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기아대책에서 평양에 다녀와서 평양 전경~~봉수 교회
시 128편
계속적으로 성전에 올라가는 시를 새벽마다 보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고 하지만 성전에 올라가는 시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씀으로 들려왔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고 말하면서도 화평을 말하는 시, 해방의 기쁨, 긍휼을 바라는 시, 극적인 구원 등 의 말씀들을 시편의 말씀들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생 노 병 사 화 복 이 있는 것이 시편의 기자들을 통해 말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기는 과정이 시편을 통해 드러나고 있으며 그 극복함을 통해 위대한 신앙들을 보게 됩니다.
그 후에 오늘의 시편을 보게 되는 데 오늘 시편은 마침내 성전에 도착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과 같이 모든 과정의 신앙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분투하던 성도들이 성전에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오르는 과정을 쉽게 생각하지만 그 과정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때에 그러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전에는 자연히 놀러가는 것이 당연한 것 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신앙으로 성전 중심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자신의 감정의 갈등 속에서 성전을 멀리하던 사람들이 이젠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 성전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가기까지의 우리의 생활들 바꿔 말하면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그냥 쉽게 올라가지지 않으며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믿음 생활하는 데 신앙의 수준이 갑자기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해방을 맛보아야하고 긍휼을 힘입어야하고, 하나님이 극적으로 구원해주시는 그러한 일들을 경험한 후에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 결론적으로 128편에서는 성전에 올라간 후 받을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결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멀고도 험하고 때로는 힘들어도 그것을 다 겪은 뒤 올라가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합니까?
2절을 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수고한데로 먹는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다’라고 말합니다.
죄악의 결과 이 땅위에서는 우리가 수고한데로 땀 흘린데로 노동의 대가를 얻지 못하고 언제나 불공평한 소산만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의 죄의 결과는 3장에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는 저주가 사람에게 생겼고 땅이 가시 덤블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 땅으로 돌아간다.’라고 말씀합니다.(창 3:17-18)
이것은 곳 저주입니다.
그러나 이 저주가 풀리는 길은 다른 곳에 있음이 아니라 성전을 바라보는 것이고 성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성전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은 믿음을 잃지 않고 경주를 마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은 수고한데로 먹고 누리는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잃어버린 가정이 회복됩니다. 우리가 하는 아버지 학교 어머니학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세우신 그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이 본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정의 본질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정을 세우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있는 성도들의 가정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시대로부터 나누어지고 갈라진 가정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감으로 회복이 되어집니다.
3절에서는 단란한 가정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와 같고 감람나무 같은 아내와 자녀들 너무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나요 성전에 올라가고 믿음을 잃지 않고 경주를 마친 사람들이 이러한 축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태평성대의 복을 누리는 모습을 봅니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라고 말합니다.
정치적인 안정과 더불어 신령한 영적 축복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나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청종할 때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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