 이 곳 에서 결정되는 것은 모두 시행됩니 다. 그러므로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 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때 당시 유대인으로서는 최고의 성공이요, 출세로 생각했습니다. 다섯째로 '그 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이 한마디만 보아도 그의 믿음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여섯째로 '그는 당돌한 자라.'고 하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이때 아 리마대 요셉은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나아가 시체를 달라고 하여 장례를 치렀습니다. 종합하면 아리마대 요 셉은 목을 내놓고 주님께 봉사하였 고, 어떤 손해에도 불구하고 봉사했 다는 것입니다. 종합해서 설명을 하 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밤에 모이라 고 하여 나갔습니다. 나갔더니 예수 님을 붙잡아 놓고 죽이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였습니다. 결정만 남은 것 입니다. 70명 모두가 예수님을 죽이 자고 하는데 아리마대 요셉 한 사람 만이 반대를 하고 예수님 편에 섰습 니다. 그 당시에는 아리마대 요셉처 럼 예수님 편을 들게되면 출교 처분 을 하기로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습 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바리새파인 지라 바리새파에서 출교 처분을 당 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자동적으로 공회 의원직도 박탈당하게 됩니다. 이웃 사람들이 상종도 거래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있는 것을 모두 써 버린 후에는 거짓노릇을 하게 되 는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편을 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목을 내놓 는 충성과 봉사가 아닙니까?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 으시는데 그 날 해가 넘어가면 안식 일이 되지 않습니까? 안식일까지 예 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 고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베드로를 비롯해서 큰 소리를 치던 제자들은 행방이 묘 연합니다. 이 때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돌하게 나갑니다. 처 음에는 숨은 제자였지만 나설 때는 당돌하게 나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큰 신변의 위협이 뒤따를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자기와 자기의 후 손을 위해 준비해 놓은 바위에 판 새 무덤, 즉 묘실을 예수님께 기꺼 이 바치지 않습니까? 묘실이라는 것 은 우리의 무덤과는 다릅니다. 우리 의 무덤은 하루에 몇 기라도 파서 만들 수 있지만 유대인의 묘실은 바 위를 깊게 팝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께서 돌아가시면 그 곳에 시신을 모 시게 되는 것입니다. 할머니, 아내, 자식, 며느리 또한 시신을 거기에 장례합니다. 그러다가 뼈가 꽉 차게 되면 이 무덤을 봉해 버리고 다시 새 무덤을 팝니다. 그러므로 이 무 덤은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준비 해 놓은 묘실입니다. 그런데 이 귀 한 무덤을 주님께 바치고 장례를 치 렀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손해 보기에 하기 싫어하는 봉사, 누구도 두려워서 피하는 봉사를 아리마대 요셉은 어떻게 할 수 있었습니까? 믿음이 그로 하여금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로 하여금 믿음이 나서게 했고, 봉사하게 했다 는 말입니다. 그의 봉사를 보면 그 의 믿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믿 음은 봉사하게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8절을 보면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 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무엘이 어 렸을 때 섬겼고, 세마포 에봇을 입 고 섬겼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는 세 마디입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봉사입니다. 첫째로 어렸을 때부터 섬긴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 들도 사무엘처럼 되기를 바랍니까?

