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22-45
예수님의 초대와 그를 거절하는 사람들
마 12:22-45
이전시간에는 고난주간 성 금요일 관계로 본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주간 이어지는 말씀이지만 다른 말씀이 전해 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간에는 안식일 논쟁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길로 지나가시면서 밀을 먹었던 것 그 사건과 이어지는 사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를 꾀하기위해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인 안식일에 치유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의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사실이것은 이러한 이야기입니다.
치유해봐라~~치유해봐라 멍석을 깔아준 것입니다.
손 마른사람을 데려다 놓고 이들은 예수님이 능력이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것과 만약 고치더라도 안식일에 고칠 수 없음을 가지고 송사의 조건을 삼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올무에서 벗어나고 그들도 놀랄 만큼 그 안에서 이적을 보여 주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고백을 합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여러분 기적을 믿습니까? 아멘~~아멘 하지만 기적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기적이니 치유니에 대해 별로 기대를 안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태희 목사님 부흥회에 김헌형~~
어렸을 때 장로교 신앙의 바탕을 둔 사람이라고 일전에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말씀 중심의 삶을 어려서부터 들어 왔고 말씀보다 더 가치가 있음을 말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모든 상황이라든지 모든 신앙적인 문제는 말씀 안에서 해결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어려서 치유의 일들을 보니깐 상황은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논쟁의 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바리새인들도 지금까지 논쟁은 모든 것이 허사로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생각은 모두 헛된 것으로 되어 지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던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하시어 이들이 이제 이끌고 나오는 문제는 예수님은 바알새불을 힘입어 치유를 행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파와의 갈등은 바알새불 논쟁으로 이어지게 되어집니다.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반박의 말씀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지 않는 것은 그들끼리는 싸우지 않는 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당시의 귀신을 쫓아내는 이들을 가르키시면서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하는가 말씀합니다.
셋째는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나라가 이미 그들에게 임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른 축사자들과 그가 다른 점이 었다.
넷째로 그 자신이 강한자를 결박했기 때문에 다른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대화를 들어보면 예수님의 간절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깨달으라 너희의 완악한 생각을 깨뜨리라
우리는 이 자리에 주님의 은혜로 서있습니다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깨어지길 원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며 이시간도 함께하시는 줄을 믿으시길 원합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로 지금도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이야기 가운데 그들의 죄를 규정하기를 성령을 훼방한는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구원받지 못할 조건들을 말하지 않는데 우리에게 주의 시키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성경가운데 지옥 갈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짐짓죄와 로마서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죄들입니다.
짐짓 죄를 짓는 자 (히브리서 10:28-29)
오늘 본문에는 ‘짐짓 죄를 범하는 자’에 대한 두려운 경종이 있습니다. 26절에 나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짐짓 범하는 죄’란 무엇이며 이 죄가 어떤 것이기에 ‘다시 속죄하는 제가가 없다’고 하신 것인가?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1. 그리스도의 제물을 욕되게 하는 죄
예수님은 우리의 온전하신 속죄 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아무리 큰 죄라 해도 그 죄에 대하여 사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일1:9절에 있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씩이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죄’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5:16-17절을 보시겠습니다. ( ). 이 말씀으로 볼 때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죄에 대하여 두 가지 면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12:31-32절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가지는 히6:3절 이하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습니다.
2. 짐짓 범하는 죄의 종류
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고 한 말씀은 그 진리를 믿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성령의 끊임없는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아 교회도 나오고 복음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는 짐짓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짐짓 이란 말은 ‘일부러’ ‘고의적으로’란 뜻입니다. 이미 진리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일부러 거역하는 사람들, 그 진리를 못들은 척 하는 경우, 그에게 구원의 은혜가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짐짓 죄를 범한다’ 또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죄를 범했다’ ‘타락했다’는 말은 우리가 육체로 범하는 어떤 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거짓말했다거나 살인을 했다거나 간음죄를 범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죄는 어떤 죄라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미해 주는 죄란 진리에서 떨어지는 죄,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는 죄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그 은혜를 멸시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죄 역시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에 경종을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믿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런 성령의 역사 하심과 인도하심을 끝까지 거역하는 자들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같은 죄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여 구원의 길에서 스스로 떠나는 일입니다. 이런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은혜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히6:6절에서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을 보내신 것 이상, 우리를 구원해 주실 다른 사랑의 방법이 없습니다. 아들을 속죄 제물로 보내신 일은 하나님의 최대 최상의 사랑이요 그 이상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같은 죄에 대해서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았는데 어떻게 속죄의 제물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까?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속죄 제물이신 데 그 분을 짓밟고서는 다시 드릴 속죄 제물이 없기 때문에 오늘 본문 27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 죄’라고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히4:2절에 있는 말씀처럼, 들은 말씀과 자기의 믿음이 서로 화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들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짐짓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황하게 짐짓죄를 말씀햇는데 짐짓죄를 요약해서 말하면 진리를 알고도 행동이 따르지 못하고 예전의 생활들을 따르는 생황 그것이 짐짓죄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죄를 똑같이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기전보다 알고 난뒤의 우리의 모습은 달라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진실하게 더욱 거룩하게 거북하게가 아니고 우리가운데 거짓, 교만, 욕심, 시기, 질투 다툼들이 사라지고 하나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진정함이 나타나지는 수원영락의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타입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감정이 충분히 하나님의 마음이 충분이 실려 있는 본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3절에서부터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주님이 하신 사역, 그의 열매를 보고 나무 어떤 분인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독사의 자식들은 본 바탕이 악하니 선한 말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누가 선하다 악하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열매로 나타난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구역장이 좋은 구역장인지 열매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가 어떤 장로가 어떤 목사가 진실한가를 열매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간에 판단하시고 드러내실 것입니다.
분노하면서 누군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하지 않고 이야기해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와 더불어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요나의 표적을 보아라 우리가 요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너희는 요나의 사역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가?
예수님보다도 부족한 요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나가 니느웨 지방에서 외칠 때에 그들은 회개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깨닫고 있느냐 너희가 고백하지 않느냐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너희들이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왜 너희 자신을 속이고 강팍하게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또 그 지혜로는 솔로몬보다 우월한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을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그분은 지혜가 한이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지혜로우신 예수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긍휼을 구하지 아니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그들 안에 있는 것들을 밝히 보여주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비워진 집에 와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의 형편이 전 보다 더 나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이세대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주님의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워졌던 집은 예수로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더욱 형편이 나빠진다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을 다시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짐짓죄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다시금 짓는 죄, 모르고 짓는 죄 무엇이 더 나쁠까요.알면서도 짓는 죄는 짐짓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는 심판에 이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아는 믿음이 더욱더 자라난 사람들은 이러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 일 때에는 아무런 저촉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고 알게 되면 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우리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양심을 버리고 진실한 양심으로 예수님 앞에 저와 우리 모두가 무릎 꿇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바라보길 원함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저녁에도 회개하면서 진실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먼저 비워드리길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교만, 자랑, 명예, 지식, 자녀, 돈에 대한 욕심 모두를 비워드리게 도우소서 그리고 비워진 마음에 예수그리스도로 채우소서 채우셔서 충만케하소서 건드리기만해도 예수의 소리가 나오는 예수쟁이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