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 37장 -41

스네어 2014. 2. 20. 17:50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창 39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90%가 링컨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지금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말할 것도 없이 구스 히딩크라고 대답합니다. 한국 축구를 4강에 올려놓은 그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히딩크가 들어가서 술을 마신 술집은 유명하여졌습니다. 그가 마신 와인은 히딩크 와인으로 메뉴표에 써져 있습니다. 히딩크가 들어가 먹었던 스테이크 집에는 그가 먹었던 스테이크가 아예 <히딩크 스테이크> 가 되었습니다. 히딩크 인형, 히딩크 샤스가 등장하였습니다. 히딩크 김밥은 지금 제일 잘 팔리고 있는 품목입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는 히딩크 고향을 집어넣은 곳이 인기라는 것입니다.

 

히딩크의 고향은 네델란드 파사페르트입니다. 그의 고향에는 <우리는 Guus를 사랑한다>라고 프랭카드가 붙었고 월드컵 내내 우리나라 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히딩크를 너무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성경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누구나 좋아하였던 사람 중에 하나가 요셉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일 가요?

 

1.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

 

사람들은 자기를 잘 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히딩크를 우리는 왜 좋아합니까? 히딩크는 선수들이 잘 되게 하였습니다. 그의 밑에서 선수생활 한 선수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히딩크는 우리나라를 잘 되게 하였습니다. 월드컵에 출전하여 한번도 이긴 적이 없는 우리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1승이었습니다. 그러나 1승을 하고 났을 때 목표는 16강이었습니다. 16강을 달성한 후 84강으로 우리나라를 세계 수준에 올려놓았습니다.

 

히딩크를 왜 좋아합니까?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보면 요셉은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49장을 보녀 요셉의 복의 가지는 담을 넘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셉 하나 때문에 요셉의 가족 70명이 흉년에 다 풍족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요셉 한 명 때문에 요셉의 자손이 다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아들은 12명입니다. 그런데 12명의 아들들이 13지파를 이루었습니다. 유독 요셉만 두 지파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이 두 아들이 다 지파로 분리되어 각각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만 두 배를 받았습니다. 요셉의 축복은 자손으로 담을 넘은 가지가 되었습니다.

 

요셉 한 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보디발 집에 들어가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 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39;5)

 

요셉이 받은 복은 보디발 집으로 가지를 넘었습니다. 요셉이 그 후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을 주관하는 전옥이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39;21)

 

히딩크 드디어 요셉이 받은 복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 때문에 애굽이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주변 다른 나라들이 다 7년 흉년으로 고통을 당할 때 애굽만은 오히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로 모아두었던 양식을 주변 국가들에게 팔아 큰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이같이 요셉 한 명 때문에 주변 사람 모두가 복을 받았습니다. 이같이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 사람하고만 있으면 무엇이나 잘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왜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잘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서로가 서로 때문에 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 서로 잘 되게 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히딩크와 같이 있었던 선수들이 모두 돈도 4억 정도씩 받았습니다. 국제적인 축구 선수가 되었습니다. 몸값이 얼마나 늘어났습니까?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링컨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행복 하려거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라. 남에게 행복을 준 것만큼 행복하게 된다"

시애틀에 살고 있는 프랭크 루프 박사는 23년 간이나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불구자이면서 인생을 풍족히 살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행복하려면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 다른 불구자들의 이름과 주소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과 격려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불구자들끼리의 단체를 만들어 서로 편지로 격려하려 하였고 마침내 전국적인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매년 14천여 통의 편지를 쓰고 방송과 집필로서 수천 명의 병자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매 년 14,000 통의 편지로 그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2. 꿈이 있는 사람

 

사람들은 꿈이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지 않고 꿈을 쓰십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좋이 하지 않고 꿈을 좋아합니다.

 

히딩크는 한국에 감독으로 부임할 때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을 통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리라라는 꿈이었습니다. 히딩크는 이기고 또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말했습니다.

 

"아직도 나는 배고프다"

 

더 이기고 싶다는 말입니다. 꿈이 더 커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를 치하하는 자리에게서 사람들이 그에 한 말은 딱 한 마디였습니다.

 

"당신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히딩크는 말합니다.

