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갈렙
· 성경본문 : 수 14:6~14:12
오늘 여호수아 14장 6절에서 12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건강한 갈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 대신에 여러분 각자의 이름으로 바꾸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혼자 살지 못하고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더불어 사는 생활을 사회 생활이라고 합니다. 사회 생활의 기본 단위는 나 개인이 아니라 가정입니다. 가정 생활이 건강해야만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가정이 병들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병들어 버립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집을 나가거나 한다면 이 가정은 병든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건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교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 중에서 믿음이 싹트고 자라고 꽃피어 열매를 맺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으려면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가 모이기만 하면 싸우고 예배 시간에도 싸우고 제직회 모임에서도 싸우고 당회가 모여도 싸우고 그런다면 거기서 무슨 믿음이 싹트며 자라며 꽃피우며 열매를 맺겠습니까?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의 믿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믿음 자체는 세계적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라고 하는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나라가 건강해야 합니다. 나라가 병들거나 약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도 건강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갈렙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건강한 생활에 대해서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무엇이 건강해야 하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마음의 건강 (6-7)
잠언 4장 23절을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나면 지킬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있을 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지켜야 합니다. 잠언에서 솔로몬이 지키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당시의 심판 받을 사람들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하다는 것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계획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이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음입니다. 즉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계획이 나오고 계획에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병들면 생각 자체도 병들어 버리고 계획 자체도 병들어 버리고 행동 자체도 병들어 버립니다. 말을 바꾸어 말하며 마음이 악해지면 거기에서 나오는 생각도 악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계획도 악하고 마지막에는 행동이 악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킬 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즉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마음만 있으면 천리만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하루에 열두 번을 생각하고 울지 않습니까? 마음이 없으면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릅니다. 마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에서 7절을 보면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지나 시나이 반도를 거쳐 가데스바네아로 갑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두세 달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열두지파에서 "나"다 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뽑아 열두명으로 정탐꾼을 조직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샅샅이 뒤져보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 정탐꾼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샅샅이 모든 것을 조사하고 돌아왔을 때 백성들이 그 정탐꾼의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싶었겠습니까? 정탐꾼으로 갔던 사람들 중에 열 사람은 하나같이 사람이 살수 없는 사람 잡아먹는 땅이라고 악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는 장대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은 허튼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땅을 왜 악평을 합니까? 악평이라고 하는 것은 정평이 아니지 않습니까? 악평이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는데 왜 악평을 합니까? '너희가 들어가면 그 땅을 차지하고 기업으로 받으리라' 즉 되리라, '하리라' 하셨는데 아낙 자손이 살고 있다하여 왜 우리가 못한다, 안된다고 그러는 것입니까? 마음이 병들었기 까닭입니다. 그래서 허튼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갈렙은 '자기의 마음에 성실한대로 보고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건강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포도 한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로 꿰어 메고 와서는 "이것 보십시오. 이런 곳이 사람 잡아 먹는 땅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올라가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열 사람들은 백성들의 간담을 녹게 하고 실망을 주었으나 갈렙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같은 땅을 보고도 삐딱한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악평을 했습니다. 말을 해도 삐딱하게 하고 일을 시키면 일 처리를 삐딱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병든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9절에 보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은혜 받을 때 건강해 진다는 말입니다. 30년 동안 교회에 나오고도 은혜를 받지 못하면 마음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다 보면 악평을 하고 허튼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단 1년을 교회에 나와도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이 건강한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가 충만하여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믿음의 건강 (8-9)
병들면 무슨 소리를 합니까? 앓는 소리를 합니다. 앓는 소리는 듣기 싫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어머니가 누워서 지금 죽을 지경에 앓는 소리를 한다고 합시다. 어머니의 소리지만 듣기가 싫습니다. 어느 자식이 어머니가 아파 죽겠다고 하는 그 앓는 소리를 "참 듣기 좋다"고 하겠습니까? 앓는 소리는 듣기 싫은 것입니다. 믿음도 병들면 이와 마찬가지로 앓는 소리를 합니다. 믿음이 병들었을 때 내는 앓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병이 들면 첫째로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믿음이 병들었습니다. 악평을 하고 하나님이 된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안된다고 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울고 불고 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낙심케 합니다. 주의 일에 협력하지 않게 만듭니다.
둘째로 믿음에 병든 사람은 일감을 놓고도 절대로 일을 하지 못합니다. 뒤에서 잔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에 병이 들면 봉사할 거리가 많은데도 절대 봉사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불평만 합니다. 된소리 안된소리를 하며 허튼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은 절대 봉사를 하지 못합니다.
셋째로 믿음이 병든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가령 다섯 식구가 살아간다고 할 때 식구 중에 누구 하나가 병들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병든 사람이 그 가정에 유익을 주는 일이 있습니까? 손해를 끼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전염을 시킵니다. 유익을 주는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처럼 믿음에 병이 들면 꼭 다른 사람의 믿음에 손해를 주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 사람을 가까이하면 병에 전염이 되듯이 나도 믿음에 병들어 버립니다. 누가 여러분 곁에 와서 불평하고 딴 소리를 하거들랑 '이 사람은 믿음이 병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열 사람의 정탐꾼은 믿음에 병들었기 까닭에 하는 말마다 부정적입니다. 말을 할 때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합니다. 정의의 사도로 둔갑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이요, 건설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은 건강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9절을 보면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갈렙 자신이 여호수아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 때 열 두 명이 정탐을 갔다가 보고를 할 때 열 사람이 딴 소리를 했지만 당신과 나는 마음에 성실한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도 알겠지만 그 때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좋았다고 하는 것은 건강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스스로도 건강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앞에서 보고를 받고 있던 모세도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자타가 함께 공인하는 온전한 믿음, 건강한 믿음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병든 믿음은 듣는 사람들의 간담을 녹게 합니다. 간을 콩알 만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공포심과 불안을 조장하고 믿음에 상처를 주고 손해를 끼칩니다. 그러나 믿음이 건강한 사람 갈렙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니 좋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시니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항상 하나님의 편에서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열 두 사람 중에 열 사람의 말은 안된다 하고 두 사람은 된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열 사람의 말입니다. 민주주의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가 되는 민주주의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아무 아무개가 미워 죽을 지경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둘이서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새벽마다 나와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절대로 그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고 계시다면 속히 거두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 내 편이 되어 주십시오"가 아니라 "나로 하여금 하나님 편에 서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건강한 믿음은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주어야 될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호레이스 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순교자로 죽는 것 보다 순교자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순교자로 맞아서 죽는 것 보다 순교자의 정신과 신앙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갈렙이 바로 그런 순교자의 정신과 신앙으로 산 사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믿음입니다.
