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3편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믿고 의지하였던 다윗의 입에서 또 다른 이름이 불려 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만 아니라, ‘목자 되신 여호와’로 믿고 의지했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첫째, ‘목자 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이 불려 지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
‘여호와 로이’(목자 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은 다윗이 지은 노래 시23편에서 최초로 불려지고 있으며, 그 이후에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목자 되신 여호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 로이’(목자 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이 불려지는 여러 역사적인 배경을 살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다윗에 의해서 불려진 ‘목자 되신 여호와’의 모습(시23편)
아마 이 시는 다윗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세월을 보내고서 인생의 뒤안길에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 오셨는지 과거를 회상하면서 장차도 평생토록 그렇게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지은 시로 생각이 됩니다.
다윗도 뿌리깊은 대적 사울에 의해 그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며 쫓겼던 그 파란만장한 세월을 되돌아봅니다. 그 무수한 전쟁의 날들과 자식 압살롬의 반역, 밧세바와 우리에 대한 쓰라린 범죄와 그 슬픔의 뒤안길을 회상해 보면서 그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항상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자신이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았던 목동이었음을 회상해 봅니다. 그때 그는 자신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가 양에 대한 목자의 관계보다 더 아름답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까지의 그의 모든 인생의 폭풍과 압력 속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그토록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셨기에 이제 그는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앞으로의 남은 생애도 그분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이제 우리는 다윗이 그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어떠한 점을 들어서 ‘목자되신 여호와’로 노래하고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다윗은 크게 세 가지 점을 들어서 목자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 먹이시고 기르시는 분(2절)
2절에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다고 했습니다. 양의 생태를 잘아는 분들의 글에 의하면 양이 꼴과 물을 마음껏 먹고 마셔서 배가 부르면 누워서 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양인 우리를 위해서 베푸시는 가장 중요한 은혜는 좋은 꼴이 있는 푸른 초장과 맑은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배불리 먹이시는 것입니다. 양인 우리가 배불리 먹고 마셔야 할 영적인 꼴과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말씀의 꼴이 풍성한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다니면서 배불리 먹고 마시며 튼튼히 자라납니다.
2) 인도하시는 분(3절)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양만큼 어리석고 길을 잘 잃고 헤매이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거나,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인도가 있어야지만 꼴이 있고 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으며, 안전한 길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양인 우리를 위해서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은혜는 길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인도하시되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3) 보호하시는 분(4절)
4절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했습니다. 양은 자기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짐승이어서 목자의 보호가 있어야지만 안위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양인 우리를 위해서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은혜는 늘 함께 하심으로 보호하셔서 안위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에스겔 선지자에 의해서 계시하신 목자의 모습(겔 34장) -잃은 양을 찾으시는 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사람 목자들을 많이 세우셨습니다.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도록 하며, 이리떼와 같은 이방나라에게서, 그리고 우상숭배의 악습에서 보호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삯군 목자가 되어 양들을 잘 돌보지 않고 흩어지게 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삯군 목자들에 의해서 흩어진 양들을 다시 모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겔34:16)
여기서 우리는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은혜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혹시 길을 잃고 헤매 일 때 찾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는 잃은 양들을 찾으시려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일백 마리의 양 중에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로 비유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눅15:3-7). 그리고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직접적으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둘째, 목자의 인도와 관련된 도리들
이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양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왜 인도하시는지, 어디를 향해서 인도하시는지, 인도의 방식과 목적, 방향과 목적지 등 목자의 인도와 관련된 도리들을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기 위해서는 인도해 가시는 도리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인도가 아닌 것을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인도나 되는 것처럼 헛된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목자의 인도를 잘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우선 목자가 양을 어떻게, 왜 어디를 향해서 인도해 가시는지, 목자의 인도와 관련된 전반적인 도리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인도를 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인도받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인도하시는 방식
우선 목자가 양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그 인도의 방식부터 알아야 합니다. 목자가 인도하시는 방식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인도를 받기 위해서 엉뚱한 곳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목자가 어떻게 양을 인도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내용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음성을 들려주면서 따라오게 하십니다(요10:2-5).
(요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요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10: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당시 팔레스틴에서 양을 치는 풍습을 배경으로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마을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리가 있어서 저녁에는 그 공동 우리로 인도하여 쉬게 하였다가 아침이 되면 주인들이 와서 각자 자기의 양을 불러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먹이고 저녁이 되면 또 다시 그 마을의 공동 우리로 인도해 와서 거기서 숙박하게 합니다.
그리고 문지기를 두어서 밤새 양을 지키게 하였다가 다시 다음날 아침에 주인들이 와서 자기의 양을 데리고 나갑니다. 그런데 양들은 자기 주인의 음성을 알고 따라가는 것이지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에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도망합니다.
