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막

스네어 2014. 4. 10. 11:09

성막강해 천국을 준비하며 사십니까?(그 밖의 성소)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성소는 성막 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거룩한 성소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따라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성소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습니다.

 

그 거룩한 성소를 다음과 같은 6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에덴동산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덴 전체가 천국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2. 성막

 

하나님은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이 가장 구체화된 것이 바로 '성막'을 통한 길입니다.

 

3. 성전

 

성막은 광야에서 처음 제작된 일시적인 성격의 '천막성소'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하면서부터 항구적인 성소(성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를 지나 다윗 때에 이르러 다윗이 항구적인 성소 즉 성전을 지으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그 사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솔로몬이 7년만에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 성전'입니다.

 

이 솔로몬 성전은 남 유다가 멸망하던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초토화됩니다.

이후 바사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을 허락했는데 그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지도자 스룹바벨에 의해 성전이 70년만에 재건됩니다.

이것이 바로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이 스룹바벨 성전도 다시 무너지게 되었는데 주전 약 40년경에 유대 지역의 권력을 장악한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전을 재건하면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성전 건축에 착수해 약 46년의 공사 끝에(2:20) 다시 성전을 재건하게 되는데 이 성전이 바로 '헤롯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헤롯 성전은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온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훼파됩니다(주후 70).

그래서 성전은 오늘날까지 완전히 사라진 상태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

 

성전이 사라져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총의 통로가 완전히 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헤롯 성전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기 전에 성소를 다른 측면으로 이미 제시하셨는데 그 성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성전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2:21).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참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건물에 우리 주님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5. 성도의 몸

하나님은 성전의 개념을 한 차원 더 확대시켰습니다.

그 개념은 바로 우리 성도의 몸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그렇다면 우리 몸을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게 다루어야 하겠습니까?

 

6. 하늘 성소(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성도의 몸이 성소이긴 하지만 곧 무너지는 성소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몸이라는 성소를 무너뜨리는 이유는 하늘 성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5:1)"

 

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최후의 영원한 성소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의 최후의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물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사도바울에게는 거룩한 야심, 아름다운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 야심이란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 후 항상 그런 거룩한 야심을 가지고 중단 없이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지 못한다면 스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명절 때 부모님한테 갈 때 어떤 아들은 부모님께 여러 가지를 준비해 가는데 어떤 아들은 한 가지의 선물도 준비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아무 말 하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 자녀가 살아있다는 것만도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녀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을 합니다.

 

하늘나라에 갈 때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하늘 나라에 가는데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이 빈손으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것 때문에 그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 스스로 죄송하고 아쉬운 맘이 들지 않을까요?

 

우리는 하늘을 나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그 고향에서 아버지께서 친히 내리실 면류관을 생각하며 열심히 사랑과 헌신이 넘치는 충성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천국은 누구의 것입니까? >

천국은 누구의 것일까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좋은 별장 지어놓고, 좋은 저택 지어놓고 사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의 가난함을 잃지 않기 위해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부자들은 스스로 가진 부 때문에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비극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하나님이 삶의 현장에서 사라진 부자가 되지 마십시오.

부자 되지 말라는 말은 돈을 벌지 말고 성공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성공해도 "나는 가난하다!"라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은혜에 매인 자가 되고 이 은혜에 감동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항상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물나도록 헌신하는 교인들에게 이 땅에서 특별한 보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섬기면서 은혜로 자기 것을 바치고 충성봉사 하지만 그러한 헌신에 대해 목사는 이 세상에서 보답을 해줄 길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저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나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상급이 기다릴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나님의 상급까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죽도록 충성하고 생명 내걸고 헌신한 사람과 교회에 심심하면 나오는 사람에게 어떻게 주어지는 영광이 같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정성과 눈물과 땀을 반드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분들이 되어 주어진 일생을 영생과 영광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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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은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9:11-14, 10:19-25

 

오늘 나누어 드린 인쇄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부터 제가 성막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왜 성막을 말씀드리느냐 하면 성막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바로 성막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왜 나오느냐? 목사가 교회에 나오는 어떤 정의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동기나 목적을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일찍부터 교회가 왜 중요하고 교회에 나와야 하는 이유를 바로 성막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막을 보면 바로 교회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성막을 알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예수를 아는 것이 교회를 아는 길이에요. 또 교회를 아는 길이 바로 예수님을 잘 믿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는 몇 가지 중요한 것 가운데 울타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100규빗과 50규빗, 가로, 세로, 100규빗과 50규빗의 울타리. 하나님은 이 성막 안에 거하십니다. 바로 이 울타리가 경계를 두고 있습니다. 울타리 밖은 세상입니다. 울타리 안은 예수 안입니다. 교회 안인 것입니다. 울타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성도를 보호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보호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호합니다. 지키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우리의 일생을 지켜줍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27편이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이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드시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시고 교회는 울타리 역할을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도록 주님은 교회를, 울타리를 쳐주시고 또 주님은 우리의 울타리로 우리의 생명과 삶을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지난주에 드렸던 말씀이 문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문은 동쪽에 문이 나 있다. 이런 말씀도 드렸고 또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성소가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어디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가 바라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고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를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못 나갑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나아가느냐? 문이 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해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아무리 잘 드려도 마지막에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만이 하나님께 전달이 되는 것이지 내 기도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오래해도 예수가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 역할을 합니다. 그가 나의 의가 되십니다. 나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는 의가 없습니다. 나는 공로 없습니다. 나는 능력, 거룩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이 자격을 누가 주느냐 아들이 주는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아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아들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은 놀라운 것이 다른 것과 달라서 문을 천으로 짰습니다. 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로 문을 짭니다. 25, 26, 27장을 주-욱 읽어보면 출애굽기 전체에 청색, 자색, 홍색이라는 말이 수십번, 수백번 나옵니다. 계속해서 나옵니다. 따라해 보세요. 청색, 자색, 홍색실 이것만 아닙니다. 성막을 덮는, 오늘 나누어 준, 그림에 제1덮개라고 하는 성막. 덮개도 청색, 자색, 홍색실입니다. 항상 청색, 자색, 홍색실로 실을 짜서 성막을 덮고 성전에 기구들을 만들어서 성전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청색은 무엇을 말하느냐. 들어가는 출입구의 문을 말합니다. 10m 되는 이 문을 무엇으로 짜느냐? 청색, 자색, 홍색실입니다. 청색은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의 문은 생명의 문이라는 거예요. 주님을 통하여 들어가면 생명을 얻는다라는 거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을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생명, 그 생명이 보호도 받고 그 생명이 주님의 품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어디에서나 살수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이 마찬가지인 것처럼 우리 인간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문 안에서 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속에서 이 생명이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병아리는 어미가 품어 주듯이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이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얻고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지금 세계에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 생명은 생명이지만은 짐승만도 못합니다. 땅에 있는 흙도 주워먹고, 사람이 풍성한 생명을 얻지 못할 때 인간은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생명을 주시느냐? 영광스러운 생명.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무슨 색깔이냐? 자색입니다. 자색은 무엇을 말하느냐? 왕을 의미합니다. 통치자가 옛날에 입었던 옷은 자색입니다. 임금은 자주 옷감을 입었습니다. 성경에도 부자가 날마다 자색 옷을 입었다. 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처럼 최고의 영광은 자주옷, 자색 옷입니다. 이 문은 무슨 문입니까? 왕의 문입니다. 왕의 왕이 되시는 슈퍼스타이신 온 인류의 바람과 바다와 자연과 하늘과 땅과 마귀와 우리의 생명을 모두 다스리시는 왕의 왕이신 문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면 왕에게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면 왕의 영광과 왕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조금 전에도 찬송 부르셨지요. 전능왕 오셔서 우리를 찬송케 하옵소서. 영광과 권능의 성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전능왕 오셔서