셋째, 육신의 건강 (10-11)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돈 몇 푼 더 버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 보다 한자리 더 높아지는 것입니까? 죽어 죽어 하다가 병고침 받아 1년 2년 더 사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차라리 기독교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개종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늘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 놓으면 기독교는 이미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은 하늘나라 거기에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런데 그 만 못하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이 땅위에서 오래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가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늘 나라에 가서 전도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 곳에 가면 전도가 필요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구제 사업을 합니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가면 봉사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서 찬양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전도하는 일, 구제하는 일, 그 밖에 나의 힘을 필요로 하는 너를 돕는 일, 이런 일들은 살아 생전에서만 하는 일입니다. 죽어 천국에 가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오래 오래 사는 것입니다. 또 오래 오래 살아도 무드셀라처럼 '969세를 살고 죽으니라'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삶의 뜻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건강하며 장수해야 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해도 일찍 죽어 버리면 일 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 장수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 많이 하고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돈은 있을 때 지키는 것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난 후에 지킬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건강도 내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입니다. 병들어 죽어 죽어한다면 지킬 건강이 뭐가 있겠습니까? 젊어서 병들면 하나님 앞에 참 미안한 일입니다. 건강하며 장수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0절에서 11절을 보면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와서 하는 말이 "당신과 내가 정탐꾼으로 갈 때가 40세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내가 85세입니다. 지금 내가 85세로되 오히려 그 때보다 강건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 40세 때보다 더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환갑 60세 나이지만 30세의 건강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의 이런 건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서른 살 또는 서른 다섯 살 때 죽어 죽어 하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제가 얼마나 건강합니까? 건강하니까 좋습니다. 일을 해도 피곤함이 없고 일감이 주어지면 참 기쁩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며 지키고 건강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지켜야만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을 보면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고 또 읽어보십시오. 바울 사도가 아파서 누웠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육체에 찌르는 가시가 있다고는 했지만 아파 누웠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이방인에게 전파되어 그 말씀을 듣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심은 전도하라고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 앓아 누운 적이 없습니다. 죽을 때도 안방에 누워서 와석 종신하지 않았습니다. 붙잡혀 가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건강을 주심은 전도를 열심히 하라고 주었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건강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봉사 많이 하라고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이 젊을수록 열심히 봉사하십시오. 하나님도 젊음을 좋아하십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이 봉사할 때 25살부터 50살까지만 하고 그 후에는 은퇴하라고 했습니다. 젊음을 받치라는 그 말입니다. 젊었을 때는 내 멋대로 다 살아버리고 늙어서 주님 봉사하겠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건강할 때 그 젊음의 건강을 가지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육신의 건강이 바로 갈렙이 건강을 누리는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의 건강이 갈렙의 건강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넷째, 생활의 건강 (12)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서 생활이 병든 사람은 이렇다 하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한 곳에 부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둘 째 아들이 문제입니다. 자꾸 아버지 살아 생전에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주는 것이지 살아서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달라고 졸라서 결국은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산은 돈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생활이 병든 둘째 아들은 자꾸 공짜를 바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짜가 좋습니까? 공짜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생활이 병든 사람입니다.
생활이 병든 사람은 첫째로 공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은혜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씁니다. 은혜가 공짜라는 말이 아닙니까? 정권이 바뀔 적마다 줄줄이 수갑차고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의 많은 부분이 기독교인이 아닙니까? 모든 것이 다 은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좋지만 공짜는 좋아하지 마십시오.
둘째, 엄청난 유산을 받고 난 후에 자기 집에 유하면서 아들 노릇을 했습니까? 그 유산을 가지고 멀리 떠나가 버리고 아들 노릇은 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병든 사람은 자기 집안에서 자기 위치를 절대 지키지 않습니다. 집을 떠나버립니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나 버렸습니다. 자녀가 문제가 되어 경찰서 유치장을 자기 집 드나들 듯이 합니다. 생활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바로 그러지 않았습니까?