 

"나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하여 선수들을 잔인하게 다루었습니다. 오해받을 때가 있었고, 오해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일 하는 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꿈이 분명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 추수를 하는 꿈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베어놓은 단과 형들이 베어 묶어 놓은 단이 자기 단을 향하여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또 한번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별을 향하여 해 달 그리고 열 한 별이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꿈을 평생 간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분명한 꿈을 가지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3.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무슨 일을 맡겨 주던지 그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월드컵 경기가 끝나고 감독에 대하여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진 팀의 감독들은 다 쫓겨났습니다.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감독은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감독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오라는 곳이 많아 즐거운 비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 국민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델란드에서 고국으로 오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그를 코치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비명입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이태리와 경기할 때 그는 전후반 그리고 연장전에 내내 서서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서 있던 자리 잔디가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태리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가끔 일어나는 정도였습니다. 최선을 다 하는 히딩크의 이런 모습을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종살이하면서 요셉은 인생을 비관하였다는 말씀이 성경에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는 과정으로 알고 열심히 종살이하였습니다. 주인이 모든 재산을 다 맡길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면 안심입니다. 마음이 든든합니다.

 

지금 김 대중 대통령은 박 지원을 왜 그렇게 좋아합니까? 무슨 일을 시키든지 마음에 들게 하여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를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김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할 때 뉴욕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김 대중 대통령을 너무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이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환영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박 지원은 돈을 좋아하는 유대인들을 수 백 명 동원하였습니다. 뉴욕에서 이야기를 들이니 유대인들은 누가 오는 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일당을 받고 태극기를 손에 들고 서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김 대통령 마음에 들어서 평생 박 지원을 그렇게 끼고 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맡던지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을 하나님도 사람들도 좋아합니다.

 

요셉은 감옥살이 할 때도 감옥생활에 얼마나 충실하였던지 이미 언급한 대로 감옥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을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요셉을 좋아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맡던지 이렇게 충실한 사람을 사람들은 왜 싫어하겠습니까?

 

마더 테레사 수녀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한 사람이 그를 만나서 칼타코를 찾았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탄 분이기에 너무나 다른 데가 많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고작 300명 고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기업가들은 하루에서 수 만 명 고아들을 먹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성공자라고 부르는 데 기업가보다 못 하지 않습니까?"

 

이 때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하라고 부르셨습니다(God did not call me successful, but faithful).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준 일에 충성하다가 하나님 앞에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맡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와 비슷한 사람을 나는 지난주간 강남 금식기도원에서 만났습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 시간에 나는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서 설교하였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오는 데 한 분이 편지를 주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상자를 찢어서 쓴 편지입니다. 종이는 엉망이었지만 그 내용은 이런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나는 목사님 설교를 3년 테이프로 듣고 있습니다. 너무나 은혜로워서 듣고 또 들으면서 계속 설교를 외우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작은 꿈이 있었습니다. 집이 없는 착한 할머니 10분을 내 집 식구처럼 모시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꿈이 54살인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지금 10분의 할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생활이 즐거운 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작은 사명을 누가 무엇이라 말하든지 충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생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인생 길은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무기로 능히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무장하지 않은 진실'(unarmed truth)였고 다른 하나는 '조건 없는 사랑'(unconditional love)였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진실이란 강제적인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원칙을 따라 진실 되게 살아가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원리로 살아가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일에 진실 되게 충실한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4. 일을 즐기는 사람

사람들은 일을 즐기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짜증내지 않고 맡은 일을 취미처럼 그렇게 즐겁게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에 임하기 전에 선수들에게 한 마디를 꼭 한다는 것입니다.

 

"승부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게임을 즐겨라"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종살이를 즐기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종살이하면서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여 주고, 주인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즐겼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 원수를 갚고 말겠다고 벼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형을 마치고 나가면 나를 모함하여 감옥에 넣은 보디발 아내를 통쾌하게 복수하리라"

 

그러면서 칼을 갈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종살이도 감옥살이도 한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있는 곳을 즐겼습니다.

 

나는 성막 세미나를 즐깁니다. 174기를 마쳤습니다. 강의가 너무 힘들지만 즐겁습니다. 같은 강의를 174번이나 하면서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목사님들이 은혜 받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편지를 주셨습니다.

