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시편 1편

스네어 2013. 1. 25. 17:02

본문은 150편에 달하는 광대한 시편의 입구를 여는 문이다. 이 문을 통하여 우리는 시편에 들어선다. 이 문을 바르게 열지 못하면 시편 속으로 바르게 들어갈 수 없고 아름다운 시편의 정원을 거니는 특권과 행복을 맛보지도 못한 채 겉돌기로 그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시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강론한다. 즉, 본문의 주제는 '시편의 행복론'이다.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무엇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인가? 등이 본문의 핵심 주제이다. 이 주제는 어제나 오늘이나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가?

 

1-2절은 복 있는 사람의 정의(부정적 정의와 긍정적 정의)를 다루고,

3-4절은 그들 각각의 특성을,

5-6절은 결론을 다루고 있다.

 

A. 우선 복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본문이 정의하고 있는가?

 

1) 시인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와 관계를 끊은 자들이라고 정의한다.(1절)

2) 도리어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증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라고 적극적으로 정의한다. (2절)

 

본문이 말하는 축복된 사람, 행복한 사람의 기준은 윤리, 도덕에 있지 않다. 즉, 죄를 얼마나 짓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선한 행위 차원의 특징이 아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날마나 읽고 공부하고 죄를 멀리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사람도 본문이 말하는 축복과 거리가 먼 사람일 수 있다.

 

복, 행복의 기준은 그가 마음으로 무엇을 즐거워 하는 사람인가, 이다. 본문은 그가 악인, 죄인, 오만한 자를 멀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 라고 밝힌다. 핵심은 "즐거움"에 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그가 어디에서 활동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무엇을 즐거워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그의 마음의 기쁨, 행복, 만족, 추구의 대상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본문이 말하는 복된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그래서 그는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기를' 즐긴다. 그가 성경을 여는 것은 지식습득을 위함도 아니요 성공의 道를 발견하기 위함도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곧 그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여기 복 있는 사람의 특성이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말씀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의 마음은 말씀과 거기가 만나는 하나님께로 기울어져 있다. 애인을 향하여 항상 어깨가 기울어져 있는 여인처럼.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향한다. 그의 마음은 변화되어 있다. 본성이 새로워져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죄인의 길, 악인의 꾀, 오만한 자의 자리와 그것들이 안겨주는 요소들을 즐거워하고 만족으로 삼는다. 그러나 여기 새로워진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음성을 어둠의 빛으로 삼고, 굶주림의 양식으로 삼고, 환난 중의 피난처로 삼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가 복 있는 자이다. 로또 당첨금 20-30억, 100억 대박을 얻은 사람이 복 있다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 내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바라고 찾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라. 그렇다면 여러분은 복 있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요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한 용서를 입은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요 장차 영원한 기업을 유업으로 얻을 자이기 때문이다.

 

B. 복 있는 자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시인은 복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로 비교한다. 얼마나 절묘한 비교인가? 나무와 겨. 그것들의 특성적 차이는 '생명력'에 있다.

나무는 생명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땅에 견고히 뿌리를 박고 있다. 그것은 성장하고 성숙한다. 그것은 열매맺음이라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활동한다. 그러나 겨는 그 모든 것이 없다. 그 '겨'가 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든, 높은 지위를 소유했든, 큰 권세를 누리고 있든 상관 없다.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없다면,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겨이다. 겨에 불과하다.

 

시인은 복있는 사람이 뿌리를 내린 '시냇가'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 분의 은혜임을 암시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 그것이 우리들의 시냇가이다. 우리가 뿌리를 박고 결단코 떠나지 말아야 할....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의 특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뿌리를 박고 그 안에서 자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C. 결론

 

시인은 본문에서 자신의 결론을 명쾌하게 내린다. 악인과 복 있는 자의 결말이 그것이다. 악인은 심판과 멸망으로 끝나며 복 있는 의인은 하나님의 인정과 의인의 회중들만이 누리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복 있는 성도들의 삶이 요셉처럼 형통과 성공으로 마쳐질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 성도의 참된 행복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의 겨들로 부터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박해를 당하기도 하고 재산을 빼앗기고 순교를 당하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소유한 참된 복은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때 비로소 그 영광스러운 빛을 드러낼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우리 성도들은 복있는 자이다. 우리의 가난함과 상관 없다. 우리의 학벌과도 상관 없다. 외모와는 더더욱 상관 없다. 직업 유뮤와도 무관하며 토플 성적과도 전혀 연관 없다. 오직 우리의 복됨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닌 믿음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만 놓여 있다. 우리는 행복한 자이다. 지금의 행복은 장차 누릴 행복의 억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오, 성도들이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