셋째, 그 엄청난 유산 전부를 허비해 버렸습니다. 쓸 곳에 쓰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쓸 만한 곳에는 한푼도 안쓰고 써서는 안될 곳에 다 쓰고 돌아다니다가 재산이 전부 거들났다는 말입니다. 이 때 탕자에게 물어 봤다면 아마 "그 때 하나님께 헌금이나 왕창 해 버리고 말 것을"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이 없습니까? 돈푼이나 제법 가지고 살다가 망하고 난 후에 "헌금이나 다 하고 말 것을!"이라고 말입니다. 돈푼을 조금 가지고 있을 때 목사가 헌금 소리를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교회에 가니까 헌금 소리만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에 나오는 탕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또는 너를 위해서 절대 돈을 쓴 적이 없습니다. 자기의 향락을 위해 쓰지 않을 곳에 다 쓰고 허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활이 병든 사람입니다. 생활이 건강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2절을 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열두지파의 군대들이 총동원되어 점령한 후 '너희가 가져라' 하고 나누어 준 땅이 절반이 채 안됩니다. 그 때 갈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약속해 준 말씀이 '네가 네 발로 밟는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점령한 땅에 '이것은 내 것입니다'하고 한바퀴만 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것은 공짜 아닙니까? 갈렙이 공짜를 바랬습니까? 갈렙은 기름진 평야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름진 땅은 원하는 사람에게 다 주십시오. 나에게는 저 산지, 즉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곳을 주십시오. 특히 거기에 있는 철옹성 같은 헤브론성을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싸워 이겨서 기업을 삼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가서 싸워 이기고 기업을 삼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땀과 피를 흘려 기업을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버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이 다 벌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벌었으면 많이 모아 놓으십시오. 모으지 않으면 돈을 번다는 사실은 의미가 없습니다. 벌어 모아 놓은 것을 누리지 못하면 모아 놓은 것은 역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으고 쓰지를 못한다면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실컷 누리고 가십시오. 누린다는 것은 내가 먹어야 되고 내가 입어야 되는 것만이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너에게 베풀어 주어도 내가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 말입니다.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생활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도 갈렙처럼 이렇게 생활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갈렙은 마음이 건강했습니다. 마음은 은혜로서 건강해 집니다. 둘째로 갈렙은 믿음이 건강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갈렙은 육신이 건강했습니다. 오히려 늙었지만 젊음의 건강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갈렙은 생활이 건강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벌고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많이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이 건강한 사람은 벌 줄을 알고 너에게 베풀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렙의 건강이 여러분들의 건강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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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 같은 어른이 됩시다
· 성경본문 : 수 14:6~14:12
미국은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번은 모범적인 아버지 여덟 명을 선발했는데 그 중에 뉴욕주지사를 지낸 마리오 쿠오모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한 신문기자가 쿠오모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쿠오모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좋은 아버지가 된 것은 내 아내와 자녀들 덕분입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릴 경우는 보통 아내와 자녀들의 노력이 있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항상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가정에 시련이 닥칠 때는 그것을 내 책임으로 여기고 반성을 합니다."
쿠오모는 좋은 결과의 공을 항상 가족에게 돌렸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불행은 모든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데 있습니다. 좋은 것은 내 공이고 나쁜 것은 아내나 남편의 탓으로 돌리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책임회피와 변명만 배웁니다. 감사와 책임이 좋은 가정을 만듭니다.
에어쇼 도중 항공기가 추락해 사망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소속 고(故) 김도현 소령은 정상적인 비행을 위해 최후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많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끝까지 조종사로서 사명을 다하여 관람하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의 길을 택했던 위대한 군인 정신이 아름답고 빛났습니다. 끝까지 변함 없이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의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갈렙입니다.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 주는 훌륭한 어른이십니다. 오늘날 어른 대접 안 해준다고 고함치고 불평하고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어른답게 행동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임무를 성실하게 감당함으로 갈렙처럼 감동을 주고 존경받는 어르신과 부모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믿음의 어른
본문 7-8절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갈렙은 45년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세가 가나안에 파견한 12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40일간의 정탐을 마친 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공격을 주장하다가 오히려 열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한 종들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원하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갈렙은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그대로, 나의 확신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공동 번역은 "마음에 믿어지는 바를"이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이 보고할 때에 백성들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확신에 따라 자신이 목격한 가나안 땅의 실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한 것을 의미합니다. 순교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던 것입니다. 갈렙이 자신의 성실성을 내세운 것은 결코 자만심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성실히 순종한 자로서의 표현입니다. '온전히'의 히브리어 '말레'는 충만하고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충분히 그분의 뜻에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의 분노와 돌멩이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께만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대단한 믿음과 용기인 것입니다.
퍼트리샤 존스가 미국 50대 기업의 원대한 가치와 이상을 조사하여 쓴 「미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존스는 이 책에서 위기를 만날 때 리더십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항해 중에 갑자기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고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칠 때 그것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를 이겨내겠다는 불같은 의지나 구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나침반이요, 둘째는 배를 이끌고 가는 노련한 선장의 리더십입니다. 그런데 존스는 리더십보다 나침반의 역할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기업들이 망하는 이유가 리더십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리더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고의적으로 기업이나 국가를 파산시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흥하는 경우보다 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인생과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경험보다 더 정확하고 중요한 것은 나침반과 같은 하나님과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말씀을 선택하면 후회와 실수가 없습니다. 상황과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갈렙은 최고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갈렙처럼 믿음대로 살고 하나님만 온전히 좇아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존경받는 믿음의 어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강건한 어른
본문 10-11절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지파의 대표자들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내었습니다. 당시 갈렙은 유다 지파를 대표하여 정탐꾼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는 40세로서 4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갈렙은 자신의 생명이 45년 동안 보존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험준한 광야 생활동안 하나님께서 지난 45년을 지켜 주셨음을 감사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살아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갈렙은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라고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45년 전의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건강과 힘이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축복이고 간증입니다. 여기서 '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아흐'는 단지 육체적인 힘만 뜻하지 않고 정신적인 담력도 뜻합니다. 따라서 갈렙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과 힘을 오로지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감사하고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몸과 마음과 정신과 믿음이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건강한 몸과 정신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 청년 같은 노인이었습니다. 사실 85세에 몸과 정신과 마음의 건강과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만, 혹은 정신만 건강한 경우도 있고, 몸과 정신이 다 병약할 수 있습니다.
