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다툼과 비방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다투지 말라
자기의 정욕을 좇아 사는 인생은 결국 자기를 망치는 원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정욕을 좇아 사는 인생에게는 싸움과 다툼이 나타납니다. 여기 싸움은 전쟁을 의미하며, 싸움은 인간끼리 싸움을 의미합니다. 싸움, 다툼, 싸우는, 살인, 다투고 싸우는도다. 전쟁 용어
세상은 전쟁과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싸움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자기 정욕입니다. 자기만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의 정욕에 사로잡힌 자, 자기만족에 빠진 자는 영적 간음하는 자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4절).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으로 오셨습니다. 그처럼 깊은 사랑의 교제를 갖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정욕이라는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는데 하나님께서 질투하시지 않겠습니까?
사랑은 질투입니다. 질투가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5절).
이렇게 하나님은 질투하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에게 그 사랑을 막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6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막는 것은 교만입니다. 여기 교만은 자기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이 교만은 언제든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하게 만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여기 겸손은 하나님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7-8상절).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자기를 맡기기 때문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마귀를 대적한 자입니다. ‘마귀를 대적 한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도망을 간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겸손은 즉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에게 순복한 겸손한 자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것이 마귀라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교만한 자에게는 달라붙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서는 도망을 칩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가장 무서워한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그리고 겸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시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겸손이며, 이런 자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한 자로 평생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회개해야 합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8절하).
교만한 자의 회개는 손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여기 ‘손’은 삶의 전부를 의미합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교만한 자의 회개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 마음을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두 마음은 한 발에 예배당에 한 발은 세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완전히 이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9절).
교만한 자의 회개는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것을 이제는 슬퍼하며 애통해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즐거움이며 기쁨입니까? 교만한 자의 회개는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10절).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누리며 삽시다. 그러므로 항상 이 사랑 앞에 겸손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우리의 것으로 만듭시다.
결국 다툼은 어디서 옵니까? 자신의 정욕입니다. 정욕과 싸워 승리하여 다툼이 없는 자로 삽시다.
2.비방하지 말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11절).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비방할 수 있는 그 형제나 자매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우리 육신의 형제가 다른 사람의 비방을 받으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그 형제나 자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물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어서 자기의 자녀를 삼으신 하나님께서 자식이 비방을 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런고로 비방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둘째,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율법은 형제를 비방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율법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형제를 비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약점을 보완해 주고, 부족함을 채워주며 서로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고로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자기의 삶 전체로 율법을 헐고 율법을 비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런 권리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로 형제의 비방은 하나님의 주권침해이기 때문입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12절).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만이 재판장이십니다.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찬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자신의 정욕에 노예가 되어 다투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피차 비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있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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