 

교회에 나오는 것은 왕에게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 문은 왕의 문을 우리가 통과하는 것입니다. 왕의 사랑과 왕의 축복과 왕의 은혜를 받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한 자도 아무리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문을 들어서게 되면 인간은 가치 있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옷을 갈아입을 때 그가 주시는, 왕의 자주 옷을 입을 때에 우리 인간에게는 축복이요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에게로 나아가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냥은 못 나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문을 통과해야 돼요.

 

홍색은 무엇을 말하느냐? 십자가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이 안에서 날마다 양의 피를, 양을 잡아 기독교는 보혈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문제를 절을 많이 하고 빌어서 사람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나님의 보혈의 은혜가 내리면서 그 보혈로 우리를 정결케 하고 보혈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워 주시고 그 보혈의 은총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눈보다 더 희게 양털보다 더 희게 씻어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목적은 먹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세속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정결하게 되는 기쁨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원래의 모습에 우리 인간의 영광과 가치와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보혈의 문입니다. 피 흘리신 문입니다. 이 교회는 어떤 문으로 들어오느냐? 교회는 보혈의 문으로 들어와서 보혈의 은혜를 받게 되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청색, 자색, 홍색실입니다. 덮는 것도 그렇고 항상 청색, 자색, 홍색실을 말합니다.

 

