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찬양단 헌신예배

스네어 2009. 9. 12. 10:40

히브리서 11장 6-7절

믿음

 

 

 

예루살렘 시내에 한 나귀가 어귀적 거리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나귀가 걷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으나 그 사건 경황을 잘 알고 있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나귀는 몇 시간 전에 예수님을 싣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나귀였습니다.

사람들은 환호 했습니다. 종려나무를 깔고 꽃을 뿌리며 환호하였습니다.

그 환호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던 나귀는 그곳에서 목에 힘을 주고 그곳을 왔다 갔다 했던 것이었습니다.

미련한 동물은 자신 때문에 환호가 있던 것으로 착각을 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환호한 것입니다. 예수만이 우리의 환호의 대상이요, 우리의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능력의 종, 권능의 종 하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왜 입니까?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앞에 있기에 그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아에서 사역하고 있을때 한 빌라에가서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집인지 집이 빌라가 5도정도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집에 심방을 갔더니 노인 권사님은 반갑게 맞이하고 기쁘게 맞아주시고 밥을 차려주었습니다. 사실 먹기 싫었습니다. 너무 힘든 가정이고 노인 권사님은 더러웠습니다. 얼마나 더러운지 노란 눈꼽이 눈에 껴있었는데 밥을 짓고 오셨는데 눈꼽이 사라졌습니다. 별생각이 다드는 것입니다. 밥을 안 칠려면 쌀 씻어야하는 데 눈꼽을 띠고 쌀을 씻었을까?

얼마후 밥을 주시는데 우리 전도사님 건강하시라고 조밥을 해오시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지 말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을 기도만은 쎄게 해주리라 생각하고 쎄게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게하시고 가정을 축복하시고 물질의 축복을 주시고 아무튼 모든 축복은 다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재개발되고 축복이 몰려오는 겁니다. 며느리는 모 보험회사 보험 왕이 되기도 하고 자녀들은 좋은 학교로 진학을 하고 제 마음에 제가 쎄게 기도해서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기도의 능력으로 그 집이 잘 되었다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드러나길 원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찬양단, 성가대, 금식, 구제, 헌신 우리가 보여지는 것을 칭송합니다.

찬양단 잘 해서 박수치는 것 아닙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셔서 박수 치는 것입니다. 물론 박수쳐주는 것 중요합니다. 손자 칭찬하면 누가 가장 기뻐하나요 할아버지 기뻐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박수 받을 때에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박수를 받는자 자세가 중요합니다. 겸손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던사람입니다. 그때 앉은뱅이가 보여 집니다.

그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에 있다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난 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아니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귀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멘

그런데 이후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능력의 종, 불의 종이 누구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서 있습니다. 사실 배타는 분들 멋있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론 안 멋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안 멋집니다. 그러나 능력의 종, 권능의 종으로 선 그들은 멋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호합니다. 베드로, 요한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환호 속에서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내가 아니라 예수의 능력이다라고 그들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보고 환호합니다. 그러나 환호하는 현실보다 더 중요한 본질이신 예수가 있음을 기억하시길 축원합니다.

현실은 어떤 것입니까? 닥친 현실이 보입니다. 한 달은 지나가고 월세, 세금, 학비, 생활비, 자녀문제, 보험료, 각종 공과금 보이는 것이 현실로 보여집니다.

미래는 어떠합니까? 미래가 보여지나요? 보여지지 않습니다. 보이질 않습니다.

사람들 외모 보여지나요. 자신보다 팽팽하고 잘생겨 보이나요, 부럽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 보여지나요. 내면은 보이질 않습니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마음은 모른다라고 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마세요.

변화하는 상황은 보이나 변화하지 않는 진리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반응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것이 우리의 인간세상을 주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반응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체는 중요하고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만 급급하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현실이 아니라 실체를 바라보며 살아간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노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보지 못한 것을 바라본 사람이었다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가고 ...이런 일들에 급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현실만 보아도, 노아는 아들만 셋이었습니다. 현대에도 아들 셋인 집은 복잡합니다. 치고 받고 싸우고 ..서로 간에 경쟁하는 것이 아들 셋의 모습입니다. 아들 둘만 되어도 정신이 없습니다. 저희 집의 모습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들 셋인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솔 약국집 아들들이 그래서 복잡합니다. ㅎㅎ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가고 이러한 무법 속에 살아가려면 현실 위주로 살아야합니다. 한번 뒤떨어지면 낙오자가 되는 것이야~~많은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서 이야기 합니다. 아마도 노아도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이것이 현실이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사프로그램에서 학벌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벌위주의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시대는 그것을 조장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안정된 세상을 위해서도 교회에서 난리가 납니다. 수능 한달 전 특별새벽기도, 심야기도, 100일 작정기도, 수능 날 학교에 가서 기도하는 일들 세계에서 전무후무하고 이것은 해외토픽에도 나옵니다.

