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한국교회여!(2)
K. Chung 필자는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에서 30년 목회 후 2008년 3월에 은퇴한 목사입니다.
texas.chung@gmail.com
현대 교회는 외면상으로 크게 성장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허구일 뿐…
교회 성장론자들이 득세함으로 교회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교인들은 소비자심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교회를 찾기 이전에 사람의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의 소비심리에 구색을 맞추어 주는 수퍼(한국에서는 구멍가게를 수퍼라고 함)로 전락했습니다.
시장 지향 교회라는 말은 McChurch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맥도널드에 가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는 것과 같이 자기 취향에 따라 교회를 선택한다는 뜻). 따라서 온 천하 보다 더귀한 영적생명인 신앙(예수)이 상품(레스토랑의 메뉴 보드)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또는 <야베스의 기도>와 같은 서적들은 기독교 서적의 베스트셀러 입니다. 이런 책들은 자아실현, 자아존중(자존심 살리기), 자아 분석 등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육의 자아가 죽어야 영이 산다는 예수님의 명령과는 정반대의 길을 예수의 이름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천로역정(죤 번연), 고백론(어거스틴) 또는 기독교의 고전과 경건 서적, 선교사의 전기 등에는 먼지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소비주의 또는 상업주의와 결혼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첫째는 성서의 본질을 희석시켜 버렸습니다. 예수의 구원은 사라지고, 죄의 회개와 촉구는 강단에서 <매기의 추억>이 되었고, 따라서 어떤 죄를 지었어도 헌금만 많이 하면 다 용서가되는 <면죄부>라는 편리함과 교환됩니다. 예수는 자아 완성 또는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당합니다.
둘째는 교회의 본질을 변질하게합니다. 교회는 스트레스 해소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좀더 편안하게 해 주려면 이교도(예수의 구원과는 전혀 관계없는)들의 행동이나 생각까지도 모두 받아들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복음을 왜곡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잃어버림에 있습니다. 복음이 아닌 것으로 성장하는 교회들 안에는 심리치료술, 체면술, 건강과 물질의 부유함에 목을 매달고 있습니다. 신종이단(조엘 오스틴, 뉴에이지 신앙<텔레비젼의 토크쇼 호스트 오프라>)들은 군중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구하는 것은 다 들어 주신다"는 논리를 설파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마약(처음에는 마약의 환각에 행복을 맛 보았으나 점차적으로 영적 죽음으로 몰아내는)을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권위가 박탈당했습니다. 현대인들에에는 윤리의식이 심히 결여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현대인에게 결여된 윤리문제를 돈과 교환하며 눈감아주고 내적 평화만를 제공합니다. 뉴 에이지 운동과 흡사합니다. 진리를 천명 하고 구현해야 할 교회의 권위를 맘몬 신앙과 바꾸어 버렸습니다. 성공신학, 영웅신학이 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교인들을 책망하고 징계하여야 할 교회는 힘을 잃어버린 채 도리어 죄 짓기를 더 권장하고 있습니다. 교단은 사회법으로 범법자로 판결을 받은 당사자를 "황금으로 교단에 공헌했다"는이유를 들어, 변명하며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부여했으니 누가 교단의 법질서를 지켜려 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집단(교단), 교권이 용서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더 이상 제자도 없고 훈계도 없으며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라는 간판을 내걸은 비지니스(사업체)로 전락했습니다. 진리를 천명해야 할 교회가그 권위를 상실했읍니다.(기독교 목사를 "먹사" 로 기독교를 "개독교"로 부르는 일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교인들을 책망할 영적인 힘을 상실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죄 회개의 촉구하거나 권면하면 청중은 들으면서 속으로 "너 나 잘해"라고 조소합니다.)성공주의자 목사들이 득세하여 소비주의 또는 상업주의와 결혼한 결과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서적 교회성장(성공주의자들의 관점이 아닌)은 교회 성장전문가들이 아니라 주님이 하십니다. 교회가 상업화로 달리기 경주를 하며 첨단 문명의 이기 설치(영상시설, 대형건물, 연극, 음악, 운동시설 등등)를 중요시 하기 보다는 성서에 더욱 충실하야 합니다. (너희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어찌하여 나의 말을 듣지 아니하느냐?)
교회가 성서적 신앙에 입각하여 거룩하게 살 것을 담대히 외치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된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챨스 칼슨) 그러나 교회가 교회의 정체성을 잃고 소비주의와 결혼하여 "믿는 대로 된다"는 식의 설교로 교회 성장을 이룩했거나 이루고 있다면 "인간이 만든 성장" (마틴 루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룩함으로 살며 성서적인 진실한 믿음(예수의 삶과 사상을 따르는)은 주님의 판단 기준입니다. 진실한 교회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즉 주님의 몸인 교회는 교묘한 상업주의나 호화 찬란한 시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의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예수의 영, 정신, 마음)과 전폭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동유럽의 교회들, 중국의 가정교회들, 북한의 가정교회들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굳세게 지켜 나갔습니다. 그들은 교회성장이나 마음이 편해 지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총구(AK-47) 앞에서 한가로이, 마음 편함을 걱정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