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마5:9

스네어 2009. 11. 20. 16:39

평화로운자의 행복(마5:9절)

마음이 청결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보고 사는 성도는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자가 되어 마음속에 화평을 가진자가 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요 복중의 복입니다.

유대인의 숫자중에도 7은 완전수를 가르킵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의 복은 완성의 복을 의미합니다. 다른 복은 받는복이지만 일곱 번째의 복은 누리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누리는 것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자신을 먼저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모든이들에게 평화를 주는일이었습니다.

특히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할자로서 기쁨의 좋은 소식인과 동시에 인간에게 평화를 성취하신 하나님의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요14:27절에서는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오직 평화를 위한 삶이셨습니다.

가난한자를 돌보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죄지은자를 사하시며, 소외된자들을 위로하신 평화자였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사 믿는자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주셨던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평화의 복음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죄 때문에 형성된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가져온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자신을 화목제물로 죽는자리에 내어놓으신 그 평화로 하나님과 하나되었음을 감사하면서 그 화해자되시고 중보자되시는 원수된 담을 헐어주시던 예수님을 매일의 삶속에서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롬5:1절을 보면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말씀합니다.

여기서 화평을 누리자라는 의미는 “화평을 즐기자”란 의미가 포함되어있는것입니다.

화평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화평을 나눔으로 즐거워하는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안에 가지고있는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분노 그리고 쓴뿌리 등과 같은 죄를 버리는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회개의 마음은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나자신을 돌아보며 남을 생각하는 평화의 사람이 되십시다.

회개의 마음으로 남을 돌아보는 사람이 될 때 참행복을 누리며 참 평화자가 됩니다.

평화의 사람이 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생각까지 복종시키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뿐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도 않는다고 롬8:5-7절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22:21절에도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말씀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지배하고 다스릴 때 평화가 있고 자유가 있으며 참 평안이 우리마음에 임재하여 다른이들에게도 평안을 줄수있게 되는것입니다.

 

우리안에 계시는 성령은 우리를 계속해서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인류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마음속에 미움과 증오와 원수맺는 타락한 본성 때문입니다.

야고보서4:1절에서 “ 너희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쫒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좆아 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싸우고 다툽니다. 이것 때문에 분쟁과 갈등이 계속됩니다.

우리속에 있는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서는 평화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것입니다.

 

성프랜시스의 기도문을 보십시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곳에 신앙을, 그듯된이 있는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죽지않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룰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나를 부인하는 일을 계속해야한 하는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포기한것과 같이

창13:8-9절에서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서로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우리가 가질 때 우리는 평화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입니다. 형제간에 우애하며 살기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이렇게 회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성격이 몹시 거칠고 급하고 과격한 편이었으나 나의 어머니는 그 아버지와한번도 다투는 일이 없었습니다. 말로나 행동으로 싸우지 않고 참았다가 그 아버지의마음이 안정된 후에 비로소 조용히 이해시켜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잠언17:1절의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마른떡 한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것보다 나으니라”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 사는것보다 움막에서 혼자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21:9절

가정의 평화 곧 인류의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형제들과 화목하고 이웃들과 평화하며 아내와 남편 자식과 부모가 화평하면 이것이 가장 큰 복이되며 하나님 아들이 되는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때에 화평케 하는자가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