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32장
대하 32장
히스기야의 대표적 이야기는 그의 생명을 15년간 연장 받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히스기야의 삶은 축복의 삶인가요 저주의 삶인가요?
15년을 더 살아서 자신은 행복했을지 몰라도 그 행복이 후에 많은 화를 가져옴을 볼 수 있다. 이 이유는 나중에 나옵니다.
히스기야의 죽음을 통해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슬퍼합니다.
왜 이렇게 슬퍼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 당신의 죽음 앞에서 누가 슬퍼할까요?
히스기야의 시대가 마치고 므낫세의 시대가 왔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면 기대를 합니다. 우리도 얼마 전 대선을 통해 많은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것은 그놈이 그놈이다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히스기야의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은 기대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므낫세는 그러한 기대를 져버리는 왕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대를 져버렸다고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환호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의 문물개방, 시대적 요청수용, 인권수호- 동성애까지 수호하는 시대, 여성인권신장 등의 구호를 외치는 지금처럼 그들은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맹신하는 모습니다.
므낫세는 많은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의 시각에서는 악한 일들입니다.
성전에 이방신들을 위한 제단을 쌓고 힌놈의 골짜기에서 자기의 아들들을 바칩니다.
요술과 마술을 부립니다.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축복에는 관심이 없도록 그 백성의 생각을 의식화 시키는 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우리가 잘 아는 선지자 중 이사야 선지자의 죽음에도 일조를 했는데 이사야의 충언을 듣지 못하고 그를 널판사이에 놓고 톱으로 썰어 죽인 왕이기도 합니다.
왜 므낫세는 이렇게 악한 일들을 할까요?
이렇게 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런 이유는 히스기야 왕에게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 생명을 연장 받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엄청난 재물들과 조공을 통해 부국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나라의 과학과 문명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32:30에 보면 히스기야의 터널을 만들고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했습니다. 히스기야의 터널을 제가 자주 언급하는데 너무나도 신기합니다. 양쪽에서 판 터널 1200규빗 512m 의 터널, 고도 차이가 32cm 만날 때 15cm 밖에 차이가 없었다.
부국을 이룬 것 까지는 좋지만 그 마음에 교만이 찾아 온 것은 저주가 되었습니다. 교만이 찾아온 히스기야 바벨론에서 찾아온 사신들에게 자신의 보물창고와 하나님의 창고를 열어서 자랑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이사야가 책망을 합니다.
당신의 좋은 것을 누구와 공유합니까? 선한 것은 선한 것으로 공유, 악은 선한 것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김포에 요즘 신도시를 세웁니다. 신도시를 세울 때 보상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던 사람들 지금 잘 살까요? 아닙니다. 주변에 노름꾼들 협작꾼들이 벌써 그 돈 냄새를 맡고 옵니다. 돈은 그 사람들 수중에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현명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벤츠 타고 다니면서도 조용히 농사합니다. 벤츠에서 삽, 곡괭이 빼서 예전처럼 조용히 살아갑니다.
결과로 하나님은
당신 아들들 중에서 이방의 환관이 될 사람이 나온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반응은 그것은 나의 대에 이루어 질 일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히스기야의 15년 생명연장은 어찌보면 축복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씨앗 아들이 므낫세가 된 것입니다. 므낫세는 악하게 다스리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回初理를 맞게 됩니다.
돌이킬 회 처음초 다스릴 리
하나님의 회초리를 맞은 므낫세 어떠한 행동을 취합니까?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취합니다.
하나님의 회초리를 맞아보셨나요? 맞으면 아픈 정도가 아닙니다. 돌이키지 않고는 버틸수 없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남자들은 좋아하는 것에 및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좀 다릅니다.
전도사 시절 바다낚시를 좋아하던 1인
파도 방지 - 트라이 포드 위에서 낚시 바다에 추락 - 얼굴 40여 바늘 꿰메
하나님의 회초리를 통해 돌아오는 삶은 너무 힘듭니다. 조용히 겸손히 돌아오길 원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눅 16장에서 봅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복의 귀한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므낫세는 지금까지의 악행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므낫세 일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회복의 귀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므낫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들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의 기회는 여러 번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그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회복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은혜를 아는 것 중요합니다.
므낫세는 그런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은혜를 가진 므낫세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들을 시작합니다. 산당을 없애고 재단들을 없애 버립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그는 돌아온 왕이 되었습니다.
아몬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 큰 악을 저지른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나이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언제나 옳은 일만 했다고 합니다. 왕이 된지 팔년 째부터 그는 하나님을 선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언제부터가 중요한가? 청년 때부터 늦다 청소년 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12년째 되던 해엔 그의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있다. 항상 하나님 앞에 불경스럽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들을 없애고 거짓 신들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부관참시까지 하면서 그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18년째 되던 해엔 성결 정결운동을 한다.
요시야의 개혁운동 중 본받을 것은 그의 점진적인 개혁에 대한 태도이다.
점진적인 신앙의 모습을 확인하길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가?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삶으로 나는 인도함 받고 있는가?
모든 것에 성결한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
여호와의 성전을 사랑하는가?
말씀 회복운동을 하는가?
그는 점진적인 개혁을 통하여 이러한 것들을 이루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것을 이루고 있는가? 점진적인 신앙의 성숙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의 퇴보를 이루고 있는가?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았던 요시야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진정한 개혁을 이룹니다.
자신을 옷을 찢고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습니까?
왕은 하나님과 다시금 언약하면서 자신의 개혁을 완성시키려합니다.
우리의 개혁의지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