"주여, 내 아들이 사무엘과 같은 일 꾼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하기 전에 사무엘처럼 봉사하는 법을 어 렸을 때부터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 세 마포는 누가 입는 옷입니까? 제사장 들이 입는 옷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사장이라고 하는 직분을 받아 봉 사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날의 까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성가대원들이 까운을 입지 않습니 까? 까운을 아무나 입는 겁니까? 성가대원이기에 입는 까운이 아닙니 까? 즉 성가대원이라는 직분을 받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가대라는 직 분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기 분에 내키는 대로 하지 마시고 까운 입은 값을 하시기 바랍니다. 세마포, 즉 직분을 받은 사람은 그 직분에 맞게 봉사해야 합니다. 셋째는 여호 와 앞에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제가 선 자리 에 서 계시고, 여러분들이 그 하나 님 앞에 찬양한다고 생각해 보십시 오. 그 찬양이 얼마나 뜨겁고 간절 하겠습니까? 또 이 시간 하나님 앞 에 예배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 도가 얼마나 진지하며 찬송이 얼마 나 뜨거우며, 말씀을 얼마나 경청하 겠는가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여기 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나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변화 가 없다면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습 니다. 하나님을 섬긴 사무엘의 모습 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어렸을 때부 터 이런 믿음이 있었기 까닭에 하나 님께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모범적인 봉사입니다. 여러분들도, 혹은 여러분들의 아들딸들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기를 바 랍니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을 본 받아 봉사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사역하는 믿 음, 봉사하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펠리컨이라고 하는 새가 있습니 다. 이 새는 이스라엘 땅을 많이 지 나다니는 새입니다. 이 새는 새 중 에서도 모성애가 가장 강한 새라고 합니다. 새가 알을 낳고 새끼를 부 화합니다. 그런데 먹이가 많은 해가 있고 적은 해가 있지 않습니까? 다 른 새들은 먹이가 적고 없으면 새끼 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거나 굶겨 죽 입니다. 그러나 펠리컨이라는 새는 자기의 살을 뜯어서라도 새끼를 먹 인답니다. 또한 새끼가 병이 들면 자신의 살을 쪼아 그 피를 먹입니 다. 어미의 피를 먹은 새끼 새는 대 부분 살아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 끼를 위해 희생하고 새끼를 위해 죽 어야 할 경우에는 서슴지 않고 희생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새끼 에 대한 사랑이 어미로 하여금 희생 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하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은 반드시 봉사하게 합니다. 희 생 없는 사랑이 거짓이라면 봉사 없 는 믿음 또한 거짓입니다. 봉사하게 하는 믿음이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 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예배하게 하는 역사(19-). 에디오피아를 이스라엘에서 가려면 나이반도의 그 큰 사막을 지나서 홍 해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이집트 즉 애굽으로 들어가서 나일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백리 이백리 길이 아니고 몇 천리 길입니다. 그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권세가 큰 내시, 요즘으로 말 하면 재무 장관에 해당된다고 보시 면 되겠습니다. 그런 장관이 예루살 렘에 예배를 하러 왔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예배를 하러 옵니까? 그리고 그 에디오피아 사람인 흑인이 어떻 게 예배하러 왔겠습니까? 그것은 하 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 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가 하면 과 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설명이 됩니 다. 솔로몬이 지혜로 유명해졌을 때 그 소문이 에디오피아까지 퍼졌습니 다. 에디오피아 여왕이 솔로몬을 만 나러 왔습니다. 솔로몬을 만나고 돌 아갈 때, 솔로몬에게서 두 가지를 받아 가지고 돌아갑니다. 하나는 솔 로몬의 아기를 받아 가지고 갑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 들이 섬기는 유대교 즉 하나님을 모 시고 갑니다. 그래서 그 유대교를 국교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에디오 피아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손이 바로 에디오 피아의 국고를 맡은 권세있는 내시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수천리 길을 왔다가 돌 아갑니다. 믿음이 그로 하여금 예배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병거 속에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 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깨닫지 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 동하사 빌립 집사를 보내어 성경을 잘 풀어주도록 하였습니다. 그 내시 는 여기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세례 를 받고 예수님을 모시고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만 믿던 유대교에서 예수를 믿는 기독교로 종교를 완전 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이 것이 에디오피아의 '콥틱교회'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놀라 운 은혜입니다. 믿음이 예배하게 했 고, 예배한 후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예배하게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9절을 보면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 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 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매년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매년 세번의 절기를 당하면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 가게 됩니다. 세 번의 절기는 유월 절, 오순절, 장막절을 가리킵니다. 이 세 절기는 해마다 지키는데 처음에는 모두가 열심히 지켰으나 나중에는 열 심이 식어져 떨어질 사람은 떨어졌습 니다. 그런데 한나와 그의 남편 엘가 나는 결혼을 한 후에 얼마동안 애기 가 없었으니 얼마나 급합니까? 그렇 지만 꼭 절기를 지키러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찾아 축복으로 아기를 얻어야 했기 때문입 니다. 한나가

