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8:9-9:1절
하나님 백성이 사는 법(전8:9-9:1절)
요즘세상은 악하고 독해야 부자되고 잘산다고 합니다.
거짓말하지않고 정직하면 가난하고 못사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모기관에서 20-30대 사람들에게 1500명을 대상으로 정직하면 성공하는가 물었더니 60%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얼말합니까? 약삭빠르고 적당히섞여서 비위맞추면서 손을 비빌줄도 알고 적당히 등칠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단의 전략입니다.
진실이 사라져버린시대! 눈치없고 부조리못하면 왕따당하는 시대!
그래서 11절말씀에“징벌이 속히 실행되지않으므로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다”고 말하고 있고 12절에는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겁니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던 하박국 선지자는 1:2-3절에서 어째서 나로 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십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내버려 두실겁니까?” 이스라엘이 악한 민족인 바벨론에게 짖밟힙니다. 아녀자들이 겁탈을 당하고 어린아이들까지 죽고 성전은 다부서지고 하나님섬길만한 장소가 없는 비참한 민족이 되어가는데 하나님 분명하게 살아계시는겁니까? 하나님이 분명하게 살아계시는데 왜 악이 숭리합니까라고 묻고 있는겁니다.
다윗도 마찬가지로 시73:2-3절에서 외칩니다.
“나는 거의 실족할뻔했습니다. 내 걸음이 미끌어질뻔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는것도 입에서 토할것만같고 똥물이 넘어올것만같은데 저희는 죽을 때 고통도없고 그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이 없으니 어떻게 된것이냐는겁니다”
악을 저지른만큼 죽을때는 고통스럽게 죽을줄알았는데 예쁜간호사의 손에 안겨서 고요하게 죽습니다. 멋지게 죽어갑니다. 악한사람은 비실비실하게 안 아픈데가 없이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않습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이럴수있는가? 하는겁니다.
문제제기 : 요즈음 우리가 사는 세상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악인이 형통하게 보이고, 잘난것같이 보이고, 믿음으로 살려는 나는 고리타분하게 보이고 못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까?
이럴때 구원받았다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해보지않았습니까?
- 남들부조리할 때 같이 부조리하고 남들거짓말할 때 적당히 같이 거짓말하면서 섞여 살아야 뒤쳐지지 않을 것 아니냐? 믿음은 믿음이고 세상살이는 세상살이아니냐!
다 그렇고 그런것인데 나만 유독 믿는다고 폼잴필요없고 유별나게 살필요있느냐!
그래야 남들 50평살 때 나는 15평짜리라도 살수있지않느냐! 맞는것같지요!!!
그러나 확실히 해야합니다. - 죄악의 문제는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문제가 되지않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하나님없이 저절로 굴러간다고 믿는 사람이 세상이 선하든 악하든 무슨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래도 지옥가고 저래도 지옥갈사람들 어차피버림받은 사람들은 별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사람에게는 다른문제입니다.
그런점에서 악이 형통하는 악한세상에서 성도가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는겁니다.
1. 하나님만 경외하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손길에 붙잡혀라”말하고싶습니
12절 하반절을 읽습니다.“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자가 잘될것이요
13절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하나님앞에 경외하지아니함이니라”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이 결국 승리한다는말아닙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않는 인생은 그럴듯하지만 살아봐야 뻔하다는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이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않는곳이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처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순간,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부터 성령께서 내마음에 내주하시는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한 것을 믿는사람 이것이 성도입니다.
바로 그 손길이 나를 계속해서 인도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루24시간 내내 단 1초라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나를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삶입니다.
요10:28절에 보면 “내가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터이요 또 저희를 내손에서 빼앗을자가 없느니라”
시37:24절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이것이 우리의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이것이 신학적인 용어로 “성도의견인”이라고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신 백성은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선언, 구원의 확실성말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택하지않은백성은 아무리 그가 형통하고 잘되고 번영하고 그럴듯하게 살았다할지라도 그의 결국은 뻔하다는겁니다.