아이어코카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온갖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희생불능의 크라이슬러사를 살아나게 한 사람입니다. 그가 몸을 1978년부터 1982년까지 35억 달러에 달하던 누적 적자가 1983년에는 7억1백만 달러의 수익을 내는 흑자 기업이 되었습니다. 1990년까지 갚아야 했던 정부에 대한 12억 달러의 부채도 바로 갚았습니다. 그렇게 영웅적인 인물이던 그도 1992년에 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회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김준범은 '위기를 극복한 세계의 경영인들'이라는 책에서 평가하기를 아이어코카가 그 어느 경영자도 경험하지 못한 박수 갈채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자, 자신의 경영의 비결로 늘 강조하던 제품의 질, 사람의 중요성, 수익성에 대한 관리보다는 인기 관리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인기에 연연하다가 절체 절명의 과제인 신제품 개발을 10년 간이나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슬러의 노조 문제보다 미국의 재정적자를 더 걱정했습니다. 한 마디로 아이어코카의 몰락은 그가 위기 관리자에서 인기 관리자로 변신한 결과입니다. 외치에 집중하다가 내치가 몰락해 버린 것입니다. 병든 자신과 회사를 몰랐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갈렙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수와 건강과 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어버이와 어르신들 모두가 장수와 건강과 힘과 가정과 교회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모든 면에 강건한 하나님의 복을 갈렙처럼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사명의 어른
본문 12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아낙 사람'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가나안 남부의 산간 지대에 주로 거주했던 가나안 족속입니다. 키가 크고 거대했으며 힘이 센 거인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거인족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들어가서 85세의 갈렙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말은 땅을 요구하기보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순교적인 자세로 싸우겠다는 자기 희생인 것입니다. 갈렙은 백발이 성성할 정도로 늙었지만 본문은 아직도 그가 가나안의 헤브론 성읍을 정복하겠다는 강렬한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그가 아직 젊었다 할지라도 아낙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그와 같은 요구나 행동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헤브론은 45년전 정탐꾼들을 두렵게 하여 가나안 침공을 하지 못하도록 한 아낙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었고 그들의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믿음의 용사 갈렙은 아낙 족속을 징벌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민족이 준 사명이기에 목숨을 바쳐서 사명을 이루려 한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가 두 번이나 갈렙의 짧은 말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인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 생명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사명을 더 귀하게 여긴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의 불타는 사명감을 우리 모두는 본받아야 합니다.
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용병으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전우들과 함께 투옥됐습니다. 그런데 작가의 얼굴은 기쁨의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전우들이 의아하게 여겨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뭐가 그리 즐겁습니까?"
"이제 나는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됐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작가는 매일 작품을 써서 감옥의 동료들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전우들은 그의 작품을 들으며 매우 유쾌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작가가 형량을 마치고 출감했을 때는 이미 한 권의 책을 만들기에 충분한 분량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원고는 책으로 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돈키호테」, 이 작가의 이름은 세르반테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어떤 희생과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기쁨으로 해야 됩니다. 부모와 어르신들 모두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하는 사명, 본이 되고 가족과 자녀들을 믿게 해야 하는 사명, 봉사와 기도와 격려와 사람을 세우는 사명, 연세 많으신 분들은 예수 잘 믿으라고 자녀들에게 유언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갈렙처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시는 부모와 어르신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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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성경본문 : 수 14:6~14:15
2002년 우리교회의 표어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에 복의 근원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복의 근원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은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나로 인하여 무너진 것들이 회복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복의 근원이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삶의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은 내가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러나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희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양초가 녹아 내림으로 빛을 발하고 소금이 녹아 내림으로 짠맛을 낼 수 있듯이 구체적인 삶의 희생과 결단이 있어야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두 시간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베스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은 구호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삶의 지침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에게 그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입니다.(대상4:9-10)
야베스는 슬픔과 고통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자란 사람입니다. 불행의 분깃을 안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에 "다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환경은 불행했지만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불행한 환경 가운데 태어났을지라도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불행한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그것에 매임을 당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과 여건 가운데 있을지라도 전능하신 아버지 앞에 나아와 겸손히 무릎을 꿇어 기도하면 존귀하신 주님께서 그 사람을 존귀한 자로 세우십니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야베스는 첫째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이런 의미입니다. 주님, 나는 슬픔과 고통을 안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요. 주님! 나에게 복에 복을 주세요. 나는 복의 근원이 되고 싶어요. 이런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도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이며 네 번째 기도는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기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는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입니다. 당시에 지경은 땅의 경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지경은 무엇일까요? 더 많은 영향력, 더 많은 일, 더 많은 기회입니다.