"하나님, 아들을 주시면 저는 아들을 낳았다 하는 것으로 끝 나고 하나님의 아들로 봉사하도록 바 치겠습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하였습 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습 니다. 이 아들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실로성막으로 가 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들을 바친 후에도 변함없이 매년제를 드리러 갔 던 한나입니다. 한나와 그의 남편 엘 가나는 그들이 믿음이 이들로 하여금 예배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주일에 절대로 여가를 즐기러 설악산에 가지 않습니다. 반드시 예배 하는 이 곳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하 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예배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클리브랜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미국의 22, 24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이 분이 대학교에 다닐 때에 기숙사에 서 지냈는데 목이 컬컬했습니다. 친 구에게

"우리 한잔하러 가자."고 했 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도 술을 좀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청교도 정신을 가진 미국 그리스도 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러 가는데 예배당 앞을 지나게 됩니다. 주일도 아니었는데 찬송하 고 예배합니다. 이때 클리브랜드가 친구에게

"우리가 술은 나중에 마시 고 먼저 예배 드리자."고 합니다. 그 랬더니 친구가

"아니야. 한잔하고 와서 예배드리자."고 합니다. 이 사 람들이 술을 마시고 올 때까지 예배 가 끝나지 않고 기다려 줍니까? 아 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각자가 따로 가고 말았습니다. 클리브랜드는 교 회로 가서 은혜를 받고 믿음이 새로 워지고 인생이 새로워졌습니다. 열 심히 살다보니 대통령이 되지 않습 니까? 그런데 클리브랜드의 친구는 열심히 술집을 찾다보니 싸우고, 싸 움질을 하다보니 사람을 죽이고 나 중에는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 다. 예배를 먼저 드리는 사람과 술 을 먼저 찾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 다. 믿음은 먼저 예배하게 합니다. 예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이렇게 큰 차이가 납니다. 예배하면 은혜 받고, 은혜 받으니 믿음이 좋 아지고 믿음이 좋아지니 또 예배합 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예배하게 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복을 받게 하는 역사 (20-21). 베로니카라고 하는 여자가 아래로 피를 막 쏟는 혈루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무척 고통스러 울 뿐 아니라 냄새가 많이 납니다. 이런 경우 유대인들은 대개 가족이 부정을 타기 때문에 그녀가 살 수 있는 돈을 주어 내 보내는 것이 통 상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에 게서는 내 보냈다는 기록이 없습니 다. 병원을 찾아서 치료를 받는데 좀 낫거나 상태가 그대로 있어도 좋 은데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갑니 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는 가지고 있던 돈은 모두 다 떨어져 알거지가 되고 맙니다. 그러 니까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재산을 모두 잃고 망합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의 소문이 들리더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예수 의 소문을 못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을 뿐입니다. 가슴에 닿지 않았습니다. 즉 예수 소리가 가슴에 부딪혀 오지 않았습 니다. 망하고 난 후에도 또 고통이 더욱 심하다 보니, 예수 소리가 들 리기 시작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나도 만나면 그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만 해도 나 는 나음을 얻으리라'고 생각했습니 다. 확신을 가지고 예수께로 옵니다. 이처럼 예수 소리를 자꾸 듣다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믿고 나와 예수님 옷을 만졌더니 능력이 나타 나 혈루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 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 씀하셨습니다.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은 병이 나았다는 말이 아니라 하 나님의 딸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 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영생의 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고 말씀하십니 다. 이 말씀은 병의 뿌리가 빠졌다 는 말씀입니다. 병에서 나은 것 같 은데도 병에서 놓이지 않는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수술을 했고 약 을 먹고 병이 다 나은 것 같은데도 몇 년이 지나면 재발해 버립니다. 이것은 병에서 놓인 것이 아닙니다. 병의 뿌리가 절대 빠진 것이 아닙니 다. 겉으로만 나은 것 같이 보일 뿐 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병에서 놓였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빠졌다 는 것입니다. 다시는 재발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건강의 회복이 아니겠습니까? 영생 과 건강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믿음이 그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만 들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복이 있고, 행함으로 받는 복이 있 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복을 받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0절과 21절을 보면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 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 서 자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 의 어머니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아들만 주십시오, 아들 하나 낳았다 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 아들로 나를 섬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섬 기게 하겠습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합니다. 사무엘은 이렇게 서원 기도 를 하여 얻었고 또 바친 아들입니 다. 엘가나와 한나 부부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후에 역시 매년제를 드리러 갔을 때 엘리 대제사장이 그 것을 알고 '사무엘을 대신하여 네게 후사를 주기를 원하노라'하고 그들 에게 축복을 합니다. 그 축복을 믿 고 돌아왔더니 그 날 밤에 아기가 생겼습니다. 아들 셋과 딸 둘을 얻 었습니다. 즉 다섯 배를 더 받았습 니다. 믿음이 하나님 앞에 받치게 했고 믿음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게 했습니다. 믿음이 다섯 배의 축복을 받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복 을 받게 합니다. 믿음으로 받는 복 은 철저히 믿는 대로 됩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많이 믿으면 많이 받게 됩니다.