낭떨어지에서 사람이 아래로 떨어질때에 위에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붙들고 있으면 이내 힘이 빠져서 꼭떨어져 죽게 된다는겁니다. 그런데 위에 누군가가 있어 잡아주면 살아날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손을 잡았다고 할 때에 내가 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손을 잡고 계시는것입니다. 결코 놓지 아니하시는 그 손이 구원의 손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골짜기에 있을지라도 악이 관영하고 악인들의형통함을 보며 실족하려 한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면 이사야선지자처럼
41:10절에“두려워말라 내가 너와함께 함이라 놀라지말라 나는 네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약삭빠르면 잘살고 독하고 악하면 부자고 살지만 성도의 신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원받은 성도는 여호와의 선하신손이 단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 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않고 제마음대로 살면서 세상에서 악을 저지르면 사는 그들의 손은 잡아주지않습니다. 부조리를 통해서 부유하게된손, 악행을 일삼으며 기고만장한 손은 하나님없이 살겠다는 교만한손 그 더러운손은 잡아주시지 않는단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는자의 손은 반드시 붙잡아주시는데
보호가 필요할 때 보호해주시고, 인도가 필요할 때 인도해주시며 변지켜야할 때 지켜주십니다. 항상 붙잡아 주시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작사자가 “주님이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환경의 어려움 때문에, 심령의 낙심 때문에 번민하며 우는성도가 있습니까? 오늘도 여전히 여호와의 손이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다시금 일어나시기를 소원합니다.
2. 현실을 받아들이라는겁니다. - “은혜를 자랑하면 살라”이겁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악에 문제에 직면하지만 100%악한 상황은 없는겁니다.
100%의 불의만있는 것! 아닙니다. 나와 세상을 비교하니까 내 환경과 다른사람을 비교하니까 악한상황만보이고 부조리만 보이고 악의형통하는것같지!!
하나님께 내게 대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이 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암담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소한의 은혜가 반드시 있다는 사실입니다. 15절을 읽습니다. 희락이 있다는겁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것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아래서 살게하신 날동안 수고하는 중에 기뻐할것이 한가지씩은 있다는겁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하지만 건강이 있지않습니까?
“나는 못났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인복이 있어 주변에 좋은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지않느냐 그말입니다. 머리도 뛰어나지않고 집안도 고만고만한데 자식하나는 잘 둔사람도 있습니다. 이런것들이 모두없어도 믿음하나만은 든든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독특하고도 남들이 갖지않은 복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서 감사하며 마음으로 즐겨야할줄 압니다.
하나님이 주신복을 인정하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할수있을때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십시오! 이 세상에서 내 삶이 은혜가 되지못할 때 악인의 형통함을 보는것입니다.
내가 아내에게 만족하고 내가 남편에게 만족하는데 한눈팔겠습니까
내가 사는 것이 만족스럽고 기쁘고 좋은데 다른데 눈돌리겠느냔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만족해하면 악인의 형통함은 보이지 않는겁니다.
내가 사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면 모든 것이 감사가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격하며 기뻐하면 그것이 곧 나의 힘이 되는줄 믿으시기바랍니다.
3. 세상보고 근심하지만 말고 “여러분께 비젼을 품고 계신 하나님을 보라는겁니다”
16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 세상의 노고를 보고자 하지말라는겁니다. 이것은 보고자할 때 밤낮으로 자지못할뿐입니다. 밤낮으로 자지못하는 것을 다른말로 근심뿐라는말입니다.
왜냐하면 9:1절의 말씀처럼 “그들의 행하는 일이 다 하나님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못하는 것 이것이 사람의 미래라는겁니다.”
세상에서 일의결과를 보려고하면 하나님의 모든행사를 온전히 알수없을뿐만 아니라 도리어 근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멋진인생을 살게 하실려는 하나님의 비젼은 바로 구원받은 저와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결론입니다. -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모든행사를 살펴보니 해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일 우리가 잘모를 수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끝납니다. 주신 은혜를 자랑하고 살면 감사가 넘칩니다. 주시는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놀라운역사가 기다릴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하십시오 붙들리자, 자랑하자, 비젼갖자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면 아무리 악이 관영한 세상일지라도 악이 형통한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도 성도는 마침내 승자가 될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