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시16:1-11절

스네어 2009. 6. 10. 10:17

요동치않는 사람(시16:1-11절)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요동할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옛날보다 지금세상이 더 불안하고 위험한 일이 더 많습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없고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흔히 세상을 바다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바다에 떠있는 배와같이 세상에 항상 일고있는 소란과 바람으로 풍랑이일어나고 파도가 치듯이 우리인생도 세상 풍랑 때문에 요동할때가 많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가지가 흔들리듯 세상 풍파에 견디지 못해 흔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풍랑이 심하여 파산된 사람도 있고 퐁랑 때문에 흔들리는 회사도 있고 흔들리는가정 흔들리는 나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왠만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가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부도가 나고말았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으니까 기계는 고물로 처리되다시피 강매처분되고 은행에서는 독촉장이 날아오며 결국 차압이 붙어 집도 자동차도 날아가고 순식간에 알거지가 된겁니다. 가족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자신의몸에는 병까지 얻게된겁니다. 이런일이 어찌 이 사람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눈만뜨면 매일매일 이러한 사건들을 목격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일이 일어나지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있겠습니까?

우리인생은 이렇게 연약합니다. 한순간의 모든 것이 뒤바뀌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흔들리고 싶어서 흔들리겠습니까? 요동하고 싶어서 요동치겠습니까?

요동치않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요동하는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8절에 보니까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삼킬듯한 풍랑속에서도 요동치 않는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의 삶이 불안한데도 안전한 삶을 사는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풍랑속에서도 요동치않는사람이 될 수있고 불안한 세상에서 안전한 삶을 살수있을까요? 본문은 세가지로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요동치 않는다는겁니다.

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앞에 모심이여”라고 했고

11절에 결과인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자기앞에 모셨더니 요동치 않았고 오히려 기쁨이 충만했다는 말입니다.

마8:2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는중에 갑자기 바다에 큰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큰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져 모두죽게될 지경에 이른겁니다. 모두 죽음앞에 선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예수님 살려주세요 예수님 어떻게 해주세요 예수님 우리가 죽겠습니다. 일어나시자마자 풍랑을 꾸짖습니다. “바람아 멈추어라 바다야 잠잠하라”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풍랑은 잔잔해지고 물결은 고요해진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게 닥치는 불행을 막을수있는분은 오직 상천하지의 하나님!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뿐인줄 믿으시기바랍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가슴에 모신사람, 그 하나님을 가정에 모신가정,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기업은 절대로 요동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큰 풍랑이 와도 죽을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은 그 풍랑보다 크시며 그 상황을 주관하시기에 아무리 거센풍파가 오고 죽을상황이 와도 하나님손안에서 다 해결될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항상 우리앞에 모셔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내앞에 모셨다”고 하는 것은

1) 가장 우선하는 자리에 모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모셔야하는데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모실려면 최고좋은자리, 가장 우선하는 자리에 모셔야합니다.

사극같은 것은 보면 신하가 임금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임금님앞에 가는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있다면 이것은 임금님을 모신 것이 아니잖아요 임금님이 그신하를 모신것이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시기는 모시되 자기뒤에 두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기할일 다하고 자기쓸것다쓰고 그후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이러한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섬기게 하는것과 같은겁니다. 모든곳에 내가 우선하면 안됩니다. 나보다 주님이 더 우선해야 합니다.

내가 높은곳에 있으면 안됩니다. 주님이 나보다 더 높은곳에 계셔셔 명령해야합니다.

내가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주님이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기준이 되고, 내가 중심이 되고, 내가 높은곳에있으면 반드시 흔들리고 요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살면서 그 하나님이 기준이 되고, 그 하나님 중심이 되고,

그 하나님의 말씀따라살면 요동치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넘칠줄로 믿습니다.

 

2) 가장 소중한 자리에 모셔야 한다는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소중한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오실자리가 없습니다.

나보다 주님이 먼저 소중한겁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자리가 어딥니까? 내 마음입니다.

우리집에서 가장 소중한 자리가 어딥니까? 가장의 자리입니다.

우리사업의 가장 중요한 자리는 어딥니까? 사장의 자리입니다.

이랜드라는 상표를 가지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은 박성수라는분과 몇몇분이 함께 이끌어가는 믿음의 기업입니다. 거기에 함께하고있는 이경준목사님께서 이랜드기업에는 항상 빈 결재란이 하나 더 있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결재란이라는겁니다. 무슨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께 묻고 거기에 싸인이 떨어지면 일을 시행한다고 했습니다.

이런사업장은 절대로 요동치 않습니다.