 

이제는 결론을 지어 말씀을 드립 니다. 먼저 믿음은 반드시 봉사하게 합니다. 감정과 이해타산을 초월해 서 믿음이 하게 하는 봉사를 하시기 를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은 반드시 예배하게 합니다. 예배하는 시간, 예 배하는 날에는 빠짐없이 나와 믿음 으로 예배하면 은혜 받고 영이 부요 해 집니다. 셋째로 믿음은 복을 받 게 합니다. 사무엘의 아버지와 어머 니는 믿음으로 사무엘을 받았는가하 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더니 그 믿음이 다섯 배를 더 받게 하는 축 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역 사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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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사장의 슬픔 (삼상 2:22~36)

 

1. 청중마음열기

1)일반적 접근

하나님은 우리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성도들을 위해 아주 좋은 것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오늘도 그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참새들이 계속 사냥꾼에게 당할 수는 없다며 모두 방탄조끼를 하나씩 장만했습니다. 포수가 몇 방 탕탕하고 쏘았는데 모두 무사하니깐, 참새들이 더욱 신이 나서 어깨동무를 하고 단체응원을 합니다.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아~" 그 순간 포수가 기관총을 갖고 와서 드르륵 갈겨버렸습니다. 모두들 무사한 것 같았는데, 딱 한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왜 그런가하고 살펴보니 이랬습니다. 모두들 어깨동무하고서 "야야~ 야야야야~"하고 있는데 혼자서 튀는 참새가 자신은 더 잘 노래를 부른다면서 자기의 조끼를 열었다 젖혔다 하더니,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하더랍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혼자서 튀는 행동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2)성경적 접근

오늘 말씀은 엘리제사장이 자기 아들들이 백성들 앞에서 악행을 저지르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책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결국 그의 아들들이 죽어 멸문가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제사장은 어떻게 되어서 자신의 자식을 책망하지 못했을까요?

아무리 잘못된 길을 가는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 앞에서라면 부모는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까?

자식이 아무리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엄하게 책망하면 오히려 더 삐뚤어질까봐 책망하지 못한 것인가요?

만약 그대로 자식을 제사장직에서 파면시켜 버린다면, 그 집안은 이제 영영 문이 닫혀지는 멸문가문이 되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자식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3)청중적 접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같은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즘 교회에서도 시험기간만 되면 중고등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3이 되면, 어떤 부모는 아예 1년동안은 공부해야 하니까 교회는 쉬었다가 대학 들어가서 다니라고 하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요즘 자식을 아껴도 너무 아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만 낳다보니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제가 아는 대전의 어느 교회의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느 집사님과 장로님의 가정에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좀 달랐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자식들이 해 달라고 하는 데로 다 해 주었고, 장로님은 자식들이 잘못한 것은 엄히 책망하고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와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 딸이 주일예배반주와 교사를 했는데, 그만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냐고?