여러분도 지난 한 주간 동안 야베스의 기도를 묵상하시며 많은 기도를 하셨겠지만 저 역시 한 주간동안 이 기도를 많이 드렸습니다. 특별히 기도하면서 영향력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오륜교회 성도들이 이 시대에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그 삶의 현장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자로서 학교와 학생들에게 영향력있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장사를 하는 자는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게 해 주세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본 것처럼 다니엘이 그 시대 얼마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까? 바울이 그 시대에 얼마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까? 사실 바울이 전한 복음 앞에 로마가 정복되지 않았습니까? 요셉이 그 시대에 얼마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까? 사무엘이 그 시대에 얼마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까? 사무엘이 얼마나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으면 사무엘이 죽고난 다음에도 사울이 무당을 통해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오고자 했을까요? 죽고 난 다음에도 다시 만나 국사를 논의하고 싶어할 만큼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경을 넓혀 달라는 야베스의 이 기도는 지금도 응답되고 있습니다.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을 한번 보세요. 우리나라는 김대중대통령의 평화상 외에는 단 한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전 세계 노벨상 수상자들의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세 명중에 한 명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21명 가운데 15명이 유대인입니다. 문화계에도 영향력있는 유대인들이 많습니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에도 유대인 배우가 많지만 포르노 영화와같은 음란한 영화를 만드는 쪽에는 유대인 배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갱단이나 마약판매, 매춘에도 거의 유대인들은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재까지도 통화금융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FBR) 의장을 지내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장도 유대인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 작년에 북한을 방문했던 올 부라이트(Albright)국무장관, 키신저, 아인슈타인, 유명한 음악가인 멘델스존이나 쇼팽, 그리고 영화로운 유명한 스필버그감독도 유대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왜 유독 유대인들 가운데 세계 정치 경제,문화등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그래서 미국의 스텐퍼드대학의 교육심리학자인 젠센(Jeansen)이라는 교수가 지능을 검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지능만 검사한 게 아니라 유럽사람들,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지능을 모두 검사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간의 지능이 별로 차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전 세계의 역사와 경제와 학문과 문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은 빛과 소금으로 이 세상에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이 시대에 영향력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건물이 크고 교인이 많다고 해서 영향력있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초창기 한국교회는 정말 변변한 건물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와 민족 앞에 영향력이 있었습니까? 민족의 독립을 외쳤던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성도는 약 3%밖에 안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글을 배웠고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이 시대에 영향력이 없습니다. 감동과 감화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이 머리되신 이 오륜교회가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향력있는 교회란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았던 또 한 사람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갈렙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정말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갈렙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음주일까지 갈렙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갈렙은 출애굽 1세대로서 여호수아와 함께 죽음을 맛보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을 하였고 그 땅을 분배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정말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 멋있는 하나님의 동역자였고 그 시대의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멋진 신앙의 선배가 되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제 본문 12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사람도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 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2절)
열명의 정탐군들의 보고를 받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대로 광야의 모래밭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의 사람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중요한 거점들이 정복되었을 때 여호수아는 각 지파들에게 그 땅을 분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각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하기 시작할 때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여러분 이렇게 말하는 갈렙의 나이가 몇인지 아세요? 10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한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세로되"(10절)
지금 그의 나이 85세입니다. 갈렙은 노아의 홍수 이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사람이 보통 살았다하면 오백세, 구백세 살았잖아요. 므두셀라같은 969세를 살았잖아요. 그런데 노아 홍수 이후에는 많이 살아야 120년을 살았어요. 오늘날과 같아요. 그러니까 85세는 젊은 나이가 아닙니다. 보통 이 정도의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양로원에 가 있든지 노인정에서 소일 없이 지내든지 조금 돈이 있고 건강하신 분들은 세계여행을 하시면서 인생을 지내십니다. 그런데 오늘 갈렙을 보십시오. 은퇴했어도 몇 번 했을 나이인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갈렙은 땅을 달라고 말하지 않고 이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갈렙이 요청한 산지는 12절과 13절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장대한 아낙 자손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성읍이 있는 헤브론 산지를 말합니다. 그곳에는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낙자손들은 네피림의 후손으로 신장이 장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정탐했던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그들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메뚜기정도로 비춰질 정도의 사람이었으니까 얼마나 크고 호전적인 사람이었겠습니까? 정말 그들은 거의 3미터에 달하는 거인들이었습니다. ㄱ들의 성읍은 견고했고 그들은 칼과 창을 가지고 있는 호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지파도 그 땅을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땅을 정복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세요. 갈렙의 인생의 나이 85세 임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냥 해 본말이 아니었습니다. 치매증상이 생겨 헛소리를 한 것이 아닙니다. 14절을 보세요. 갈렙이 그 땅을 어떻게 했습니까?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14절)
갈렙은 마침내 그 땅을 정복하여 자기의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연약해집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면 몸도 힘이 없어지고 마음도 약해져서 조그만한 일에도 섭섭해 하시고 잘 삐즈십니다. 그러니까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모신 분들은 말과 행동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머니 오늘은 누룽지를 드세요? 그러면 아니 요것들이 밥해 주기 싫으니까 누룽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갈렙은 그의 인생의 나이를 초월하여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갈렙은 인생의 나이를 뛰어넘어 그렇게 도전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왜 갈렙은 젊은 사람도 선뜻 나서지 않는 그 헤브론의 산지를 내게 달라고 말하였을까요? 왜 갈렙은 85세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을까요?
비전의 사람
그것은 그가 비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의 비전은 야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이 헤브론의 산지를 정복하여 자기의 지경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언제 그가 이 꿈을 갖게 되었을까요? 정탐군의 한 사람으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 헤브론의 산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저 헤브론의 산지를 정복하여 나의 기업으로 삼아야지 하는 그런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른 정탐군들은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기에 "그들 보기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였고 거대한 성읍과 칼과 창으로 무장된 호전적인 사람들만을 보았지만 갈렙은 그 헤브론의 산지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낙 자손들이 거하는 저 헤브론의 산지를 누군가 정복하지 않고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정복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헤브론에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묻혀 있는 막벨라 굴이 있다. 그러기에 반드시 저 헤브론의 산지는 정복되어야 한다. 주님 나에게 저 산지를 주십시오. 주님이 나를 인도하여 그 땅에 들어가게 하면 내가 저 산지를 정복하여 기업으로 삼겠나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대로 저 가나안의 땅이 정복되었음을 후대에 알리겠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갈렙은 헤브론의 산지를 바라보면서 비전을 품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민14:24절을 보십시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 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민14:24절)
갈렙은 그 땅을 차지하리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때문에 그 비전을 가졌습니다. 갈렙의 비전은 야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비전은 인생의 나이를 초월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인생의 나이를 초월합니다. 꿈의 사람은 인생의 나이를 초월하여 언제나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말하면서 인생의 나이 85세였지만 40세때 정탐군으로 파송을 받을 때와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정말 건강했던 것 같습니다. 20대 청년과 같은 그런 젊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사기 1장을 보면 갈렙이 그 땅을 점령하러 들어갈 때 직접 들어가지 않고 자기는 지휘만 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그 땅을 정복합니다. 누가 들어갔습니까? 옷니엘입니다. 저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는 자에게는 내 딸을 주어 사위를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옷니엘이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보면 그의 육체보다는 그의 마음이 더욱 젊고 건강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항상 젊게 삽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사람은 그 마음에 항상 타오르는 불길이 있습니다. 젊음이 있습니다. 갈렙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갈렙은 40세에 인생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45년을 기다렸습니다.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10절하)
갈렙은 4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한번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 그 비전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그의 마음 속에는 헤브론의 산지가 항상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나이를 탓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생각하세요. 아직 내가 이 땅에 살아 있다는 것은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가 희어진다고 주름살이 많아진다고 가는 세월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세요.