다시 한번 물어 봅시다.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고 성막 구약 전체를 이루고 있는 성막의 뜻을 알아야 될 것 아니에요. 무슨 색깔이요? 청색, 자색, 홍색. 청색은요? 생명. 무슨 생명? 영원히 사는 생명. 생명을 주시고 보호하시고, 생명을 지키고 풍성한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이다. 교회다. 두 번째는요? 자색. 자색은 왕을 의미한다. 왕의 영광, 왕의 권세, 왕의 축복,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다라는 거예요. 교회는 왕의 왕을 만나러 오는 거예요. 왕의 왕께 경배 드리고 왕의 왕에 은혜를 받으려고 오는 곳이 교회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초청자에 의해서 우리 인간은 영광스럽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홍색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색은 십자가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결케 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이 문을 통과하여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저주는 이 문 밖에 이 문을 떠나는 것입니다. 탕자가 이 문을 벗어날 때 우리 인간에게는 모든 고역과 고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그렇습니다. 모든 민족, 모든 국가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문을 들어가는 민족은 어느 민족이든지 거룩하고 왕의 축복, 보혈의 은총이 그 나라에 임하는데 교회를 떠나는 민족은 다 하나같이 거지가 되고 부끄러움, 환란, 우리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저주는 부모 못 만난 것 아닙니다. 전쟁이 아닙니다. 가난이 아닙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질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는 것입니다. 문을 떠나는 것, 예수를 떠나는 것, 교회를 떠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우리가 멀리 볼 필요가 뭐 있습니까? 공산주의 국가들, 체코는 얼마나 잘 살았습니까? 세계 5대 철강국이요, 그 아름다움, 그 번영. 세계적인 그 문화의 도시. 유명한 음악가. 유명한 과학자, 유명한 미술가가 한없이 쏟아져 나오던 세계적인 도시, 세계적인 국가가 거지가 되어 버렸어요. 루마니아, 불가리아. 소련, 동독, 폴란드, 헝가리,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오십년 가도 80년 전의 체코, 헝가리의 수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백년이 가도 소련의 전의 그 영광을 우리가 이 속도로 계속 가도 그 정도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놀랍습니다. 너무너무 놀라운 도시들이 유령의 도시가 되고 폐허의 도시가 되고 거지들이 다 되어버린 이 저주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 왔습니다. 날마다 차고 넘치던 교회가 영적인 문이 닫힐 때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어려움도 영적인 빈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복 받으면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머리를 드는 것입니다. 주의 품을 떠나 이 세상에 무엇이 있는 것에 대한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넓은 세상에 마음껏 놀고 마시고 내 마음껏 살고싶은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미의 A, B, C는 어디인지 아십니까?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입니다. 이 세 나라가 얼마나 지금 어려워지고 있습니까?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파리입니다. 저도 그곳에 집회를 여러 번 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곳이 지금 거지로 득실거리는, 의사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택시운전을 하며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운, 불행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다 놔두고 북한을 보십시오. 북한이 교회가 얼마나 부흥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이 얼마나 번영했습니까? 생명을 주고, 왕의 영광을 주고, 우리가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이 거룩한 땅, 동방의 예루살렘이 평양입니다. 평안북도에 있는 교회만 남한 전체 교회와 맞먹었다고 합니다. 한 개 도의 교회가 남한 땅 8개 도와 시의 교회를 합쳐도 못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저 도시들 은혜가 충만한 북한 땅. 살기 좋은 저 땅. 교회의 문을 닫고 나니 유령의 도시, 전설의 고향. 심히 빈궁하고 다 죽어 가는 굶어죽는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탈북자들이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고 생명을 걸고 지금 하루하루 숨어서 살아가는 이 비극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정치, 아무리 잘해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안됩니다. 교회를 떠나면 안됩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오, 우주 만물의 창조자예요. 인간이 어디를 가야 돼요. 어디에 가서 만족하려고 하십니까? 이 세상 어디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안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참 기쁨은 주안에 있습니다. 어제 목사님 한 분과 식사를 하는데 롯데 백화점 사장님이 오셨어요. 그 분이 장로님이에요. 목사님이 소개하기를 우리 장로님은 새벽기도 한번도 안 빠진다는 거예요. 롯데를 하면서도 새벽기도 안 빠지고 전도를 얼마나 하는지, 부부가 매 주일 2명씩 전도한다 하시는 거예요. 교회, 예수 안에 전도하고 예배드리고 새벽기도 나오고 이것이 시시한 것입니까? 성도의, 인간의 기쁨은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 뭐 저렇게 답답하게 사냐? 답답한 것은 예수밖에 있어요? 답답한 교인 나와봐요? 교인은 답답하지 않습니다. 늘 기쁘게 살아갑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없이 즐겁고 주 성령의 위로함이 마음속에 차도다. 천국음악 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 말씀, 끊임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즐겁습니다. 가는 길이 잘 열려집니다. 영원히 우리의 길이 열려질 줄 믿습니다. 며칠 전에 만난 장로님은 5형제가 다 장로님이에요. 부모님들도 잘 믿으셨고 한 분은 한국가스공사 사장, 국회의원도 몇 번 하시고 김명규 장로님, 동생은 김승규 장로님, 검찰로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르시고 식사를 하는데 예수 믿고 믿음 생활하면서 검찰에 들어가셔서 술 한잔 안하고 검찰에 폭탄주가 말도 못한대요.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같이 놀고, 놀아주는 것 얻어먹다가 다 나중에 걸려들고 세상에 혼자 잘난 줄 알고 높은 사람 만나고 다 어려움이 드니까 자기 살려고 하지. 누가 도와주는 사람 어디 없고요 마지막까지 잘되는 분이 누구냐? 새벽기도 다니고 성경보고 하나님 말씀 지키니 가정에 평안이 있고 참 마음에 평안이 있고. 술이 마음에 평안까지 주나요? 내 영혼에 평안과 기쁨을 주느냐 말이에요. 기쁨이 어디에 있어요? 예수 안에 있는 거예요. 주안에 있는 거예요.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에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도 없고 나도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예배를 참석, 기도를 귀히 여기리라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귀히 여기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이 문을 귀히 여기십시오. 이 문안에 사십시오. 문안에서 밖의 유혹을 받지 마십시오. 밖을 내다보지 마세요. 제 이야기를 해서 참 미안한데요,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오면서 밖에 재미가 없고 밖의 유혹을 안 받았어요. 친구들이 많이 밖으로 떠나가도.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 채 주님 곁을 떠나갔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였고 소망이었소내가 머뭇거릴 때는 뒤를 받쳐 주어야 해요. 난 예수가 좋아요 예수님이 좋아요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좋아하면서 문안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얼마나 돌아다니다가 많은 불행, 파멸을 당한 사람들은 100%가 돌아다니다가 온 거예요. 여기저기 되나 안되나 다 먹고 성도는 먹을 것 하나님이 정해 주셨어요. 먹지 말라는 것 안 먹어도 더 건강하고 더 좋고. 할렐루야. 그것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 그런 것 먹고 어떻게 사냐? 여러분 교인이 먹는 것 더 많아요. 입맛 좋아서 너무 잘 먹고 소화 잘 되고요 할렐루야. 우리가 그런 것, 값진 것, 술 안 먹어도 훨씬 좋아요. 여러분 짐승들 보십시오. 동물들 풀 뜯어먹는 동물들, 힘도 있고 잘 달리고요. 사실 풀에 무슨 영양이 있냐? 말 달리는 것 보십시오. 말이 개 잡아먹는 것 봤어요? 그래도 얼마나 잘 달리는지. , , 기린, 코끼리, 코끼리 그 힘이 짐승 잡아먹고 생겨요? 그냥 보잘것없는 하찮은 풀 뜯어먹는데 얼마나 힘이 좋아요. 제일 힘이 세다는 사자나 호랑이 300m를 못 뜁니다. 사슴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병든 것이나 잡아먹지 못 따라가요. 왜 그래요? 풀 뜯어먹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힘없는 것 같지만은 이 세상 끝날까지 성경에 보면 새 힘을 주시고 독수리 같은 힘을 주시고 늘 건강하게 하시고 갑절로 더 건강하고 여러분 쓸데없는 이상한 것, 그런 것 먹지말고, 밥 잘 먹고, 예수 잘 믿으면 건강하게 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성경은 복음이에요. 예수 믿으면 잘 되는 거예요. 이 문으로 들어오면 저절로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교회만 나간다고 복이 떨어지냐? 떨어져요.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야. 쏟아져요. 쏟아져. 교회 나와도 안 되는 이유가 뭐냐? 밖을 내다보고 한발은 교회 안에, 한발은 밖에 다 이런 우리의 생활 때문에 밖을 깨끗하게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밖의 성격들 교회 안에 와서 다 부리고요 밖의 습관들 다 가지고 오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 원망이나 하고 불평이나 하고 그래가지고 될 리가 없지요. 안에 오면 안에 말을 하고 안의 기쁨을 안의 삶을 안에 있는 은혜를 적극적으로 누릴 생각을 안하고 밖을 기웃거리고 밖을 돌아다니니까 다치고 시험 드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서 영원히 주안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중국의 여섯나라를 통일한 진시황이 새 정부의 법을 만들어서 반포하는데 그것을 만든 자가 상항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이 분은 국민이 나라를 지도자를 믿어주어야 하는데 새 정부를 100% 신뢰해 주어야 하는데 국민의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제안을 했어요. 남문에 석자 남짓한 나무를 세워놓고 누구든지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은 금을 10근을 주겠다. 했는데 모두가 믿지를 않아요. 저런 거짓말이 어디 있느냐. 말도 아니라고 모두가 말을 안 듣는 거예요. 그래서 나라에서 새로 붙였어요. 이번에는 이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는 금 50근을 주겠다. 그런데 순진한 국민 한 사람이 그것을 옮겼더니만 금 50근을 나라로부터 얻으면서 그 말이 퍼지면서 온 나라가 나라를 신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된 거예요.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만 나간다고 되느냐? 열심히만 나와봐요. 기적이 일어나요. 하나님께서 50근을 주세요. 이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은 기독교는 복음이에요. 제 아무리 못된 못쓰는 인간도 교회에 나오면 인간 되는 정도가 아니야.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면 땅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도 안돼요. 파괴돼요. 공산주의가 게을러지고 비판하고 일하기 싫어하고 인격을 망가뜨린 것이 더 큰 손해예요.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시고 삶을 회복하시고 이 문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내려 주시는 줄 믿습니다.