 

2. 가주어의 문제점(P)

1)본문문제배경

오늘 본문 말씀은 B.C.1100년경 성막이 있는 실로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는 이스라엘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고 있지만 아직 성전이 세워지지 아니하는 시기이므로, 모두들 실로에 있는 성막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는 때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다말 자손인 엘리제사장이 대제사장으로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맨 처음에 대제사장직은 B.C.1500년경 모세의 형 아론이 맡고 있었습니다. 아론은 슬하에 4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첫째와 둘째인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법을 무시하고 향을 사르다가 그만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타져서 죽고 맙니다. 그러자 대제사장 직책은 셋째와 넷째아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처음 한동안은 셋째아들인 엘르아살 집안에서 대제사장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이다말 집안에 있는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율법 즉 토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고,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이다말의 후손 엘리가 아니면 아니되는 어떤 상황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보통 대제사장직은 종신직이라 아버지가 죽으면 그의 아들이 그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하지만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많아짐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기가 어렵게 되자, 그의 아들들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같이 그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2)문제발생원인

그런데 사건은 엘리의 아들들에게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불량자였기 때문입니다. 삼상 2:12에 보면 엘리의 두 아들들은 행실이 나쁜 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행실이 나빴다는 말을 원문으로 보면, 그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었다고 나옵니다. 이는 그들이 아무 쓸모없는 자들이었다는 뜻이요, 무가치한 자들이었으며, 제사장으로서는 백해무익한 사람들이었다는 뜻입니다.

 

대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떻게 되었길래 불량자가 되고 말았을까요?

첫째, 갑자기 아버지가 대제사장직에 오름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들이 대제사장직을 이어받을만한 훈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어머니가 어린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기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통 어린 자녀들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모세에게는 요게벳이 있었고, 사무엘에게는 한나가 있었으며, 디모데에게는 유니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홉니와 비느하스에게는 그러한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어린 홉니와 비느하스를 어릴 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키우지 못했음을 암시해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하나님보다 더 컸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엘리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귀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할 뿐더러 제사를 멸시하고 있는 그의 아들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엘리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어떤 죄를 짓고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삼상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여기서 너희는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가리킵니다. 엘리는 제사에 있어서만큼은 그렇게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가져온 제물을 갈취하기에 바빴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제물을 가져가기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엘리의 두 아들을 홉니와 비느하스는 고기를 삶고 있으면 가만 있지를 않았습니다. 자기가 가져갈 부분이 따로 정해져 있었지만,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는 찔러서 갈고리에 걸려나오는 것은 무조건 자기의 것으로 취해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아버지 엘리제사장에게 드린다면서, 자기의 아버지는 구운 고기를 좋아하니 그냥 날 것으로 달라고 하면서, 아직 기름이 번제단에서 다 타지도 않은 상황에서 막 고기를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으로 있는 이유가 정말 백성들을 위한 제사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엘리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보다 그의 아들들을 더 중하게 여겼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들들의 잘못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도 그러니 백성들이 수군거리고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이 자기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자기 아들들을 엄하게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않고 삐져 나갈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삼상2:22-24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심지어 자기자식들이 이미 결혼하여 자식까지 둔 상태였지만,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간음행각을 저질러도 그들에게 미온적인 수준의 말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무 효과도 없는 무기력한 책망에 불과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은 그들을 엄하게 책망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고했어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계속 그렇게 잘못 행한다면 그들에게서 제사장직무를 하지 못하게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자기 아들들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 할지라도 자식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건만 자식의 마음이 상할까봐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닐까요?

 

 

3)문제심리묘사

엘리 제사장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러다 얼마 안 있어, 정신차릴 때가 오겠지.” “나이가 조금만 더 들면 철이 들겠지?”

하나님, 하나님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이 뭐 그리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내가 낳은 자식, 조금 사랑한다는데 그것이 뭐 그리 큰 죄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젠 저들이 다 컸는데, 늙은 내가 저더러 무엇을 말하란 말입니까?”

 

 

4)영적 법칙

자식을 너무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도 책망할 수 없습니다.

