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8-15
다시 전하고저 하는 복음(롬1:8-15)
사람은 누구나가 하루에 한 번쯤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예배에 참석하시려고 거울을 보았을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때 마다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내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나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녹음해서 들어보는 목소리나 비디오를 찍어서 보는 내 자신의 모습에 우리는 종종 놀라는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내 목소리인가 이것이 내 모습인가 하면서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어떤 모습에 그만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여 본다는 것 무척 흥미롭습니다.
가끔은 비디오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보기도 하고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도 하면서, 비교의식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생각과 삶의 방식들을 자신의 그것과 비교하여 봄으로서 좀더 정직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객관화된 나의 모습이 바로 나를 새롭게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 서신속에서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신앙의 거울로 나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의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하나님보시기에 나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한가?
진단이 내려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좀 한 사람이라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신앙생활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볼 수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믿었던지 믿음이 오래 되었든지간에 “기쁜 소식이요 복된 소식”인 이 복음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우리마음은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리게 되고,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데 롬11:33절을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하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 이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무리 헤아려 볼려고 해도 끝이 없고, 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나 같은 것을 구원하시려고 하셨는지!”
“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자기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허락하셨는지!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6:27절에서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신비의 복음을 로마에 전하려는 바울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를 1:1-17절까지 7회이상 사용하면서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고져하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중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15절입니다.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전하기를 원하노라”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원래 믿지 않는 사람,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6절에 이하를 보니까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라” 7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또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라 로마 교인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8절 말씀처럼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될 만큼 믿음이 좋은 로마 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설립 된지 20년이 넘는 로마교회에게 왜 이토록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를 할까,
그것도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가고저 했다고 1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본문은 그저오직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견고케 하고 열매를 맺게 하려는데 있다고만 설명합니다. 결단코 남의 터위에 교회를 세우지않는 철칙을 가진 사도바울이 복음이 이미전해진 로마교회에 가고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바울의 행동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은 여러가지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수 있는 목회적 입장에서는 롬13:13절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말며 음란과 호색하지말며 쟁투와 시기하지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대로 하자면 로마 교인들은 복음을 들었던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다시듣고 은혜를 받아 첫 믿음의 순수성과 열정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음!! 복음은 능력입니다. 생명입니다. 사랑입니다. 감사요 기쁨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교회밖에 보다는 교회 안에 있다는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다시 한번 깨어져야할 사람이 교회 안에 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굳고 교만한 마음이 녹아져야할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이름 앞에서 자신은 죽고, 거듭나야 할사람이 많습니다.
다시 태어나서 은혜를 받아야할 사람이 바로 교회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로마교회 안에도있고 한국교회 안에도 있고 영문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가는 내 자신이, 다시 한번 들어야 할 소식이 바로 복된 소식인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적어도 몇 년, 아니 몇 달을 다닌 사람이라면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다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얼마나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복음에 관해서 설교를 하면
“또 그말 하는구나! 교인들이 먼저알고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다 안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 것인데 또 그이야기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좀 모르는 것
신선한 것, 한 번도 듣지못한 것 없어요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모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말씀이 좋은지 정말 성경말씀그대로 꿀송이 같이 달았습니다.
교인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일에도... 그 다음주일에도 똑같은 설교를 하는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시작합니다.
별소리가 다나옵니다. 그래서 교인대표로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아갔답니다.
“목사님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매번 똑같은 말씀을 주셔서 설교를 거의 외우다시피 합니다.”
좋은 것도 삼세번이라고 다른 좋은 설교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장로님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같은 설교를 해야겠습니다. 그러시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은즉,
좋고 귀한 설교를 들으면 뭣 합니까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귀나 즐겁게 하고 끝날 것 아닙니까?
외운 말씀대로 살때까지 저는 같은 설교를 하겠습니다. 했더랍니다.