 

문으로 바로 들어가면 뭐가 있느냐? 그림을 보십시오. 첫째가 번제단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지요. 번제단은 양을 잡는 곳이에요. 예수님이 우리의 번제단이 되셔서 구약의 성소는 불완전한 거예요. 모든 것이 불완전한 거예요. 여기는 짐승을 잡았는데 신약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제물이 되심으로 짐승 잡는 것을 다 폐지하신 거예요. 이 구약의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가고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진 사람만 들어가는데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이 문을 열므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세계 누구든지 들어가는 믿음의 문이 된 줄 믿습니다. 구약과 다른 거예요. 구약에는 휘장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 휘장을 제거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직접 다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번제단을 지나서 물두멍이 있습니다. 제단을 쌓고 성소 안에 들어갈 때 문을 통과할 때 물두멍에서 누구든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손발을 안 씻으면 못 들어가게 하셨어요. 손발을 씻는 곳이에요. 양의 피로 죄를 사해도 손발은 씻어야 그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것은 교회를 의미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믿어 영영 죽을 죄에서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이 세상에 나아가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발이 더러워진다라는 거예요. 밖에 잠깐만 나가도 죄악 세상에 마음이 더러워지고 양심을 속일 때도 있고 부모에게 형제에게 잘못할 때도 있는 거예요. 이런 모든 죄를 교회는 예배드릴 때마다 손발을 씻으라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마음을 씻고 몸을 씻고 손발을 씻는 곳이 교회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13장에도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지요. 베드로의 발을 씻기니까 주님 제 발을 어떻게 씻기시나이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발 씻으러 왔다. 너하고 나는 발을 씻어야만이 관계가 있다. 구속의 은혜를 전혀 모르고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러면 내가 옷을 벗을 테니 다 씻겨 주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한번 목욕한 사람은 손발만 씻으면 되느니라. 이것이 뭐예요? 예수의 보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목욕을 안 해도 되지만은 손발은 늘 더러워지니까 자주 씻으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약하여 늘 넘어질 때 우리는 교회에 와서 빨리 회개하고 잘못된 죄에서 돌아서고 정결하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뭐가 있느냐? 오늘 나누어드린 휘장이 있습니다.

뒷면을 보세요. 덮개, 오늘은 이것을 배우셔야 돼요. 다음 주일은 성소 안을 말씀드리고. 덮개가 있는데 성소를 무엇으로 덮느냐 하면 나무로 안 덮고 토기로 안 덮고 전부 천으로 덮는 거예요. 4개의 천으로 덮습니다. 이 네 개의 천이 다 귀한 거예요. 불빛이 하나도 못 들어가게 4겹으로 덮는데 첫째 덮개가 세마포 덮개입니다. 따라하세요. 세마포 덮개, 세마포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짜서 또 이것을 덮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청색, 자색, 홍색실만 알면 얼마나 성경 전체를 아는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청색은 뭐로 덮어요? 생명. 홍색은 보혈입니다. 자색은 왕. 이것은 문도 되지만 덮기도 한다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덮어 주시고 왕의 영광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고 덮는 일도 하는 거예요. 보혈의 은혜. 교회는 덮는 것입니다. 덮는 종교예요. 허물을 여러분의 공로로 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은혜로 덮는 거예요. 늘 덮어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 우리 마음의 상처를 덮어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늘 덮어주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두 번째는 염소털 덮개로 덮는 거예요. 큰 성막을 20m정도를 짜서 덮는 거예요. 이어가지구 두 번째가 염소털, 하얀 염소털, 흰 것이 무엇이에요? 성결을 의미하고 정결함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우리를 덮는다라는 뜻이 되는 거예요.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로 덮어주세요.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덮어주시는 거예요. 염소털은 성결이다.

 

세 번째 덮개는 수양가죽입니다.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이라 해서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의 보혈로 덮는 거예요. 항상 어디든지 성막, 피가 없으면 피에 연결이 안되면 안 되는 거예요. 항상 보혈로 연결이 되어야 돼요. 덮는 것도 문도 피요 문안에 들어가도 피요 전부가 피예요. 주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보혈의 피가 교회를 덮고 있고 성막을 덮고 있는 거예요.

 

네 번째가 해달가죽, 해달은 물개, 물개가죽으로 덮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의 삶을 말하는 거예요. 가난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제자들과 함께 궁핍한 자를 돌보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주는 거예요. 기독교는 어떠한가 하면 안에는 너무너무 좋은 것으로 가득 차고 겉은 제일 나쁜 초라한, 보잘 것 없는, 색깔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이런 색깔로 덮는 거예요. 세상은 안에는 별것 없고 겉을 제일 좋은 것으로 덮는데 기독교는 겉은 해달의 가죽으로 덮는 거예요.

 

저를 잘 보세요. 정리를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축복을 받을수록 겉을 드러내지 않고 잘 살수록 못 사는 것같이 보이고 높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 앞에 교회 생활은 사람이 볼 때 마지막 덮개를 언제나 해달의 가죽으로 덮어야 그 교인이 좋은 교인이 되고 하나님 앞에 사랑 받는 성도가 되는 거예요. 안에는 이렇게 값진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시고 할렐루야. 예수님이 옷 못입으셨지만 온 인류가 그에게 경배하듯이 오늘의 교회도 너무 화려하게 사람을 만족하게 하려고 겉을 화려하게 하면 안돼요. 검소하게, 저희 교회도 강대상을 멋지게 꾸미려고 파이프 오르간 멋지게 세우고, 황금으로 앞을 꾸미려고 하다가 다 안 했어요. 강대상도 보잘 것 없는 통나무로 우리가 짰어요. 왜 그러냐? 세상과 다른 거예요. 기독교는 스텐그라스와 같아요. 안에서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밖에서 보세요. 그냥 보잘 것 없는 먼지 낀 유리로밖에 안 보여요. 형편없는 거예요. 유럽에 가서 스테인그라스 잘해 놓은 것 보세요. 안에서 보면 기절할 정도구요 밖에서 보면 때가 낀 것 같이 전설의 고향같구 한심한 못쓰는 것 같아 보여요. 그래서 성막 안에는 다음 주일에 보면 다 금으로 장식을 하는데 기독교는 안은 온갖 좋은 것으로 채워지고 기독교는 안의 종교예요. 안에는 기쁨이 있고 그래서 고전 6장에 겉으로 보기에는 기쁨이 없는 것 같은데 안에는 천국이 성도예요. 할렐루야. 남 보기에는 뭐 저렇게 사냐? 싶은데 안으로는 온갖 보화를 다 가진 것이 성도의 삶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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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불을 켜라 출 27:

 

오늘은 성전 좌편에 일곱 개로 되어 있는 이 성전 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쪽에 우측에는 진설병이 있고 좌측에는 이 등대, 일곱 개로 만들어 놓은 등대가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이 등대 하나를 구해 가지고 왔습니다. 성서적으로 배경을 잘 갖추어서 구약성경안에서 사용되었던 등대가 바로 이런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등대는 금으로 만들게 했습니다. 두들겨서 금으로 만들게 했고, 이 등대의 특징은 한 줄기를 가지고 여섯 개의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대로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삶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하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의 등을 켤 때에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되는 기름은 감람기름입니다. 감람기름을 영원히 그치지 않고 공급해서 불을 켜게 하셨습니다.

 

이미 들은 대로 성전 안은 캄캄합니다. 덮개를 네 개나 덮었으니까요. 첫째 덮개는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짠 세마포로 덮었구요. 그 다음에는 흰 양털로 만든 것으로 두 번째를 덮고, 세 번째는 양 가죽, 붉은 물을 들인 수양의 가죽을 덮고, 마지막 네 번째는 뭐라고 했지요? 해달의 가죽으로 네 번째를 덮습니다. 한 덮개만 덮어도 캄캄하지요? 커튼을 하나만 쳐도 캄캄하지요?

 

제가 어렸을 때에 필름을 가지고 인화를 해보고 현상을 해 본 일이 있는데 이불을 덮고 들어가서 해 보면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거기서 약품을 가지고 인화하고 현상을 했습니다. 캄캄한 이 세상의 빛이 들어 올 수 없는 것이 바로 교회요, 세상의 빛으로 비추는 것이 아닌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 또 오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인데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은 이 세상의 빛으로 비출 수가 없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거룩한 감람유로 만든 이 것만이 비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인위적인 것으로 밝게 아름답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원히 하나님의 빛으로 신령한 거룩한 빛으로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빛의 종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1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라고 바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에 하나님이 제일 처음 하신 일이 빛을 만드시고 큰 빛을 만들어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빛을 만들어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요한 일서 일장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빛이 비추어진 이 땅위에 어둠이 없는 이 땅위에 아담 이브가 범죄함으로 죄의 어둠이 찾아오고 사망과 저주와 멸망과 불행에 어둠이 이 땅을 덮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불, 하나님이 주신 이 인간과 모두에게 주신 이 불을 아담과 이브가 범죄함으로 그 불을 꺼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심령에 우리 삶이 거룩한 불은 죄를 지으면 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의 행복의 불을 끄는 것이 가난이 아닙니다. 질병도 아닙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죄가 우리의 아름다운 행복의 불을 끄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꺼 버린 이 불, 이 캄캄한 이 땅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이 땅에 불을 켜 주시려고... 아담이 꺼 버린 불을 켜기 위하여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이사야서 9장에도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에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도다.'' 오늘 이 땅에 빛이 비추어 졌습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새벽에 그 별 빛을 보고 동방박사들이 와서 경배하고 양치던 목자들이 와서 경배하던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라고 말했고 또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보고 참 빛이라고 그는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어두운 이 세상 길에 죄악의 캄캄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빛을 다시 비추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오늘 찬송가에 부른 대로 ''온 세상이 캄캄하여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계 빛이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취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에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맘이 어두워도 그 죄악을 씻는 날에는 그 눈이 밝아지네.''

 

온 세상이 캄캄한 이 땅위에 주님은 빛으로 오셨어요.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는 능력이 없어요.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빛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의 빛을 내어쫓으신 분이세요. 그래서 어둠이 물러간다라는 거예요. 모든 어두움이 어두운 마음, 어두운 생활, 어두운 무지와 모든 어두움의 세력은 예수 앞에서는 다 물러갈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위에 어두움의 세력, 원수 마귀를 내어쫓으시고 멸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멸하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셨어요.

 

그 다음에 누가 오셨느냐? 성령님께서 오셨어요. 성령님이 하신 일은 뭐예요? 우리의 심령에 오셔서 심령에 불을 켜는 일을 하시는 거에요. 성령은 내 안으로 오시는 거예요. 주님은 우리 안에 오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온 땅에 온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셨고 성령은 내 안에 오셔서 어두운 내 심령을 환하게 밝게 하기 위하여 성령이 오신 거에요.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58절에서 14절 까지 크게 한 번 읽겠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너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너희는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예수 없는 사람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어느 나라나 어느 문화나 다 어두움입니다. 예수 믿지 않았던 로마의 시대가 어두움이었습니다. 굉장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어둡습니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어두워도'' 마음이 어둡습니다. 우리나라 임금들 보십시오. 임금들이 연속극에 나온 것을 보면 웃는 것을 보지를 못합니다. 근심들... 괴로워 합니다. 답답해 합니다.

 

많은 사람이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있으면 밝게 살아가는 줄 아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밝기 전에는 어디 살아도 어둡습니다. 마음이 밝은 사람은 어디가도 밝게 살아갑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있습니다. 성령의 불, 빛이 비추어 지면 어디에 가든지 은총 입어 주의 성령이 내 안에 불을 켜 주시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기뻐함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없는 곳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로마가 기독교가 들어가기 전에는 어땠습니까? 로마의 황제들, 네로라든지 도미시안이라든지 그 죽은 역사를 보십시오. 네로의 어머니는 남편을 죽이고 네로에게 권력을 주었습니다. 네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네로는 어머니를 죽이고 로마를 불지르고 나중에 사약을 먹었습니다. 밑에 사람들도 끊임없이 이렇게 내려갑니다. 아들을 죽이든지 아버지가 죽이든지 또 신약에 나오는 헤롯도 보십시오. 그 아들 두 형제를 아버지가 죽이지 않습니까? 성령의 불 빛, 성령이 우리 안에 오기 전에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사회의 병은 마음의 병입니다. 오늘 우리의 국회의사당 위에 성령의 불이 비추어야 하고 우리나라 정치에 성령의 불이 가기 전에는 이 민족의 병을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힘있게 능력 있게 합니다. 빛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빛은 자유입니다. 생명입니다. 빛은 우리의 힘입니다. 빛은 우리의 평화입니다. 기쁨입니다. 소망입니다. 빛은 우리를 발전하게 합니다. 빛은 우리의 모든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이 세상의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빛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를 향하여 비출 때 참 자유함이요, 기쁨이요, 생명이요, 발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너무너무 꼭 먹소 싶었던 것이 세 가지가 있어요. 문어, 유과, 곶감 이 세가지를 그렇게 먹고 싶었어요. 왜냐면 그 때는 잔치를 하면요, 문어 다리 하나로 온 잔치를 다 하니까 요만큼 잘라주는 거예요. 그래서 살살하다보면 없어져요. 곶감하나를 열두 조각으로 잘라주니까요. 언제 한 번 곶감 하나를 먹을 때가 오나 했어요. 유과를 어디 많이 주나요? 또 저는 가난하니까 갖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 후레쉬를 가지고 싶었어요. 이것을 가지고 있는 분이 많지를 않았어요. 한 마을에도 많지를 않았어요. 밖에 나가면 온 집안이 다 어두우니까 불만 끄면 밖에 화장실에 갈 때에 터덜터덜해서 가서요. 손으로 다리 놓는 곳이 어딘지 몰라서 더듬어서 놓으니까요. 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몰라요.