 

 

3. 가주어의 문제해결과 복(D,B.L)

1)본문해결시작과 영적법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제사장은 자식들을 끔직이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바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2)본문해결방법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지도자급인 대제사장의 타락을 마냥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놔 둔다면, 어느 누구가 제사를 드리러 오겠습니까? 어느 누구가 제사를 귀히 여기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대제사장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제사드리러 오는 것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제사장으로 하여금 자식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도록 회개하도록 길을 여시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에게 두 사람씩이나 보내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라고 하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먼저, 이름없는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냈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하나님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여 자식들의 잘못을 책망하지 않는다면, 그 가문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될 날이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에서 태어나는 자가 모두 20세 이전에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복을 받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 집안만큼은 환난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이루진다는 표징으로서 그의 아들 홉니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대제사장직분이 다른 집안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도 엘리제사장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을 방조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자식들을 불러다가 책 망 한 번 행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자기 집안에 오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입니다. 자식을 엄하게 꾸짖어서라도 자기 집안이 망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설마, 내 자식이 정말 죽기라고 하겠어?”하면서 움직이려 하지 않자, 하나님은 이번에는 두 번째로 어린 사무엘의 입술을 빌려 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삼상3:12-14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엘리는 자식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리지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로 하여금 빨리 회개하고 자식들을 바르게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의 집의 죄악은 제사와 예물로서 용서가 되지 않을만큼 큰 죄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제사장은 두 번째의 하나님의 경고도 듣지 아니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면, 엘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기자식을 책망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주시고, 자기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붙들어 달라고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는데,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율법말씀대로 제사는 잘 드렸는지 몰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죄를 짓고 있으면서 그것을 전혀 죄라고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한 뒤, 자기 자식을 파면조치라도 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려주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도 아픕니다. 슬픕니다.

하지만 엘리제사장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또 들었지만 자식을 불러다가 그렇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어리니,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차차 바꾸어지겠지.”하고 말아버렸던 것입니다. 아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나이가 진짜 어리긴 어립니까? 그들의 나이가 제사장의 집무 나이니 최소한 30세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제사장은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들을 책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3)가주어가 받은 축복과 영적법칙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마음이 아프지만, 지금은 고통스럽다해도 자식이 멸망으로 가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진정하 사랑이란 단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들을 엄하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놔둔다면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이란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큰 잘못을 해왔는지를 알려주면서 그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자신의 잘못을 고치게 하는 것입니다.

 

, 본문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누구를 책망하고 있습니까? 죄짓고 있는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책망을 합니까? 아니면 그의 아버지 엘리제사장에게 하는 것입니까? 엘리제사장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까? 바로 엘리제사장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홉니와 비느하스가 바른 길을 가도록 훈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엘리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먼저 들을 귀 있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또한 자식이 바른 길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식의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대신이라도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들려준 두 번의 경고의 말씀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버린 것이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멸시한 것이 하나님을 멸시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지옥에 보낼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컸을 때에는 어김없이 사단이 그것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왜 그는 몰랐을까요? 그때에는 자식이 마음의 우상이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우상숭배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가득차 있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내 마음과 심령에는 주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마저 들어올 자리가 없어지고 맙니다. 내 마음이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것은 내 마음에 사단이 가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면 자식은 죽게 됩니다. 1계명과 2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사단의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그 자식들을 죽이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때 엘리제사장은 회개해야 했습니다. 엎드렸어야 했습니다.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제사장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쉬었습니다! 기도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놓고 통곡하며 자식의 장래를 위해 부르짖어 기도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엘리제사장은 최소한 그들을 불러놓고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경고의 말씀을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에게 돌이켜야 한다고 경고했어야 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하루 아침에 잃고 싶지 않구나. 너희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죄악은 일반 사람들의 죄악보다 큰 것이야. 그러니 더 이상 너희의 배를 채우기 위해 제사를 멸시하지 말아라. 그리고 깨끗한 제사장이 되자꾸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혹 자기 남편을 구원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경우는 없지만, 자기 자식만큼은 그 부모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바로 엘리제사장의 경우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만일, 정말 엘리제사장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아들을 불러놓고 엄중히 책망하고 그래도 듣지 아니한다면 제사장직마저 파면하면서까지 그들을 엄하게 책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첫째, 하루 아침에 두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젊은 나이에 죄를 짓다가 죽었는데, 그들은 죽은 다음에 어디로 떨어졌겠습니까?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만약 엘리제사장이 회개했더라면, 자기와 자기아들들 모두가 지옥에는 떨어지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둘째, 그리고 할례받지 못하는 블레셋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하루 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셋째, 자기도 목이 부러저 죽는 비참한 죽음을 받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죽고 법궤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의자에서 자빠져서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비느하스의 부인도 둘째아이를 출산하다가 그만 죽습니다.