 

"개척교회에서 온 목사님들 생각 좀 해 주였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세미나에 오기 위하여 일년을 저금하며 별렸습니다. 친구 목사님에게 가자고 하였더니 임대료도 못 내고 있는 데 어떻게 세미나에 가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나도 4개월 월세도 못냈는데 과부 돈을 빌려서 왔습니다. 가난한 목사들을 배려하여 주십시오"

 

일년을 저금하여 오신 목사님이 계신 것을 알고 더 열심히 하여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을 믿어 준다는 것입니다 낙관주의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낙관주의와 낮천주의는 다릅니다. 낮천주의는 미친 사람이 밤낮 희희덕거리는 것은 낙천주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될 줄 믿는 믿음은 낙관주의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근거가 됩니다.

 

히딩크는 한 번 사람을 쓰면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태리와 시합을 할 때였습니다.

 

안정환이 패널티 킥을 실수하였습니다. 온 국민들은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장전을 걸쳐 안정환이 결정 골을 넣고 끝냈습니다. 그 때까지가 117분이었습니다. 시합이 끝나고 안정환이 히딩크 감독에게 안기면서 말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패널티 킥에 실수하였는데 빼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신 감독님에게 감사 드립니다. 117분을 울면서 뛰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는 어느 속장님에게서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겨우 졸업한 분이 속장이 되었습니다. 서울로 오니 많은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은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이 능력을 주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는 성경을 잘 공부하여 속장 임무를 잘 감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학 나온 이들이 초등학교 출신 속장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점 속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이제는 대학 교수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속장님을 총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학 교수들 모인 곳에서 늘 말씀하시는 이는 총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출세하였습니다"

 

항상 맡은 일을 즐기는 이를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내가 뉴욕 아스토리아 교회에서 부흥회 할 때 만난 인상깊은 장로님이 한 분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72살에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 앞에 가서 무슨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교회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장로님은 매 주 월요일이면 교회에 나와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금 80세입니다. 8년을 한 주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일주일 모든 시간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란 고백하였습니다. 이같이 무슨 일을 하든지 즐겁게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며 즐겁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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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대해서 창 40:

 

기다리라

 

우리가 아는대로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가서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일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주인의 신임을 받아서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주인의 아내를 겁탈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지난번에는 형들의 미움 때문에 노예가 되었고, 이번에는 여자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마침 요셉이 갇힌 감옥에 바로왕의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들어 왔습니다. 어느 날 이들이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석했는데, 그의 해석대로 떡 맡은 관원장은 처형되었고, 술 맡은 관원장은 협의를 벗고 복직하였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왕에게 요셉이 억울한 형편을 알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요셉은 언제 좋은 소식이 있을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23).” 요셉은 감옥에 계속 갇혀서 2년이나 더 옥살이를 했습니다. 노예로 판 형들도 원망스럽고, 누명을 씌운 보디발의 아내도 원망스럽고, 은혜를 받고도 자기를 잊은 술 맡은 관원장도 원망스럽습니다. 요셉은 한 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 능력에 대한 신뢰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들어서 바다로 옮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큰 역사를 이룹니다. 홍해가 육지처럼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평지가 됩니다.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죽은 자가 일어납니다. 믿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역동적입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향해 달려갑니다. 믿음을 짐승으로 비유한다면 독수리가 날개 치는 것과 같고 들소의 힘찬 전진과 같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습니다. 변하는 것도 없습니다. 힘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결과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혼동 중에라도 평온하고 고요한 가운데 인내함으로 하나님을 기다린다.” “인내가 없다면 티끌만큼의 믿음조차 없다는 것이다.” 고난 받는 욥은 참고 기다립니다. 파숫군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기다립니다.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이 기다립니다. 이것이 큰 믿음입니다. 요셉은 참고 기다립니다. 지난번에도 기다린 것처럼, 이번에도 또 참고 기다립니다. 노예로 팔려도 기다렸고, 감옥에 갈 때도 기다렸고, 술 관원장이 잊어도 또 기다립니다. 감 옥 안에서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는 사람은 오랜 인내의 훈련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기다리는데 승리해야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아버지와 같이 자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까? 병 낫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베데스다 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요동하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립니까? 경기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직장이나 사업장이 잘 돌아갈 때를 기다립니까?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까? 오해와 갈등이 해결되고 화평과 연합의 날을 기다립니까? 가족이나 친구 사이가 회복되기를 기다립니까? 요셉은 감옥 안에 갇힌 몸입니다. 언젠가 자유를 얻을 것을 생각하고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기다립시다.