 

그 후레쉬만 비추면 아는데요. 사람이 빛이 있다, 불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몰라요. 그 후레쉬만 비추면 다 아는데요. 여기저기 비추기도 하고요. 불이 없으니까 보이는 것이 있어야 지요. 그래서 방안에도 요강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보이는 것이 뭐 있어야지요. 불이 있으면 딱 비추면 간단하지요. 그런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지요. 그래서 온 식구들이 다 볼일을 보니까요. 그래서 우선 손을 넣어서 높이가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재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볼일을 보면서도 손으로 재어 보고요. 그래서 후레쉬만 있으면 너무너무 좋은데 후레쉬가 없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손에 후레쉬만 있으면 밝게 살아갈 수 있듯이 이 세상을 어디에가서 무엇을 할 지라도 예수의 성령의 불빛이 내 안에 있으면 나는 어디에 가도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어떤 시험도 문제가 보이는데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이 세상이 어두워서 캄캄해서 몰라서 그렇지요. 성령의 불빛이 내 안에 비추어 지면 다 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잘못된 삶을 내어쫓습니다. 빛의 역할이 바로 그겁니다. 내가 하나하나 잘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내 안에 항상 비추어 주심으로 어두움이 우리를 지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지배하는 자의 삶과 빛이 지배하는 자의 삶과 생각과 생이 다릅니다. 예루살렘에 제가 가서 우리 교회에서도 몇 번 설교하신 고세진 박사님, 그 분은 우리 여기에 정진경 목사님께서 학장으로 계셨던 서울신학대학 출신이예요. 고박사님은 한국 사람 최초로 성서 고고학으로 박사를 받은 분이 이 분 밖에는 없습니다.

 

, 한국교회가 아껴야 하고요. 참 귀한 분입니다. 또 예루살렘 대학 총장까지 되어서 한국 사람으로는 여간한 축복이 아닙니다. 이 분이 여기에 대학을 다닐 때에 자기를 가르쳐 주시던 영어 스승인데 미국 분입니다. 한국에 오셔서 KBS도 아침에 영어 강좌를 만들어서 전 국민들에게 영어 전 국민들에게 5, 10분씩 가르쳐주게 되었습니다. 학생인데도 교수님을 얼마나 설득해서요. 밤낮으로 구애를 해서요. 그래서 결국 학교에서는 짤립니다. 교수가 제자랑 그렇다고 해서요. 그래서 짤렸지만은 이 고 박사님이 결심이 대단하니까요. 내가 박사부인, 교수부인을 맞이하게 될려면 본인이 또 공부해야 하니까 시카고 대학에서 명문학교에서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20년 동안 교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되었는데 문제가 뭐냐면 자녀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오셔 가지고 입양을 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자녀가 없으면 너무 오래 노력하지 말고 그대로 봉사하던지 꼭 갖고 싶으면 입양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입양을 하는데 여러 아이들 가운데 그렇게 좋은 아이들만 내어놓는데요. 똑똑하고 공부잘하고 인물좋고 건강하고 다 합격한 그런 아이들, 하나의 상품이예요. 내어놓는데요. 이 고목사님이 얘들 이렇게 좋은 아이들 밖에 없냐고 하니까 여기 아주 불쌍한 애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태어났는데 10달도 지나지 않은 아이인데 심장이 움직이지를 않는 심장판막으로 못쓰는 아이가 거기 안에 있더래요. 근데 그 아이를 데려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주니까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가지고요. 그래서 안에 빛이 있는 분하고 겉에 이 세상에 빛이 있는 안이 캄캄한 사람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생각이 전혀 달라요.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 갔습니다. 날마다 기도해주고 사랑해 주고 10달짜리를 데려가니 갓난아이잖아요. 둘 내외분이 돌보고 기도해주었어요. 옳지 않으니 얼마나 힘들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잘 크는 거 있잖아요. 3살이 되어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아이가 참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분들이 얘가 유대나라는 그런게 있대요. 6살이 되면 천재들만 모이는 테스트를 하는데 10, 13살 테스트를 하는데 이래서 거기에 세계적인 천재들이 유대인이니까요. 얘가 아무래도 보통아이가 아니라서 테스트를 해 보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6살 아이들만 모여서 세계적인 천재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테스트를 했는데 천재가 아니고 천재 중에 천재라는 거예요.

 

6살 짜리는 안 맞으니까 10살 짜리 있는데 가서 테스트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얘가 10살짜리 애들하고 맞먹는 거예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바이올린을 가르치는데 이스라엘에서 최고로 유명한 교수가 가르치는 데요. 무료로 가르친데요. 그래서 얘가 6살에 그 예루살렘 오케스트라하고 정기 협연을 하고요, 연주를 하고요. 금년에 7살인데 돈을 얼마나 벌어오는지요. 안죽고 잘 살고 있다는 얘기예요.

 

자기가 이런 것은 생각 안하고 데려온 거예요. 얘 덕을 보려고 데려온 게 아니예요. 얘가 와서 돈 벌어 주려고 한 게 아니예요. 사람은 다 빛이 없는 분은 마음에 빛이 없는 분은 덕을 볼 사람을 찾아가고 좋은 것 찾아가고 집을 지어도 이태리 카펫에다가 이태리 응접셋에다가 프랑스제 상데리 갖다 놓고요. 독일제 자동차 타고요. 빛이 없을 수로 그런 것을 찾아가요. 빛이 없는 사람은 자꾸 밝은 것을 찾아가요. 마음에 빛이 있는 분은 낮은 곳을 찾아가고 봉사할 곳을 찾아가고 어두움을 찾아가고...