넷째, 언젠가는 그의 집안이 멸문가문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대제사장직무를 수행할 날이 돌아왔을 것입니다. 손자 때에 가서 다시 회복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의 아들들만 죽었지만 그의 손자는 대제사장직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4. 청중의 문제와 해결과 복()(P,D,B,L)

1)청중해결동기와 영적법칙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이 나라의 신자들이 자기자식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그냥 내버려두는지 모릅니다. 자기자식이 인생에서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을 쓰면서도, 정작 자기자식이 영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곁에서 떨어져 나가는 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다가 좋아지겠지 하고는 내버려둡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여기 자신의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 칩시다. 고름이 계속 생기다보면, 파리 때문에 감아놓은 붕대 사이에서 구더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아픕니다. 욱신거립니다. 그런데 그대로 놔두면 좋아집니까? 당장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어떻게 합니까?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쳐도, 붕대를 풀고는 알콜로 씻어냅니다. 고름을 다 파냅니다. 살 가죽을 들쳐내어서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고름을 다 긁어냅니다. 얼마나 아픈지 아십니까? 그러면 막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둡니까? 그래서 살은 더 썩어들어가는 것입니다.

 

주일날, 우리 아이들이 학원에 빠지는 것은 호되게 나무라면서도, 주일날 교회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학교성적이 떨어지는 데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도 자녀들의 신앙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큰 일 났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런 실정입니다.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만약 지금 내 자식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지도 않으며,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아무런 징계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자식을 죽이는 것입니까? 자기자식을 죽게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냥 놔두면 다 죽습니다. 엘리의 가문을 보십시오. 멸망이 하루 아침에 기어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방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징계가 없다고 기뻐하지 마십시오! 징계가 없으니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는 않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엘리가문을 보십시오. 고라의 가문을 보십시오.. 고라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까?

무엇이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들을 책망하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 자식사랑일까요? 우리의 자식들은 우리들의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식들이 아닙니까? 그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키우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책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무시무시한 형원한 형벌장소만큼은 피할 수 있습니다. 좀 자식이 직책을 잃어버리면 어떻습니까? 그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 직책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2)하나님의 개입

자식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한 행위를 행하고 있는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자식사랑이 아닙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빼먹거나 소홀히 여기는 것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자식을 멸망으로 내모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진정 엘리제사장을 사랑했기에 두 차례나 그에게 경고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네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네 자식들을 파면한다면 잠깐 동안은 아프겠지만, 그래야 사는 거다. 그렇게 하면 대제사장이 네 집안에서 끊어지는 것처럼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네 후손에서 대제사장이 나올 것이다. 지금 너희들 때문에 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무수한 사람들이 너희들 때문에, 제사를 멸시하고, 나에게 나오려고 하지 않는구나.”

그렇습니다. 자식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그냥 내버려 둔다면 당장 자식하고 얼굴 붉힐 일이 없을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식에게 더 참담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자식을 훈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십시오. 자식을 그냥 놔 둔 것은 회개하십시오. 그것을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식은 돈이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식은 출세가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식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야 안전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들어오도록 요청하십시오.

 

3)청중들이 받을 축복과 영적법칙

자식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식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큰 징계를 몰고 올 뿐입니다. 자식을 나무라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길을 가는 자식을 방치하지 마십시오. 내가 징계하면 하나님의 징계는 오지 않습니다. 내가 책망하면 하나님이 손대지 않습니다.