우리삶속에서 가장 소중한 자리를 내어드리면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모실 때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것처럼 하나님을 나의 마음의 주인이요, 우리가정의 가장이요, 우리사업의 사장으로 모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모든것의 주인되셔서 운영하는 나의 인생, 나의가정, 나의사업은 결단코 요동치 않을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삶의 모든영역에서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자리로 모시는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사람은 결코 흔들리지않을줄로 믿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칠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심을 믿을 때 요동치 않습니다.

역시 8절에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11절에서 그 결과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우리가 요동하고 흔들립니까?

나를 붙들어주고 밀어주는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동할일이 있을지라도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실때는 흔들리거나 쓰러지지않습니다. 하나님은 멀리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 바로 우편에 계십니다.

여기서 우편이라는 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고 “보호와 안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힘이있고 능력이있는 분께서 우리우편에서 함께 계시고, 보호와 안전막이 되셔서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에 요동치 않을수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주님이 항상자기우편에 서서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시118:6-7절에보면“여호와는 내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편이 되사 나를돕는자중에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인들 인생에 편안하고 즐거운날만 있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얼마나 비참하고 그럴 수 없는 떄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형제들은 다 아버지와 집에 있었지만 자신은 목동이 되어 양떼들과 노숙할 때 하나님을 자기 목자로 삼고 살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갈때에도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습니다.

사울에게 쫒겨다닐 때에도 하나님을 피할바위로 나의 산성으로 삼았습니다.

전쟁중에는 하나님을 군대장관으로,

아들 압살롬에게 쫒길때에는 하나님을 자기의 힘과 자기편으로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는 왕이 되어서도 항상 하나님을 우편에 모시며 살았기에 요동치 않는삶을 살았던겁니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의 우편에 계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무장해야하겠습니다.

그럴 때 닥치는 어떤환란과 어떤역경도 헤칠 수 있고 결단코 포기하지않을수있는겁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지않을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도 이겨낼수있을줄로 믿습니다.

시121:5절에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기만하면 주님은 항상 우리편에서 우리를 도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자니 나의 모든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하나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을 가진 여러분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신다는겁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심을 믿는 우리에게는 “요동치 않음만 있겠습니까?” 인생에 더할 수 없는 참 즐거움이 넘치는 인생들이 될줄로 믿습니다.

 

3 부활의 소망이 있는자는 요동치 않습니다.

우리 다같이 10절을 읽습니다. “이는 내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자로 썩지 않게 하실것임이니이다”

우리는 이땅에 사는동안에 욥처럼 원치않는 불행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영혼만큼은 그 누구도 해칠수없다는겁니다.

 

사람들은 죽음앞에서 흔들립니다.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죽음은 대단히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이땅에 사는동안에 여러 가지 환란을 만날수있겠으나 죽음처럼 우리를 흔들어놓는것은 없습니다. 죽는다는 상황앞에서서면 하나님이 계시지않는것처럼 생각되어질 절망적인 상황일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죽음후에 부활이 있음을 생각한다면 요동치 않을수있다는 말씀입니다.

마10:28절에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자를 두려워하라”말씀합니다.

다윗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장래에 되어질 부활 다시살아남에 대해서 미리보았기에 사망을 이기고부활하실 그 주님을 보았기에

11절에“주게서 내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라고 고백한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니엘서6장에 보면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나옵니다.

느브갓네살왕은 높은 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백성으로 절하도록 합니다.

이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 신상에 절을 하지않아 풀부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풀무불에 들어가면 뻔히 죽을줄 압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불에서 건져주실것이지만 (그리 하지아니할지라도) 왕의 신상에 절을 하지않겠다”고 합니다.

풀무불에서 살아나지못하고 죽을지라도 불속에 들어가서 살아나지못할지라도 죽은후에 반드시 부활을 주실줄을 믿었기에 죽음앞에 설수있었던겁니다.

이 신앙이야말로 참다운신앙입니다. 그리스도예수를 믿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땅에서의 승리만 아니라 죽은후의 승리가 참다운승리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제죽어도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종교는 현세에서 어떻게 살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살아서도 기쁨이고 즐거움이지만 죽어서도 영생이요, 부활의 아침이 있기에 요동치 않는다는겁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절망하거나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일이 안된다고 죽을일이 생겼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 명예 환난 시험이 와도 결단코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바로 부활의 소망 때문입니

내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자로 썩지않게 하실 하나님의 든든한 약속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마칠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요동할일 많습니다. 염려, 걱정, 불안할일많습니다. 좌절하고 낙망할일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장 우선하는 자리에 둔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자리에 모신사람은 결단코 요동치 않을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하고 굳센 오른팔로 여러분을 붙들기 때문입니다. 죽음앞에서도 요동치 않을 것은 죽음후에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이같이 어려운시절에 요동치 아니하고 늘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넘치는 여러분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