 

왜 아래에 빛이 있으니까요. 어두운 가운데 가도 빛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빛 가운데로 자꾸 찾아가는데도 빛 가운데도 불만을 갖는 거예요. 여기가슴이 불이 없으니까요. 어디가도 불만이에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아졌지만은 다 불만이예요. ? 문제가 어디에 있어요? 이 안이 어둡기 때문이예요. 우리의 심령은 영원히 영원히 인간의 힘으로는 이 불을 켤 수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잘 살아도 마음이 밝은 것은 아닙니다. 제 아무리 출세를 해도 제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천하의 없는 것을 손에 다 가져도 우리가 밝게 살아갈 수 없숩니다.

 

마린린 먼로를 보십시오. 재산 수백억을 가지고 있고 손가락에 100억짜리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어도 그는 자살을 해서 죽었습니다. ? 마음이 어두운 것을 어떻게 해요. 마음이 어두운 것을요. 주의 성령만이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우리 마음의 불을 켜 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불입니다. 성령의 불이 이 교회에 켜져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켜져 있는 사람은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진리를 찾아가게 되어져 있고 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누가 무슨 알아주는 인기 있는 그런 길 보다는 세상은 몰라주어도 선한 일에 힘쓰고 하나님 기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줄로 믿습니다.

 

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옵니까? 기도원에는 왜 갑니까? 일천번재는 왜 쌓습니까? 불은 하나님이 주시지만은 기름은 내가 대어야 합니다. 불을 너가 켜라고 말하지 않고 기름은 너가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했어요. 기름은 내가 늘 공급해야 해요. 하나님의 불이 늘 켜져 있게 하려면 내가 늘 기름을 공급해야 해요.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기름이 떨어질때가 많아요. 세상을 사랑하다가 기름이 떨어질 때가 많아요. 기름이 떨어지면 어두움이 나를 바로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사도 될 수 없어요. 목사도 별 수 없어요. 기름은 내가 채워야 해요. ''기름을 채우세 내 맘속에 성령의 기름을 채워 주께서 베푸신 그 사랑을 온 세상에 널리 펼치리''

 

제가 예루살렘에서 들은 이야기인데요. 참 좋지 못한 이야기에요. 어느 집사님이 그 나라 여행사하고 손을 잡고 동업을 하다가 돈을 80만불을 안주고 도망쳐서 왔어요. 우리는 도망치는데 은사가 있잖아요. 미국으로도 도망치고 그러잖아요. 또 한 분이 또 그 만큼은 안되어도 한 20만 불을 가지고 한 달도 안 지났는데 도망쳤어요. 또 이번에는 한인 회장이 도망을 쳤어요. 그래서 세관에다가 연락을 해서 법무부에 출입을 못하도록 했는데도 자동차를 타고 요르단 쪽으로 넘어가서 요르단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버렸더라구요. 거기에서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면 세 사람이 다 교회 집사예요. 도망친 사람, 떼먹은 사람이 다 집사예요. 여러분 집사든 목사든 그 사람이 교회를 나와서 예수는 믿어도 심령은 성령이 아니고는 어둡습니다. 마음이 어둡고 심령의 어두움을 가지고 봉사하는 분이 많습니다.

 

교회안에서는 환하게 있다가 나가면 바로 어두움을 찾아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기 앉아 있으면서도 어두움을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몸은 여기와 있어도 발걸음이 어두움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러냐면 그 안에 교회 나와도 그 안이 성령으로 본 어게인(거듭남)을 안했어요. 거듭나지 않았어요. 성령으로 거듭나지를 않았어요. 불빛이 비추어 주지를 않았어요. 내가 불이 있어야 가는 곳마다 비추어 줘요. 내가 내 안에 불이 있으면 가정에 가도 불이고요. 회사에 가도 불빛이 비추고 친구를 만나도 불이 비추어 주는데 내가 불이 꺼진 심령은 어디가도 어둡습니다. 어두운 말을 합니다. 어두운 생각을 가지고 어두운 습관을 쫓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온 모든 성도들에게 주의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마음이 신령한 거룩한 빛으로 환하여 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어두움은 주의 빛과 함께 물러가고 어두움과 타협하지 말고 어두움을 내어쫓고 빛 된 삶을 주님 오시는 날 까지 등을 들고 살다가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에 일곱 촛대를 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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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이야기

 

성막은 뜰과 성소와 지성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달걀이 껍질과 흰자위와 노른자위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뜰은 흠 없는 짐승들이 죄를 짊어지고 죽는 성자의 사역장입니다.

 

성소에는 등대와 떡상과 분향단이 놓여 있는 데 이 세 성물은 모두 성령의

사역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는 데 이 곳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만나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부의 사역장입니다.

 

오늘은 성소에 놓여 있는 등대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 없는 미드라쉬 이야기를 많이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모세와 등대

 

모세가 성막을 만들 때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성물은 등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열심히 잘 만들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습니다. 도저히 등대 모습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제 포기상태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만들던 등대 금덩어리를 불 속에 넣었다가 꺼내라>

모세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불 속에서 금덩어리를 꺼내어 망치로 한번

쳤더니 등대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결국 등대는 하나님과 모세가 합작하여 만든 걸작품이 되었습니다.

 

솔로몬과 등대

 

모세의 성막에는 등대가 한 개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에는 등대가

10개였습니다.

 

솔로몬은 금 1,000 달란트를 용광로에 넣고 계속 불을 피웠습니다.

밤새도록 불을 피우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금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습니다. 이 금으로 등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만들고 나면 꼭 1 디나(dinar)가 무거웠습니다.

 

솔로몬은 완전한 등대를 만들기까지 모두 80번을 불 속에 넣어야 했습니다.

 

이같이 등대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가장 만들기 힘들었던 성물이었습니다.

등대는 빛된 생활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데 정말 빛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듯 합니다

 

수전절과 등대

수전절은 빼앗겼던 성전을 다시 찾아 깨끗케 한 날입니다.