구원의 감격이란? -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요 구원받은 자로서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 구원받은 자로서의 기쁨, 이 감사와 기쁨을 한데 묶어서 구원의 감격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를 모르던 사람이 첫 중생하는 체험을 했을 때 느끼는 신선한 감정과 흡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은 황홀하게, 어떤 사람은 잔잔하게, 어떤 사람은 강렬하게, 어떤 사람은 참 좋다 정도로 체험을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러한 구원의 감격에 대한 체험이 있는 사람은 복음을 듣고 또 들을 때 우리영혼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혹은 성격에 다르지만 평생에 구원의 감격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십중팔구 오래지속하지 못하고 피시식 식어버립니다.
2-3년 기뻐하고 좋아하다가, 어떤 사람은 겨우 한 두달 좋아하다가 식어버립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기에 오는 어쩔수 없는 영적인 원리입니다.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모르고, 둘째는 오래가면 식기 쉽고, 셋째는 죄를 범하면 영적으로 병들어 방해를 받는 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계속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식상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계속해서 듣는다는 말도 되지만 배운다, 깨닫는다, 묵상한다, 은혜 안에 거한다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분이 나를 위해 어떻게 사셨고 죽으셨으며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에 대한 사실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고 묵상하며 사는 사람은 예수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십자가, 구원, 죄사함, 영생, 하나님나라와 같은 기본적인 메시지앞에 가슴이 찡해오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관점에서 로마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1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고 견고케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신령한 은사란 여기서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 안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믿음으로 달구어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위해 그토록 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믿음 안에서, 서로 안위하기위해,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시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강하게 세워집니다.
나태하던 감정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심령이 환하게 열립니다. 서로쳐다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서로 좋아합니다.
피를 나눈 혈육보다 더 가까워집니다. 목사나 전도사는 교인만 보면 좋고, 교인들은 목사나 전도사만보면 좋습니다. 서로 감격하는 모습에 감사하고 서로 든든하게 생각됩니다.
이러한 위로가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이러한 감사가 세상 어느 곳에 있다는 말입니까?
바울은 로마교회에 이러한 위안을 주고 자기 자신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생각을 해봅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기쁨에 젖어있을때에는 그냥 한솥밥먹으며 재산을 통용하며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대교회처럼 내것 니것이 없이, 하나의 생명의 공통체로 살고 싶습니다.
서로 안아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파해주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교회가족공동체가 되고싶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뿐만 아니라 1년반동안 목회를 했던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같은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2:2“내가너희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
3년동안 목회를 했던 에베소교회에 대해서도 엡1:17 -19절을 보면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픙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금예배를 드리고 있는 성도님들가운데 많은 분들이 다시 복음을 듣고 힘을 얻어야 할 상태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다안다”라는 교만을 버리고 “또 그말한다”라는 마귀의 속삭임을 뿌리치고, 죄를 범해서 송두리채 잊어버렸던지, 예수믿은지 너무오래되어서 다 식어버렸든지간에,선입견을 버리고 구원의 감격을 다시한번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로마교회가 복음을 다시들어야 했던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모두 복음을 다시들어, 다시태어나고, 다시 감격하면서 잃어버린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먼저할일은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는일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듣는것입니다.
자나깨나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움이 넘치게 될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연구하고 묵상합시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분이 어떻게 나를 사랑했는지, 걸으면서도 묵상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묵상하고, 설것이를 하면서도, 한가할 때도 바빠서 정신없을 때에도 묵상하십시오
피곤하여 세 상살맛이 없을 때에도, 남이 모르는 고통 중에 있어 잠못이루는 밤을 만났을때에도,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을 다시 듣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평안이 찾아올것입니다. 죄용서함을 받은 놀라운 평안이 우리가슴에 조용히 스며들어와 어떤 상황아래에서도 결단코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잃지않게 하실것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망의 꽃이 여러분의 가슴을 수 놓을것입니다.
“예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네! 주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부귀와 명예도 예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네!” 가슴에서 외칠것입니다.
“구원받은 기쁨보다 기쁜 것 없네”
“이세상어떤 기쁨도 구원받은기쁨보다 더 기쁜 것 없네!”
여러분들의 탄성이 될줄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자들의 고백이 될줄압니다.
이러한 구원의 감격을 안고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