주님, 지금 내 자식을 불러다놓고 책망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진정 자식을 사랑하기에 믿음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자식을 징계하는 것이 너무나 나에게는 아픈 일이지만, 그것이 내 자식을 위한 가장 큰 사랑이기에,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5. 결단과 축복

1)결단의 필요성

우리도 엘리가문의 징계를 받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치십시오..

예배에 성공하지 못했던 가인의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의 실패는 그냥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예배에 실패하면, 온갖 종류의 죄의 씨앗들이 사람의 마음 속에 파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가인의 마음속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들어왔습니다. 결국에는 동생을 쳐 죽여놓고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건생활의 기본은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하고 그 말씀에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내가 대신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여 그로 하여금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해 보겠습니다. “나는 매주 예배에 성공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를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습니다.”

예배에 모든 관심을 집중했던 수가성 여인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 그의 얼굴을 보게 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갈증난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2)결단의 방법

비록 결단을 해도 실천할 방법을 모른다면 결단을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을 둔 경우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예배는 꼭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십시오. 성경책을 꼭 들려주십시오. 헌금은 새 돈으로 준비해서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배를 빼먹었다든지 헌금가지고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든지 하는 것이 발견되면 강하게 책망하여 바로잡으십시오. 어린 시절 도둑질을 바로 잡지 못하면, 커서는 어마어마한 도둑질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일날 예배를 빠뜨리지 않고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토요일에는 심한 운동을 삼가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일날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에 나온다하더라도 졸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일에 어떤 약속을 잡지 않게 하십시오. 약속을 잡으려면 토요일에 잡게 하십시오. 혹 상대방이 믿지 않는 사람이라 일요일에 결혼식을 이미 잡아버린 상태라면, 토요일에 미리 찾아가서 축하해주시고 축하금을 드리고 오라 하십시오. 그리고 셋째, 주일에는 대통령을 만나는 이상으로 몸과 마음가짐과 복장을 준비하게 하십시오.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나오게 하십시오. 넷째, 예배 10분전에는 교회에 도착하게 하십시오. 헐레벌떡 예배당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예배 5분전 강대상에 와 계시는 주님보다는 일찍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부득이한 경우가 발생했을 때에는, 주일오후찬양예배에 나오도록 하십시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월요일 새벽기도에라도 참석하게 하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하나님께 내 얼굴을 보이라고 하십시오.

 

3)결단의 축복

만약 결단하지 않는다면, 엘리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약속된 축복들을 다 놓치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귀중하게 여긴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귀히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손대대로 주시겠다고 약속한 모든 복이 그대로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주일날 가게의 문을 닫는 자들에게는 일주일에 6일만 일해도 7일동안 벌 돈을 얻게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자식으로 하여금 주일에 예배드리게 하면, 그들이 장차 민족을 짊어지고 갈 지도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학교 다닐 때에, 성적이 우수한 자가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것 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은 성적 순이 아닙니다. 성공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잘못한 경우가 발생하면 한 두 번은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도 계속해서 범죄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장래를 복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대전의 어느 교회 장로님의 따님은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장로님은 가난했기에 딸이 원하는대로 다 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잘못한 일이 생기면 그 아이가 그것을 고치기까지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그 자매의 꿈은 카이스트였습니다. 왜냐하면 대전에 그 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주 교회의 예배반주를 하던 이 자매가 그만 대학에 떨어졌습니다. 모두들 그럴 수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대한민국에서 길이 열려지지 않으니까, 오히려 유학의 길이 열려 외국에 갔는데, 거기서 올림픽을 주최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장의 아들이 그 아가씨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결혼을 하려는데, 결혼을 위해 남편 될 식구의 온 가족이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까지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도를 못했지만 외국에 가서 한 집안 식구를 더 전도한 것입니다.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배경의 남편을 만나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녀가 해 달라는 데로 해주어서 빠뚫어진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다면 엄하게 책망해서라도 바른 길을 가도록 함으로써 그의 장래가 복이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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