수전절에 일어난 등대 이야기는 정말 은혜롭습니다. 안식일마다 전쟁을

일으키는 시리아 군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도 하지 않고 전쟁도 하지 않는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포도농사를 땀을 흘려 짓고 포도주를 짜놓으면 안식일에 와서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밀 농사를 일년 내내 하여 밀가루를 만들어 놓으면 시리아는 안식일에 와서 가지고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시리아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안식일이 즐거운 날이 아니라 없었으면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유대인들은 숲 속으로 산 속으로 굴속으로 피하여 들어가 거기에 농산물들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빼앗겨 버려서 더러워진 성전을 회복하는 독립운동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전쟁도 하지 않고 죽어 갔고 수많은 농산물을 시리아군에게 빼앗길 때였습니다.

 

이 때 지도자 마타디아스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시리아에게 약점을 잡혔습니다. 안식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전쟁하지 않는 우리를 알고 안식일에 쳐들어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제 안식일에 저들이

쳐들어오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민족을 구할 사람들은 나와 행동을 같이 하십시다>

 

이 말을 듣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마타디아스는 전쟁을 하다가 불행하게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즉각적으로

마카비(Maccabees)가 대를 이어 싸웠습니다. 마카비의 별명은 나중에 망치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치열하여지자 시리아의 안티오쿠스는 엄청난 군사를 추가 배치하여 보냈습니다. 그들은 말과 무기와 심지어 코끼리까지 동원된 철저히 정예화된 군사들이었습니다.

 

무적 무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 군사 뒤에는 언제나 빈 마차가 동원되었습니다.

 

저항하는 유대인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 남는 자들은 다 팔아버리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차는 시리안 군대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무역업자들이 자기들이 동원하여 가지고 온 마차였습니다. 현장에서 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돈을 주었습니다.시리안 군대는 전쟁이 돈버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무역이었습니다. 전투가 아니라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착각이었습니다.

 

마카비는 지혜롭게 그리고 극렬하게 그리고 목숨을 걸고 저항하였습니다.

안식일에도 전투를 하였습니다. 이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카비는 계곡으로 시리아군을 유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계곡의 적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마카비가 이끄는 군사들은 훈련받은 군사들이 아니라 훈련을 전혀 받지 아니한 양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카비가 그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상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군사들을 재정비하여 제2차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총공격이었습니다.배수진을

친 싸움이었습니다. 누구도 양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티오쿠스의 대침공이 개시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밤이 되었습니다.

 

마카비는 자기들이 있던 진영에 불을 펴놓고 피하였습니다. 안티오쿠스 군대는 반으로 나누어서 쳐들어 왔습니다. 나머지 반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카비는 전체와 싸우지

않고 반과 두 번 싸우면 되었습니다.

 

마카비의 승리였습니다.

 

전쟁에 승리한 마카비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카비가 승리하고

돌아오자 성전에 주둔하고 있던 시리아군들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마카비가 성전에 들어가 보니 안티오쿠스 군대가 지니고 있었던 창이 8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성전에는 먼저 등대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레서 창 8개를 성전 밑에 박고 그 위에 촛불을 켰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회복하고 첫 등대는 8개가 되었습니다.

 

성전의 밖은 잡초가 무성하였고 가시덤불로 덮여 있었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 같았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와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시리아가 지배하고 있었고 우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마카비는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성전 뜰에 어지럽게 나있는 잡초들을 뽑았습니다. 성전 내부가 마치 장마비가 들어 차있던 쓰레기장 같은 것을 청소를 하였습니다. 우상을 내다 버렸습니다. 제단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등대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등대에 넣을 기름을 찾았더니 겨우 하루분 밖에 없었습니다. 등대에 넣을 기름을 만들려면 아무리 빨라야 8일 걸립니다. 그러므로 모처럼 회복한 하나님의 성전이 7일간은 어두워야 합니다.

 

이제 최선을 다 하는 방법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 편에서는 등대에 넣을 기름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등대에

하루 분의 긺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8일간 그 등대에서 빛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신기한 기적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성전을 회복한 날을 수전절 즉 하누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8일간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래 저래 수전절은 8이라는 수와 연관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누카 즉 수전절을 8일간 지키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8개 촛대를 준비하여 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전절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활동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10;22-23)

 

감람유와 등대

 

성소에서 사용하는 감람유는 감람유 중에 최고 품질의 것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은 언제나 최상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최상의 감람유는 어떤 것입니까?

 

감람 열매를 쌓아놓고 무거운 돌로 짓누릅니다. 그래서 5분 동안에 흐르는 감람유만이 성전에서 사용되어졌습니다. 이런 감람유를 사용하면 끄름도 없고 빛도 밝았습니다.

 

등대와 점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저녁에 제사장이 등대 7개에 모두 불을 붙이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침에 다른 제사장이 등대를 점검하려고 들어가면 여섯 개의 불을 꺼져있고 가운데 불만이 성소를 밝혀 주었다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그 제사장은 모든 등대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심지도 갈아 끼웁니다.

 

그리고 가운데 불로 불을 붙여 낮에도 등대의 불을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등대에 가운데 불을 결코 꺼뜨리지 않았을 가요?

 

이 불은 영원을 의미합니다. 내세를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당에서 빛과 토라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등대

 

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성막에 있는 등대가 빛이 꺼지지 않는 한 성막 주변은 늘 밤에도 불기둥으로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예루살렘 거리는 결코 어두운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해나 달이나 별빛보다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늘 꺼뜨리지 않고 켜둔 이 등대의 빛을 더 좋아 하셨습니다.

 

성경과 등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등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등대에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등대에는 살구꽃을 22개 수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줄기에 46개의 가지마다

각각 3개씩 모두 18개였습니다(25;31-40)

 

등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쳐서 만들었습니다.

등대를 부어서 주물로 만들거나 깎아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등대는 순금덩어리를 쳐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빛된 생활하려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땀없이 결실 없고 눈물 없이 결실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맞으신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채찍으로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2) 살구꽃을 수놓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살구꽃을 수놓으라고 하셨을 가요?

 

살구꽃은 이스라엘에서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입니다. 따라서 살구열매는 첫 열매입니다. 우리는 첫 열매하면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사도바울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등대의 빛을 보시면서 <나는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의미하는 등대에 예수님을 의미하는 살구꽃을 수놓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확한 의도입니다.

 

(3) 7개의 등잔을 만들었습니다.

 

가운데 줄기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6개의 가지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15;5)

 

여섯된 사람은 하나된 주님께 붙어 있어야 주님을 닮아 빛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등대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등대를 보시고 <나는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되신 주님을 본받아 빛된 생활하는 원리를 등대는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