 

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면 인생 끝입니다. 믿음도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75세에 부름을 받아서 100살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25년을 기다렸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고 기다렸습니다. 낙심할 만하면 또 밖에 나가서 하늘의 별을 보았습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을 기다려서 애굽을 떠났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은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참고 인내하는 자만이 그가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참고 기다리는 것을 대신할 것은 없습니다. 천재성으로 안 되고, 열심으로도 안 됩니다.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룰 때까지

 

왜 하나님은 요셉을 감옥에 2년간 더 두셨습니까? 일부러 고생을 시키기 위함입니까?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입니까? 요셉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고생스러운 감옥에서 하루 빨리 가나고 싶습니다. 인간의 생각입니다. 누군들 자유롭게 지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감옥에서 더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첫째, 요셉의 교만을 막고 요셉을 더 큰 그릇으로 연단하기 위함입니다. 술 관원장으로 약속대로 요셉이 풀려난다면 교만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잘 해석하는 용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곧 여러 사람에게 불려 다닐 것입니다. 잘못하면 돈 얼마나 꿈을 해석하는 점쟁이가 될 것입니다.

 

요셉은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될 사람입니다. 꿈을 해석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고 한 나라를 경영하는 최고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좀 더 연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2년 동안 더 감옥에 갇혔지만,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축복을 준비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다림을 필수 과정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언제 애굽으로 돌아갈까,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 해방될까, 40년을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 다니면서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언제 좋은 날이 올까,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에는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기다림을 단축하려면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으로 속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야곱을 성품을 버리고 빨리 이스라엘이 되면 기다리는 시간이 줄 것입니다. 세속적인 성품을 버릴수록 기다림은 짧아집니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 만큼 좋은 작품도 나옵니다. 거친돌이 세월을 견디면서 고운돌이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풀려났다고 해도 왕 앞에 나가서 달리 할 것이 없었습니다. 바로왕이 이상한 꿈을 꾼 것은 2년 후입니다. 요셉이 바로왕에게 나아가서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아니라 2년 후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우리 시계가 틀린 것이지 하나님의 표준시계는 정확합니다. 2년이 지났을 때,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해석할 사람이 없을 때, 술 관원장은 비로소 자기의 꿈을 해석한 히브리 사람 요셉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왜 중요합니까? 때를 만나야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히브리 사람입니다. 노예 신분입니다. 이런 신분으로는 애굽의 말단 공무원도 될 수 없습니다. 방법이 무엇입니까? 아무도 못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사건을 해결하면 됩니다. 한 단계씩 승진해서 총리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7년 대 흉년을 준비할 수 있는 꿈을 해석해서 단번에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옳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역사적인 인물은 기회가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 기회의 주인공으로 요셉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루는 브룩스 목사님이 우리 안에 갇힌 한 사자와 같이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한 친구가 보고 물었습니다. “자네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러자 브룩스 목사님은 나는 급한데 하나님은 급하지 않단 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급하게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급해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사에 때가 있습니다. 씨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습니다.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계속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룰 때까지 기다립시다.

 

셋째,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때이고,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시간과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진행됩니다.

 

일반역사 위에 있는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성경은 구원 역사를 다루는 거룩한 계시의 책입니다. 하나님이 에스더를 페르시아의 왕후가 되게 했습니다. 왜 히브리인인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후가 됩니까? 하만의 음모로 죽임을 당하게 된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궁궐에 들어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이 왜 인간의 몸으로 와야 합니까? 예수님이 왜 죽어야 합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요셉에게 중요한 것은 꿈 해석이 아닙니다. 애굽의 총리가 아닙니다.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는 대단한 영광이지만 개인의 출세와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 70명이 애굽의 고센 땅으로 이주합니다. 요셉의 후광으로 번창하여 민족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요셉을 사용하기 위해 감옥에서 2년 더 고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다릴 때 주의할 것이 이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자녀가 바로 서기를 기다립니다. 건강과 물질과 명예가 회복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것은 구원입니다. 내가 구원받고, 가족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서는 빨리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됩니다. 온 식구가 빨리 구원받으면 됩니다. 전도할 사람에게 전도하고, 교회를 섬기고, 선교하면 됩니다.