눈에 드러나는 것 결혼 잘 해야 한다. 우리는 신앙 좋은 사람이면 되요...하지만 사실 신앙 좋고 인물 좋은 사람 저 말고 많이 못 받습니다.....zzz

남들에게는 신앙 좋으면 되지 말하면서 자기 자식이 장가가고 시집가면 난리입니다.

사람들은 따집니다. 외모, 학벌, 돈, 가문 이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다이어트를 합니다. 얼마 뒤 결혼했습니다. 요요현상이 일어나 결혼 전보다 더 뚱뚱해 졌습니다.

다급한 현실을 위해서는 노력하지만 보이지 않는 일에는 노력을 하지 않는 우리에게 본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방주를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보이지 않는 일에 반응하고 관심이 없지만 노아는 경고를 받았는데 실제로 그것을 예비하였는가? 방주를 예비하였는가?

내면과 진리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방주를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심판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장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노아에게 하나님은 준비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준비되는 과정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세의 광야 40년의 준비과정, 바울의 3년의 준비과정, 제자들의 3년의 준비과정, 오늘 노아의 120년의 준비과정 이런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으로 준비되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앞에 준비되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선행으로, 알팍한 의로, 드려진 부족한 헌금으로, 남들에게 보여지는 위장된 거룩함으로 그것이 준비 되질 않습니다.

여러분은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다. 보혈의 은혜를 힘입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 방주에 나아가지 아니하면 방주를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엔 심판이 있다라고 히 9:27에 말씀합니다.

에스겔서는 말합니다. 아비의 죄로 인하여 아비가 망하고 아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아들이 망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방주는 아버지가 지어줄 수도 없고 친구가 지어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예비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방주를 예비해 보세요...그것은 축복의 나날입니다. 밖에서 미쳤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내게 믿음으로 다가와서 그것을 날마다 하고 있다라면 그것은 축복이 되어 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주를 예비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은 무엇인가요?

방주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그곳에 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밖에는 환란이 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고 사람들의 신음이 들리고 잔인한 소리들이 들려오지만 방주는 평온합니다. 방주는 타야합니다. 방주에는 발코니가 없습니다. 방주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150일간 닫쳐있는 구조입니다. 물이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방주의 축복을 누리려고 하면 완벽하게 교회의 교제권 안으로 믿음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방주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으로 안 들어온다라는 것입니다. 아마 홍수 때에 방주에 매달린 사람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왜 일까요 환경의 시험, 주위의 시험이 있을때 믿음이 없으면 신앙이 없으면 방주에 들어가지 못하면 빠져 죽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주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방주에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키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배에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키입니다. 키가 없다라는 것은 차에 핸들이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관령 99구비를 내려오는데 핸들이 말을 안 듣는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방주는 키가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중 하나가 키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로 올 때에 다른 생각이 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확실하게 믿고 의지하길 축원합니다.

 

시편의 기자는 고백합니다.

시편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저는 군대에서 무릎을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뛸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뛸 수 없는 상황은 배려할 수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뛰면 항상 선착순하는 것입니다. 원래 제가 제대로 뛰면 별로 저를 따라 잡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릎이 다친 상황에서는 꼴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맨 뒤에서는 겁니다. 맨 뒤에서면 얼차려가 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관이 이상하게 명령하는 겁니다. 뒤로 돌아 뒤로 돌고나니 제가 일등 되었습니다. 사실 교관이 제 학교 후배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상황은 역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보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가르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바꾸시면 상황은 역전되는 것입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통밥 굴리지 말고 현실을 살려면 여러분 생각대로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면 방주를 준비하여 살기를 축원합니다.

 

방주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공동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150간 함께 방주 안에 있을 때에 그곳에서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곳엔 협력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협력입니다.

신앙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은 신앙의 격려가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가문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친구들로부터 배척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던 모습은 아름다운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거룩한 협력임을 기억하길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방주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시간을 주관하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리고 싶어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150일의 기한이 찰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인 것을 잊지 말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계획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더 큰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우리를 교훈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면 그 인생이 성공의 인생l임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머물고 싶어도 하나님의 구름이 움직이면 움직여야합니다. 가고 싶어도 구름이 멈추면 우리도 멈춰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고백하시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는 아네모네 찬양단과 영문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찬양으로 헌신하는 아네모네 찬양단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축복하시고 믿음의 온전함을 소유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