이러한 팔레스틴의 양치는 풍경을 비유로 당시의 유대인들이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에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도망하는 모습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찾아서 인도하러 오신 선한 목자이심을 알지 못하고 따르지 아니했고, 소수의 예수님의 양들만 음성을 알고 따랐습니다.
이렇게 목자는 음성을 들려주면서 따라오게 하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서 따릅니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에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도망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과연 예수님의 양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고 따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자는 이미 거듭나서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양입니다.
그리고 양된 자들이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그분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면서 따라 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간혹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성도들이나, 무엇을 보았다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특별계시를 종결하신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들이 말하는 환청이나 환상과 같은 방식으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인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따라 오게 하신다는 말씀은,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말씀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인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셔서 인도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양인 우리가 들어야 할 목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은 ‘환청’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따라 오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또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음성을 들려주신다고 하니까, 무슨 꿈속에서 성경 어디에 있는 말씀을 읽어 보라고 하시는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예언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처럼 오해하고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만 쫓아다니는 우매한 성도들도 참으로 많이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마치 점쟁이가 점치듯이 성경을 가지고 미래를 점치거나, 예언 기도라면서 기도를 가지고 미래를 점치는 짓들을 위해 우매한 성도들을 몰고다니는 이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 아픕니다. 이런 현실이 먼데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은 ‘성경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는 가운데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은바 말씀이 나의 사상 하에서 걸어가도록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양인 우리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으려면 성경 말씀을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해서 깨달아가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는 우리 안에 ‘인식된 말씀’ 즉 ‘깨달아진 말씀’과 더불어 하십니다. 그러니까 다른 희한한 방법으로 인도를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괜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겠다고 예언 기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거나, 꿈속에서 무슨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그런 우매한 짓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잘 깨달아 가는데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뜻을 가지고 게신가를 알아가야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2) 무리 가운데서 인도하심(요10:16)
(요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두 번째로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중요한 방식은 양을 한 마리씩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양을 인도할 때에 떼를 지어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양이 양 무리(양떼)를 떠나면 벌써 목자의 인도에서 벗어나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비유 가운데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비유에서도 양이 목자의 인도를 받으려면 무리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이고, 무리를 떠나면 벌써 목자의 인도에서 벗어나서 길을 잃고 헤메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때로는 실로한 양 하나를 찾아 나서기도 하는 것이지만, 일상적으로는 양을 무리를 지어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떼를 떠나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찾아 오셔서 건지시고 다시 인도해 주시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우리가 목자의 인도를 받아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목자가 찾아 와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자의 인도를 받으려면 양 무리인 교회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저회 가운데서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양 무리인 교회를 인도해 가시는 가운데서 양인 우리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흔히 하나님의 인도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받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개인적인 인도 이전에 전체 가운데의 인도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전체를 경영해 가시는 과정에서 우리 개개인을 상대하시는 것이지, 그저 개개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잘되어서 잘 살라고 뒤나 봐주는 식으로 상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구속의 역사를 타락 이래로 가족 단위로 펼쳐 오시다가, 히브리 민족으로 확대하시고, 마침내 이방인에게 까지 펼치시되,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서 수리아의 안디옥과 로마와 서구라파를 지나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 한국에까지 들어왔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마을까지도 들어와서 오늘 우리에게까지도 구속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직 한국 땅에 복음이 들어오기 이전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결국 그들은 구속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역사 전체를 경영해 가시는 과정에서 우리 개개인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실 때에도 이렇게 양 무리 전체를 인도해 가시는 대열 속에 넣어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양 무리 가운데서 인도를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양 무리를 인도해가고 계시는데, 그 양 무리를 떠나서 따로 인도를 받겠다고 한다면 인도를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양 무리를 인도해 가시는 대열에 끼어서 함께 인도를 받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교회가 진행해 가는 신령한 행진의 코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 코스에서 이탈해서 자기 혼자 무슨 금식기도를 하거나, 산에 올라가서 산 기도를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양 무리의 행진을 떠나서 자기 혼자, 고립된 단독자로 서게 되면 하나님의 인도를 정상적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나아가는 신령한 목표와 방향을 따라서 자기 개인의 인생 행보의 보조를 맞춰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양 무리인 교회와 별개로 순전히 자기 개인의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나름대로 다 정해놓고 그 쪽으로 나아가면서 아쉽고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무슨 길을 열어 주셔야 겠습니다 한다면, 그것이 무슨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겠습니까? 그런 것은 결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소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의 한 분자로서의 자기 인식을 뚜렷이 가지고,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를 신령하게 받아가는 그 코스에다가 자기 개인의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맞춰 나가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세입니다. 