우리 교회에는 청년회가 있고 여선교회 가운데 소망회가 있습니다. 소망회는 1931년생부터는 소망회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 가운데 애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죽어도 소망회에는 안들어 가겠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십니다. 아마 소망회에 들어가면 더 늙어 보이고 안들어가면 더 젊어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망회는 절망회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절망회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내년에는 그 이름을 좀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회춘회로 한다든지 비전 인큐베이터로 한다든지 하여간에 이름을 바꾸어야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망회에 들어갔느냐? 안 들어 갔느냐? 가 아니라 오늘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 가운데 보면 인생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갈렙처럼 젊게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청년들 가운데는 늙은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런 인생의 열정도 비전도 없이 되는 대로 구름이 흘러 가는대로 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게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밝고 용감하고 도전하는 인생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세요. 비전의 사람이 되세요. 죠지 휫필드의 말처럼 "녹이 슬어 없어지는 인생이 되지 마시고 닳아 없어지는 인생이 되십시오" 꿈이 있는 사람은 오늘도 도전합니다. 얼마전에 73세의 나이드신 할머니가 전문대학의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습니까? 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꿈이 있는 자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꿈이 있는 자는 인내합니다. 꿈이 있는 자는 도전합니다. 오늘도 이 세상은 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정복됩니다.
호텔왕 콘래드 힐튼은 어느날 5달러짜기 쇠막대기 하나를 손에 들고 직원들 앞에 섰습니다.
"여러분 이 5달러짜리 쇠막대기는 그대로 두면 녹슬어서 쓸모 없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쇠막대기를 녹여서 말발굽을 만들면 20달러를 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늘을 만들면 3,200달러를 벌 수 있고 이것으로 첨단기계에 사용되는 용수철을 만들어 팔면 250만 달러를 벌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원자재타령만 할 것입니까? 인생은 언제나 도전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전은 출신성분을 초월한다.
비전의 사람은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존귀한 자로 쓰임을 받습니다. 본문 6절 상반절을 보면 갈렙은 그니스 사람 여분네 아들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6절상)
갈렙은 그니스사람 여분네의 아들입니다. 그니스사람이란 팔레스타인 주변에 거주하던 에돔족속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갈렙은 에돔 족속 중의 한 사람인데 전쟁을 통하여 애굽에 포로로 잡혀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포로생활 가운데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함께 따라 나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출12:38절에 보면 많은 잡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하였고 이후 갈렙은 유다지파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갈렙은 유다지파를 대표하여 정탐군으로까지 파송되었습고 후에는 여호수아와 함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약속의 땅을 정복한 믿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은 언제나 개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갈렙이라는 이름의 뜻은 '케레브' 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케레브라는 말의 뜻은 개, 매춘부, 노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갈렙은 출신성분이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그 시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도 사명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신성분을 탓하지 마세요. 서울대를 나와야 하나님이 쓰시는 것 아닙니다. 박사학위를 가져야 하나님이 쓰시는 것 아닙니다. 박사 학위 없어도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이 얼마든지 존귀하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제 뉴우스를 보니까 삼성의 320명의 사장단 가운데 서울대, 연고대를 나온 사람은 3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지방대 나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갈렙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가면 출신성분과는 상관없이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도전하며 전진하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렙을 들어 쓰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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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야 한다
· 성경본문 : 수 14:6~14:15
옛말에 어디로 가든 서울로 가 면 된다는 말이 있으나 우리 삶은 그렇게 가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다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는 없습니 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로 갈 때, 말씀에 순종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축 복받기를 원하시고 잘되기를 원하시고 멸망받지 않기를 바라고 계시 며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성령 보혜사를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으로 한사람 한사람을 진리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삶이 기도 하면서 은헤받으면서 살기를 원하 십니다. 많은 자녀들이 자기 부모들에게 왜 나를 낳았냐고 외칩니다. 사실 부모도 왜 낳았는지 모릅 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우리를 왜 택하셨는지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사 천 하만민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 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 나님은 또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어떤 부름의 원칙을 갖고 끊임없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신명기 28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위와 명예를 주겠다.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게 하 시기 위해 물질적 축복도 주겠다. 너를 보고 만방이 두려워하리라. 멸시 천대 받지 않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너를 택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계의 머리 역 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양식을 꾸어다니는 유대인이 없습니다. 지금 양식을 나누어주고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나라 위에 있는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멸시 천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새로운 유대인이 되고 새로운 선민된 우리는, 그리스도 안 에서 부름 받은 우리에게도 이 축 복은 똑같이 유효한 것입니다. 하 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머리되게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꾸어다니 면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의 그릇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 그릇이 큰 그릇이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멸시 천대를 받으면 여러분의 신앙에 문제가 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먼저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하여 충성스러운 신앙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땅에서 복을 받고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족장으로서 최고의 지위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계속까지 자손에게 축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갈렙과 같이 이 시대를 훌륭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축복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농사를 짓더라도,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가정생활이나 공무원 이거나 교도관으로 있든지 그냥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이것은 허송생활이 아닙니다. 만군의 하나님, 전능하신 분의 뜻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우리들 입니다.