 

기다리라고 할 때에는 기다리는 것이 복입니다. 달리라고 할 때에는 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복을 주십니다. 된장 맛은 묵은 것이 좋습니다. 속성배추는 김장을 담을 수 없습니다. 밭에서 제대로 자란 것이라야 김장을 담아도 맛이 있습니다. 건물은 1년만에도 짓지만, 떡갈나무는 100년이 걸려야 튼튼한 나무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기다리라

 

어떻게 해야 잘 기다립니까? 자주 시계를 보면 안 됩니다. 조급하면 시간을 더디 갑니다. 군대 가면 시간을 잊어야 합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시간은 가야 가는 것입니다. 빨리 가라고 노래를 불러도 갈 만큼만 가고,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갑니다. 이것이 시간입니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언제가 하나님의 때는 옵니다. 차라리 시간을 잊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년을 목동으로 지냈습니다. 내가 언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인지 초조했다면 병이 나서 죽었을 것입니다. 시간을 보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빠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피자도 배달이 빨리 안 되면 돈 받지 않습니다. 컴퓨터도 빨리 안 되면 갑갑해서 갈아 치웁니다. 자동차도 과속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빨리 운전합니다. 요즘은 사랑도 빨리 하지만 이혼도 빨리합니다. 2, 3년 이내 이혼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참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빨리 받는 것도 좋지만, 받은 은혜를 오래 간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일군은 재빠른 일군보다 우직하게 기다릴 줄 아는 일군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하나님과 경건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 40년의 긴 시간을 기다린 것은 묵상의 힘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던 어려운 시절을 잘 견딘 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 때문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산다는 고백을 하기까지 주님과 연합을 해야 합니다. 나의 계획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지, 나의 주장과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한분으로 만족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새벽부터 기도로 시작합니다. 성경 읽고, 중보기도 합니다. 제자훈련도 받고, 셀 모임에도 나갑니다. 교사나 찬양대나 여러 가지 은사로 봉사합니다. 정신없습니다. 어려운 성도들을 돌아보고, 축하할 성도들을 축하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합니다. 세상일도 분주한데,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한 주일이 금방가고, 한 달이 금방가고, 한 해가 금방 갑니다. 하나님의 때가 다가오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시간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조바심을 한다고 하루가 빨리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간수를 대신해서 죄수들을 돌보고,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드렸습니다. 일생생활에 충실하고 땀을 흘리면 시간이 잘 갑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을 대비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120년을 한결같이 배를 만들었습니다. 일이 없는 사람에게 하루는 지루하지만, 땀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하루가 너무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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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11 요셉의 꿈

 