이를테면 직종이나 직장을 선택하는 것까지도 교회를 건실하게 이루기에 유조(有助)한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하는 것이지, 교회를 이룸의 정신과는 전혀 별개로 그저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좋은 직장으로 인도해 주시길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령하게 인도해 가시는 양 무리인 교회 가운데 들어가서 개인의 인생 행보를 내딛어야지만,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3) 사람 목자를 세워서 인도하기도 하심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목자로 세우셔서 목자 없이 길 잃은 양과 같이 애굽의 이리 떼에게 뜯기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서 건져 내시고, 광야 길을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사울을 왕으로 삼아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길 잃고 헤매 일 때에 다윗을 목자로 세우셔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왕조 이후에 왕과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목자로 세우셨지만, 대부분이 삯군 목자로서 양을 수탈하고 다 흐트러뜨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삯군 목자들을 타매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양들을 찾으시고 불러 모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렘2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렘23: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 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3:3)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렘23: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34: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겔34: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겔34:3)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겔34:4)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겔34: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겔34:6)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겔34:7)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4:8)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겔34:9)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4:10)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겔34:1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겔34:12)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34:13)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겔34:14)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겔34: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겔34: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겔34:1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의 사이에 심판하노라 (겔34:18)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겔34:19)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겔34: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특별히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과 같은 한 목자를 세워서 먹이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다윗과 같은 목자’로 오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보내셔서 목자 잃은 양들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겔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성신님을 목자로 보내셔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배반하고 고향에 내려가 옛 직업인 고기잡이에 종사하고 있던 베드로에게 찾아 가셔서 그가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시는지를 세 차례나 확인하시고, 베드로를 목자로 세워서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셨습니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21: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요21: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그래서 우리 곁에는 인도자이신 성령님이 계시고, 또 교회에 세워주신 사람 목사가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성신님의 인도를 받고, 교회에 세워주신 목자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신약시대에는 다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느 지역이나 어느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이 다 공통으로 누리는 은혜이지만, 교회에 세워 주신 사람 목자는 다 달라서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선한 목자보다 삯군 목자들이 많아서 다 흩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교회에 세워주신 목자가 선한 목자로서 목자의 역할을 잘 해줘서 그 교회의 양 무리들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있는 의의 길로 인도를 받아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고 여호와의 거하시는 집으로 안전히 인도를 받아 가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삯군 목자들 때문에 교회의 양 무리들이 괴로움을 당하다가 뿔뿔이 흩어지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선한 목자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복이요, 삯군 목자를 마나면 참으로 불행입니다. 그래서 목자로 세움을 받은 자는 삯군과 같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선한 목자로서 양 무리들을 잘 먹이고 인도하고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선한 목자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아니면 삯군 목자가 되어있지는 않는지 반성하게 되고,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하나님의 양 무리들을 잘 치고, 잘 먹여야 한다는 책무를 강하게 느끼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2. 인도하시는 목적 :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시23:3)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3)
지금까지는 목자께서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지 인도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했고, 이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인도하시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양 무리인 우리를 인도하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어 발휘하게 하시고, 의의 길로 걸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목적은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인 우리가 좋은 꼴과 물을 잘 먹고 마셔서 건강하게 자라가면서 생명을 더욱 풍성히 발휘하게 하시고, 의의 길로 걸어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아가면서 신령한 꼴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품성을 발휘하며 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목자를 떠나서 먹지도 못하여 파리하게 말라서 죽어가거나 불의한 길을 걸어간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간혹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에 자기의 현실적인 유익과 관련해서 어떤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분들을 보게 되는데, 그러한 처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소이가 못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신령한 꼴을 먹고 자라기 위해서 양 무리인 교회를 인도해 가시는 그 코스를 따라가면서 아름다운 품성을 발휘하고 의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인도하시는 목적지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양인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목적지는 ‘여호와의 집’입니다. 목자가 아침에 양들을 먹이려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데려갔다가 저녁에 다시 인도해 오는 목적지는 양들이 거할 수 있는 ‘양 무리’이듯이,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최종적인 목적지는 ‘여호와의 집’입니다.
우리는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여호와의 집에 이르기까지 목자이신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가 인도받아 가야할 최종적인 목적지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때에 이 세상에서 좀 더 안락하게 사는데 목적을 두고서 그런 길이 열리기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품’을 목적지로 정하고, 거기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시길 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다스림과 보호를 받으며 사는 세계를 향해서 인도를 받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품을 떠나서라도 이 세상에서 좀 더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길들이 열리기를 구하는 것은 목자의 인도를 받는 소이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직장이나 배필을 구할 때에 이 세상에서 좀 더 누리게 해줄 수 있는 직장이나 배필을 인도해 주시길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품에서 살아갈 수 있는데 합당한 목적인 직장이나 배필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맺는말
오늘은 ‘목자 되신 여호와’(여호와 로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맬 때에 찾아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인도하시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들려주심으로 인도하시고, 무리 가운데서 인도하시고, 사람 목자를 세워서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양 무리인 교회 가운데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세우신 목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양 무리들과 함께 인도를 받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통해서 교회라는 양 무리를 영의 꼴들이 풍성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먹이실 때, 그 가운데 들어가서 열심히 뜯고 먹고 자라서 풍성한 생명을 발휘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마침내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