어느 청년이 기도받으려고 왔다 고 했습니다. '하사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축복해 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런 축복은 해 줄 수 없다. 너 아무리 아이엠에프(IMF) 라도 그렇게 포부가 작아서 되겠는가? 하사관은 기도 안해도 된다. 장성이 되려고 한다면 모르는데 그 런 기도는 안 해준다.' 그래서 안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 는 큰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갈렘은 사명감, 소명감이 확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고 보내주시고 택하시고 이 일 을 맡기셨다는 마음을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든지 그 하는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기셨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귀한 삶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배우자, 자녀, 직장 일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광을 받으시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혹 감옥에 가는 일이 있어도 이것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 서 여기에 보내셨다고까지 생각해 야 합니다. 병이 걸려도 이 병속에 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해 야 배움이 있습니다. 그 병을 통해 마음까지 고치는 축복의 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이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병속에서 많은 것을 고칠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감옥에 간 것도 애굽에 팔린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소망 을 갖고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불평, 원망을 하지 않고 하나님 의 뜻을 찾았습니다.
요사이는 사람들이 고민도 없이 살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런 슬기로운 사람을 찾기가 어렵 습니다. 그저 '안되면 안되는구나.' 하고 '되면 되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마당을 쓸어도 사명감을 갖고 하나님의 뜻 을 찾고 기쁘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사명감이 없습니다. 어제 구 치소를 갔었습니다. 거기 오래 있으면서 책임을 지고 있는 분이 계 셨습니다. 그 분 얘기로는 사람은 두가지라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들어온 적이 있는데 높거나 낮거나 간에 거기 들어오는 사람은 두가지 형태 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들어오던 날부터 불평, 원망 속상해 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증오 원망이 펄펄 끓는 사람입니 다. 모든 원인을 사회에 돌리는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회개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성경많이 읽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조용하 게 있으면서 다른 사람 말하지 않 고 아무도 원망 불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적은 밥이라고 잘 먹고 건강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 망 불평하고 싸움질 했던 사람은 감옥에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확률이 많고 또 병이 들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런 마음으로 사니까 병들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괴로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이 있고 없는 것이 중요한 것 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힘있고 능력있게 확실한 소망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불평하지 말아라. 나쁜 사람을 욕하지 말아라. 행악자에 대한 노를 그 치라. 그러면 행악에 치우친다.' 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찾는 사람은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축구장에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이든지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 갑니다. 이 렇게 교회에 오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이가 어떻든간 에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예수 사랑하고 예수 증 거하는 은혜는 우리가 다 똑같이 받은 것이고 이 사명은 믿는 성도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언제가는 사명을 맡기신 이가 우리를 부르시 는데 그 때 사명을 다하고 사명을 다한 이가 상을 받고 천국에 갑니 다.
이 세상이 얼마나 짧습니까. 저 도 이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제 나 이가 들고 보니 인생이 정말 짧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제가 개척할 때 38세 였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설교는 좋은데 너무 젊은 목사님 교회에서 등록하는 것이 마음이 걸 린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 이 상처가 되어 '빨리 늙게 해 달 라' 고 기도를 하면서 목회했습니 다. '젊은 종을 축복하시고' 하는 말이 싫어서 '빨리 늙은 종이 되게 해 달라' 고 기도했는데 어느새 벌 써 이렇게 늙어 버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15살에 몇 세기를 넘어서듯이 바꾸어 놓습니 다. 15년이라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요즈음은 45살이 야 새새댁입니다. 길을 가다가 '아 가씨' 하고 부르면 늙은 여자분까 지도 돌아봅니다. 다 착각하는 것 이지요.
우리는 잠깐 살고 가는 이 세상 에 왔다가 헛된 일을 추구하는 것 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 야 합니다.
두번 째는 충성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갈렙은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충 성하고 모세의 충성스러운 동지요 친구였습니다. 여호수아와도 동역 자로서 그를 변함없이 도와주었습 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충 성스러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 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불의하고 미 련한 자가 아니라 충성하는 자녀여 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손해 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는 존재 여야 합니다. 갈렙 곁에 있다가 손 해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 함도, 이삭도, 요셉도 그 주변 사람 이 유익을 얻게 했습니다. 우리도 나 때문에 피해를 받는 사람이 있 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설령 엄청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다비다는 옷을 만들어 가난한 이와 과부에게 옷을 주는 사람이었 습니다. 그 여자가 죽었을 때 모 든 과부가 와서 울었을 때 베드로 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 아 났다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도 고넬료처럼 기도하면서 구 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축복받은 삶은 다 그랬습니다. 주 예수님께 서 온 인류를 위해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고 오늘날 까지 풍성한 영육간의 영원한 은혜 를 주신 것처럼 우리도 주변의 사 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멸망 을 주려고 온 것이요, 주님이 오신 것은 풍성한 은혜를 주시려 오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변의 칭찬을 받 아야 합니다. 남편에서부터, 부인에 게부터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남 의 집 귀한 딸을 데려와서 잘해줘 야 합니다. 시집오자마자 얼굴에 기미끼게 하고 상처를 주고 해서는 안됩니다. 가슴 아프게 해주어서야 되겠습니까? 자기 주변에게는 잘하 면서 부모나 아내, 자녀에게는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갈렙은 무슨 일을 맡기든지 잘 합니다. 적은 일에는 적은 일대로, 큰 일은 큰 일대로 잘 했습니다.