창세기 37장부터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어 네 번째 族長인 요셉에 대한 記事가 이어집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서, 야곱이 노년에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네 아내 가운데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이 그녀를 사랑하여 7년간의 머슴살이를 數日 같이 여길 만큼 사랑하던 아내였는데, 요셉에 이어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잃은 요셉을 야곱은 더욱 측은히 여겼을 것입니다. 39장에 보면 요셉의 용모도 매우 준수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셉은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어머니 라헬을 많이 닮았을 것입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여러 아들보다 더욱 사랑하여 그에게만 특별히 아름다운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야곱의 偏愛는 요셉으로 하여금 이복 형들의 猜忌를 받게 하였고, 마침내는 형들의 손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가는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특별히 한 자식만을 편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異腹 형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된 요셉인데, 어느 날 요셉이 꾼 꿈 얘기는 그의 형들로 하여금 더욱 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의 내용인즉 이러합니다. 7절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꿈은 후일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의 자리에 오르고, 그 형들이 요셉 앞에 절하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형들은, 요셉의 꿈 얘기를 듣고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하면서 분노와 모욕감으로 조소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에 요셉은 다시 꿈을 꾸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얘기를 듣고 아버지 야곱마저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고 나무랐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꾸짖은 이유는1)동양식 가부장적 제도하에서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이 동생들에게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2)또한 이 꿈에 대한 발설로 인하여 야기될 형제간의 불화를 방지하기 위함과 요셉의 자만심을 없애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은 요셉의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복 형들은 요셉을 더욱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비록 요셉을 각별히 사랑하였으나, 요셉이 나약하거나 게으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과 함께 양을 치게도 하고, 멀리 떨어져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자녀들에게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고생을 알도록 하지 않는 부모는, 자녀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지나치게 아끼는 것이 자식의 장래를 망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은 아무 일에도 쓸모 없게 됩니다. 자녀에 대한 참 사랑은 무조건 그를 감싸주고 보호하는 과잉보호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며 자립심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으로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의 안부를 확인키 위해 형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멀리서 요셉을 발견한 형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악한 의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멀리서 요셉을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때의 요셉은 불과 17세의 미성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유약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10여명의 어른이요 강한 힘으로 모아진 異腹 형들이 동생을 죽이기로 공모를 한 것입니다.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혼자서 돌로 쳐죽였는데, 이러한 죄악이 이제는 형제를 죽이는 일에 共謀를 하기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짐승이라도 자기와 같은 짐승을 먹이로 찢거나 먹이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형제의 몸을 시기와 미움으로 찢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이 타락하면 짐승보다 훨씬 악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요셉을 아예 죽여 버리려는 형제들의 손에서 요셉을 구원하려고 맏형인 '르우벤'이 중재를 합니다.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형들은 요셉이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서,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 버렸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깊은 구덩이에 던져 놓고 음식을 먹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隊商들을 발견하고, 요셉을 그들에게 팔기로 합의를 합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불과 은 20에 종으로 팔려 가고 맙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요셉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의 모형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아들이듯, 요셉이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점 2)예수님께서 은 30에 팔리운 것처럼, 요셉이 은 20에 팔리운 점 3)예수님께서 자기를 처형하는 원수들을 용서하여 주신 것처럼,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여 주고 구원하여 준 점 4)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사람의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게 된 것처럼, 요셉과 함께 갇힌 두 사람의 관원 중 한 사람은 복직되었으나 한 사람은 처형된 점 5)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낮아져서 죽기까지 하셨으나, 부활 승천하여 다시 尊貴하게 되었듯이, 요셉이 종살이로, 감옥살이로 비천한 신분이 되었으나, 총리 대신으로 높아진 점 등이, 요셉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예수님의 모형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귀한 인물 요셉에 대해 앞으로 여러 시간 더 살피게 될 것입니다.

요셉을 팔아먹은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에게 그럴듯한 거짓말로 속였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옷을 벗긴 후, 수염소를 죽여 그 피를 요셉의 옷에 칠하고, 그 옷을 보이면서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이 아닌가 보소서' 하였습니다.

 

야곱은 피로 범벅이 된 요셉의 옷을 보고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였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처럼 비통히 슬퍼했던 이유는 1)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죽은지 얼마 안 되어 또 다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며 2)짐승에게 찢겨 죽어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그 비참한 상황을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모습은 그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챘을 때 에서가 슬퍼하며 울던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그 후 야곱은 자거나 깨거나 猛獸가 요셉을 덮치는 광경을 상상하며 몸을 떨었을 것입니다. 가련하게 비명을 지르는 사랑하는 아들의 음성을 듣는 듯 했을 것입니다. 위험한 곳에 요셉 홀로 심부름 보낸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죽게한 사람은 바로 자기라고 생각하며 애통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인가 생각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전날 야곱은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인 죄값으로, 라헬을 얻으려다가 레아를 얻게 되는 속임을 당하기도 하며, 품삯 문제로 외삼촌에게 열 번씩이나 속임을 당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 줄도 모르고 애통해 합니다. 많은 주경학자들은 야곱이 이와같이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은, 그가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속인 죄값이라고 말합니다. 6:7'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씨를 심었으니, 이제 그가 속아넘어가는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씨, 믿음의 씨를 심어서, 좋은 열매, 축복의 열매를 거두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에 관한 기사에서 몇 가지 귀중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구덩이에 던지워 졌다가 애굽으로 팔려 가고, 거기서 모함에 걸려 감옥에 갇히고, 또 꿈을 해몽해서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고, 그로 인해서 야곱의 일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고, 430년만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고 하는 모든 사건들이, 마치 장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단 한 가지도 우연하게 된 것이 없고, 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일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생도 모두 다 섭리하십니다. 큰 일, 작은 일, 이런일, 저런 일을 막론하고, 그 어느것 하나도 하나님의 섭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2. 연단 받는 요셉입니다.

