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정년은?
손석태 (철학박사,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오늘 날 대부분의 한국 주류의 교단에서는 목회자의 정년을 70세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령 제한 때문에 아직도 건강한 가운데 젊은이 못지않게 일할 수 있는 목회자들이 강단을 떠나고, 또 후임 목회자를 세우는 과정 가운데 교회에 적잖은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가 꽤 많다. 그래서 목회자의 정년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목회자의 정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흔히 교회의 사회적인 논의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현실적인 필요나 현상적인 편의성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의 정년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일부의 사람들은 노령의 목회자가 갖는 목회의 비효율성이나 후배들을 위한 인사 적체 현상을 들어 정년제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과연 이러한 제도가 성경적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교회의 헌법과 규칙은 반드시 성경에 그 근거하여 그 원리를 찾고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정년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둘째로 교역자의 정년제에 대한 접근은 구약 성경에서 교역자가 누구인가하는 정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일꾼으로는 제사장, 레위인, 선지자, 왕, 사사들, 나실인, 심지어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거나 물을 길었던 느다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교역자는 제사장과 레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일정한 절차를 받아 그 직분을 여호와로부터 위임받아,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전념하며, 백성들이 여호와께 드린 제물이나 헌물, 그리고 십일조로 생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필요에 따라 세운 사람으로 역사적으로는 선지자가 없었던 시기도 많았고, 그의 직무도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로 제한적이었다. 그들은 성전 밖에서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제사장직이 항존직이라면 선지자직은 임시직이라고 할 수 있다. 더더구나 여선지자는 임시적이고 일시적으로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여자 목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레위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특별히 선택하여 제사장에게 선물로 준 사람들로 회막 섬기는 일을 맡은 자들이다(민 18:6). 레위인들은 여호와께 흔들어 바치는 제물이다(민 8:11). 이스라엘 자손 중 처음 태어난 자들은 모두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들을 대신하여 레위인을 받으셨다. 따라서 레위인은 여호와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회막을 섬기며, 제사장을 도와 제사 일을 하게 하시고(민 18:2,6) 그 대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십일조를 유업으로 주셨다(민 18:21).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땅을 주시지 않았다. 레위인들은 직무상 근본적으로 제사장들과는 다르다. 레위인들의 직무는 회막을 섬기는 일이나 제사를 수종드는 일이나 성막이나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노동이 수반되었다. 따라서 그의 직무의 연한을 25세부터 50세까지로 못을 박고 있다. 민 8:25에는 “오십 세부터는 그 일을 하는 것에서 물러나 더 이상 봉사하지 마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레위인의 정년제를 오늘 날의 목회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사장과 레위는 근본적으로 직무가 다르다.
출 28:1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아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데려와 그를 위한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하라는 명령을 주신다. 이들은 제사장 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제사장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수송아지와 숫양으로 번제와 화제를 드려 위임식을 하고, 날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대속죄일에는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을 대신하여 속죄하는 일을 하였다. 제사장들은 율법에 규정하는 제반 율례와 법도를 집행하는 일을 하였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문둥병자의 진찰이나 처방, 간음한 여자에 대한 테스트나 처벌 등의 임무도 주어졌다. 따라서 제사장은 성전 제사와 같은 종교적인 지도자로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사회적 권한도 가진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아론의 후손들에게 제사장직과 더불어 “영원한 소금 언약”( 민 18:19)과 “평화의 언약” (민 25:12-13)을 맺어 무한정한 세습적인 제사장직을 주셨다. 그리하여 이들은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친 모든 예물을 주관하고, 또 그것을 그들의 영원한 몫으로 받았다(민 18:8-19). 제사장들에게는 레위인들과 달리 직무의 연한이 없다. 죽을 때까지 직무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죽음 자체가 제의적인, 신학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피성에 피신한 살인자들을 위한 대제사장의 역할이다. 고의성이 없이 부주의로 살인한 사람은 도피성으로 도망가서 피의 보수자로부터 그의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도피성을 떠날 때는 그의 생명을 보호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살인자는 사실상 도피성에 갇혀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는 자기의 소유의 땅으로 돌아와 살 수 있었다(민 35:25, 28,32). 대제사장의 죽음이 모든 비고의적인 살인자들에게 내리는 사면이 된 셈이다. 이 때 대제사장의 죽음은 살인자의 죄짐을 대신 지고 죽은 대속적 의미가 있다.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기능도 있었다(출 28:36-38). 뿐만 아니라 살인자의 도피성에서의 은둔 생활의 기간이 판사나 도피성 사람들의 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수명과 연계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이 판결은 하나님의 판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죽음은 단순한 대제사장의 세대교체 이상의 의미가 당시 사회에 있었다. 죄수들이 석방되고 새로운 대제사장으로부터 새로운 법질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의 수명은 개개인에 따라서는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임기를 정해서 제사장 직분을 떠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의 죽음 자체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대제사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성전, 제사, 제물, 제사장 등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 성전 중심의 제도나 제사나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 따라서 성경에서 우리 목회자들을 향하여 제사장이라고 일컫는 곳이 없다.
따라서 구약 성경의 제사장과 목회자 사이의 직접적인 연속성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그리스도-목사 사이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이 아니고 포괄적인 직무상의 연속성은 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전과 제사와 제사장직이 완성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성전된 자기 몸,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전하는 자로, 또 어떤 이들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엡 4:11). 여기서 특히 목사는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안수받고 위임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례와 성만찬 등의 성례를 집례하며,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제반 사무를 관장하는 일을 하며, 성도들의 헌금으로 생활한다. 이러한 면을 살펴볼 때 목사는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그 직무상 많은 병행점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목사는 포괄적인 직무상 제사장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목사의 정년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사로 안수 받은 사람에게 법적으로 정년제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목회자는 목사로 안수받고, 청빙 받은 교회에 위임이 되었을 경우 그의 정년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보수 개혁교단은 거의 목사 정년이 없다. 미국 PCA의 총회장을 지내고, 낙스신학대학원의 이사장 및 총장을 역임한 제임스 케네디 목사도 임종 때까지 담임목사직을 유지하고 소천하였다.
아무리 우리 인간들이 보기에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성경의 기본 정신에 어긋날 때는 고쳐야 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목사의 임기를 법으로 정하는 것보다 목사 개인이나 교회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은퇴하고 싶을 때 은퇴하고, 일하고 싶을 때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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