미국인이 잘 사는 것을 보면 모 든 국민이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잘합니다. 그들이 어느 분야도 잘 감당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이 잘 사 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들은 자 기 일을 100프로 감당하는 것이 아 니라, 500프로를 감당합니다. 빈틈 이 없습니다. 남의 일까지 감당합 니다. 미국에는 고기를 잡아도 30 센티 이하는 잡지 못합니다. 사면 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적은 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관계 당국이 어디 있는 지는 모르 지만 감시를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그들은 고기를 잡으면 몇 센치 인지부터 먼저 재어봅니다. 왜? 나 라에서 철저히 감독하고 관리를 하 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라가 철 저히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지킵니다.
우리는 매일 인원이 부족하다고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철 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잠수정이 왔다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먼저 알았습니 다. 미국은 남의 나라의 일도 훤하 게 알고 있는데, 이처럼 자기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문 제입니다. 옆집 아저씨가 자고 갔 는데, 자고 갔는지 몰랐다고 말을 했다니 그것이 말이 됩니까. 아무 리 깊이 자도 그럴 수 있습니까? 강도를 놓쳐도 경찰이 지키고 있음 에도 인력을 총동원해도 잡지 못하 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잘못된 업소와 경찰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 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맡기셨으면 최고의 자녀로 만드셔야 합니다. 토마토를 가꾸십니까? 최고의 토마 토를 만드세요. 유대인은 오렌지 종류만 170종류를 만들어 세계 최 고 오렌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 다.
우리가 맡은 것에 성실함과 진 실함으로 최고의 것으로 해야 합니 다. 충성은 좌우로 치우침없이 끝 가지 진실하고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영과 욕심을 버리고 진실하게 하루를 살아도 그 렇게 거북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걸음 한걸음씩 가는 것 입니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 을 면치 못합니다. 우리는 너무 속 히 은혜 받고 속히 성취하는 것을 원합니다.
기독교는 한마디로 '무엇을 맡 기고 멀리 가 있다가 오는 것' 입 니다. 예수를 믿어 보면, 주님이 멀 리 계신 것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고 헌금을 하면서 주께서 멀리 계셔서 보고 계심으로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면 얼른 축복 을 받기를 바랍니다. 당장 뭐가 온 다. 당장 이루어진다. 이것이 문제 입니다. 이것에 시험이 들고 넘어 집니다. 당장 이루어 지는 것은 좋 은 것이 아닙니 다. 천 년을 바라 보면서 걷는 길이 좋은 길입니다. 축복의 길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길 입니다.
동화에 보면 호랑이가 옹기 장 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옹기 장사 는 옹기파다가 호랑이를 피할 길이 없어서 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호랑이가 아무래도 못 잡아 먹겠으 니까 독채 잡아 먹었습니다. 그러 니 옹기 장사가 독속에서 불을 붙 여서 담배를 피우고 창자에 불을 끄고 배가 고프니까 호랑이 살을 뜯어 먹고 했습니다. 일주일동안 다 뜯어 먹고 바깥으로 나왔습니 다. 옹기 장사는 호랑이 가죽을 팔 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무리 바빠도 어떻게 독채로 삼킵니 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두가지 현상이 아임에프 (IMF)로 인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사기꾼이 많이 날뜁니다. 그만 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다른 나라는 사기꾼이 날 뛰지 못하는데 사기꾼이 많다는 것 은 우리 국민의 생각이 건강치 못 하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일억 투자하여 일억을 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이 사 기를 당했다는데 가만히 보면 사기 당한 그 농민도 반은 사기꾼입니 다. 어떻게 일년 농사를 지어서 일 순간에 몇 억을 벌수 있습니까? 내 손이 열심히 일하는 대로 땀을 흘 린데도 먹어야지 일순간에 얻어서 된 것을 먹으려고 합니까?
이단도 한순간에 천국을 얻는다 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몰랐 던 것을 한순간에 깨닫는 것, 이것 이 이단입니다. 국가가 어렵고 위 기를 만나면 이단들이 판을 치고 사기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활동하 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지 말고 성실함으로 한걸음식 변함없 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남오녀 대 가족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데 간증 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전라남도 목포인데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 랐다고 합니다. 그 마을의 집사님 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무 수 단을 해도 고침을 못얻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으면 살수 있다고 해서 산골을 두개 넘어서 교회 다 니고 병고침을 얻고 그 다음에 성 실하게 교회를 다녔습니다. 많은 자녀를 낳았는데 그 시골 산골에서 낳은 자녀들을 다 대학졸업시켰습 니다. 한명을 대학시키는 것도 어 려운데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 았습니다. 우리가 성실함으로 인생 을 걸어가고 직장 생활 할 때, 인 생을 성실하게 걸어갈 때 좋은 날 이 올 줄 믿습니다.
옛날 생각으로 흥청 망청 살면 안됩니다.
옛날 경기도에서 목회할 때 교 회에 처녀 하나가 나왔습니다. 새 가정사의 근무하는 아가씨인데 고 등하교 졸업하고 주일학교 반사하 면서 방송통신대학 마쳤습니다. 열 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잘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골 전도사님과 결혼하였습니다. 그전 에는 울릉도 목회를 하다가 또 울 진 구리포에서 목회를 했는데 지금 은 큰 교회를 맡아서 인사하러 왔 습니다. '하나님게서는 진실하고 성 실함을 갖고 있는 이를 축복하셔서 큰 교회 사모를 만드셨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하루를 살 아도 무슨 일을 해도 성실되게 살 아서 영원히 축복받는 갈렙의 생활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