아직 17세의 어린 요셉에게 밀어닥친 시련들은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반갑다고 형들을 찾아 왔는데, 형들은 갑자기 달려들어 험악한 얼굴로 깊은 구덩이로 던져 넣을 때 '형님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제발 나를 살려 주세요' 하면서 얼마나 애원했겠습니까? 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갈 때, 몇 번이고 뒤돌아보고 뒤돌아보면서 끌려갔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의 생애는 이렇게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장래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오늘 여러분의 현실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것일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8:18'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영광스런 내일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요셉처럼 아름다운 꿈을 갖고 살자는 것입니다.

먼저 요셉 하면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는 곧 꿈꾸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요새 말로 하면 환상(vision)을 가진 자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꿉니다.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던 잠재의식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영롱한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꿈이 없는 사람은 성공이 없고, 꿈이 있는 사람은 장래가 있으며 또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희망, 환상, 비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꿈을 갖고 살아야 합니까?

 

1)꿈 자체가 올바른 꿈이어야만 합니다.

꿈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좋은 꿈이 있는가 하면, 나쁜 꿈이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의 유익만을 위한 꿈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어떤 꿈을 가져야 합니까?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꿈, 이웃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도, 사업을 하고 공부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을 꾸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꿈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꿈이어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는 그의 꿈의 성취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민족을 구하고, 이방 민족인 애굽까지 구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2)꿈의 실현을 위해 어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요셉은 그의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는 고생을 하게 되었고, 애굽에가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종살이도 하고 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요셉은 그 찬란한 꿈 때문에 불과 17세의 어린 나이에 불어닥친 모진 인생의 비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 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지만, 한시도 그가 꾸었던 꿈을 잊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 요셉은 그의 꿈대로 대애굽 제국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살아야 꼭 좋은 것이 아닙니다.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쉽게 공부하고, 쉽게 성공하고, 쉽게 부자가 되고. 쉽게 출세하고, 인생의 모든 일이 결코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의 길은 가시밭 길이요, 영광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벼락 성공, 벼락부자, 벼락 출세를 꿈꿉니다. 이것은 허황한 망상이요, 정말 벼락 맞을 생각입니다. 씨뿌리지 않는데, 싹이 날 리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는데, 실력이 향상될 리 없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 아닙니까?

 

3. 꿈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라는 말은 우리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훌륭한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꿈이라는 단어만큼 허황된 단어도 없습니다. 같은 단어 속에서 이렇게 극과 극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실현의 문제입니다. 그 꿈이 실현되어질 때 그것은 큰 힘을 가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지 않으면, 그 만큼 허망하고 의미 없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꿈은 언제나 실현되어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꿈에 대한 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꿈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꿈이 실현되려면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다 이루어진 상태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꿈을 가지고 그 꿈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일을 한다면, 그리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꿈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꿈을 갖도록 창조하셨고, 따라서 꿈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2: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은 인간에게 꿈을 갖도록 역사 하십니다. 요엘 2:28'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에게 꿈을 일으켜 주는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꿈을 주지만, 반대로 악령은 꿈을 깨뜨려 버리고 실망케 하고 낙심케 하고 절망케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축복하실 때 먼저 그 마음속에 꿈과 소망과 비전을 불어넣으십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보랜은 '설교는 환상을 주는 것이다. 꿈을 주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을 붙잡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대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모두 주인 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부흥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발전에 대한 꿈이 없는 신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구역장, 남녀 선교회 회장, 각급 주일 학교 부장과 교사, 청년회, 성가대 등등....모두 자기가 속한 부서의 발전에 대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며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를 귀하게 보시고 크게 들어 쓰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김일성은 이밥(쌀밥)에 쇠고기 국물을 먹는 것이 북한 주민의 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성도는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의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 싶다'고 노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큰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꿈을 꾸십시오. (동신 교회 권사-미얀마에 예배당 건축의 꿈을....어제 결혼한 벧엘 교회 청년의 꿈?-가장 많은 십일조, 가장 아름다운 교회 건축.....우리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도......우리 교회에 시급한 것들?) 청년들이여! 모세처럼 민족 구원의 큰 꿈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구역 공과-바울의 불타는 야망?) 꿈이 아름다워야 삶이 아름답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영생의 소망, 천국의 소망이 잠시도 시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요셉이 꾼 꿈이 후일 다 이루어졌듯이, 여러분의 그 아름다운 꿈들이 모두 현실화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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