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들을 배웁시다.3 (히11:32-40절)
옛말에 온고이지신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통해서 새것을 배우고 옛것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배우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흔들림없는 바른신앙을 지켜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점에서 믿음의 조상들을 배워야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있는 신앙인물의 실례로서 사사시대에 살았던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왕정시대의 사람 다윗과 선지자로서의 대표성을 가지는 사무엘이 기록되고 있는데 믿음의 조상 누구인들 완벽한 사람이있겠습니까마는 앞서 보았던 족장시대이전과 이후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는 신앙의 모범에 들수없을만큼 결점이나 실수가 많았던 인물들입니다.
기드온은 삿8:24-27절을 보면 말년에 매우사치한 생활을 하였을뿐만 아니라 에봇을 만들어 그것을 우상으로 숭배하게함으로서 집안의 올무가 됩니다.
또 바락은 삿4:12-16절을 보면 다른사사들처럼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한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으로서 여선지자 드보라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였던 소극적인 인물입니다.
삼손은 삿16:4-22절에 보면 어리석게도 블레셋여인인 들릴라에게 유혹되어 자기사명을 망각하고 끝내 두눈이 뽑힘을 받는 실수가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입다는 삿11:34-40절에 보면 무모한 서원으로 딸을 제물로 바쳐야했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의 대열에 들어올수있었는가?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믿음의 조상들이라고해서 반드시
1) 흠없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것입니다. - 실수나 결점은 누구나에게 있는겁니다. 역사상 의인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롬3:10절이하에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2) 그들이 흠없는 완전한인간이 못되지마는 하나님을 절대신뢰하며 순종하는자라는점입니다. 인생을 사는동안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하지만 하나님께대한 믿음 때문에 다시일어나 믿음의 역사를 사는사람이 바로 참 신앙인이라는 것을 말하는겁니다.
3)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대속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예수가 필요한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의로운행위로 누구하나 구원얻을자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나의결점을 온전히 다 아시지만 불쌍히 여겨 구원해주심으로 믿음가운데 두시는 은혜의 하나님께 나아가야한다는것입니다. 그 때 불완전하고 흠이 많고 실수와 결점투성이지만 하나님께 사용함을 받는것입니다.
그런점에서 흠이많고 결점과 실수가 많은우리가 이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려면 믿음의 조상들의 어떤삶을 본받아 하겠는가? 33절 이하를 근거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믿음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배우자는겁니다.(33-34)
1) 나라들을 이기는 능력 -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침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가나안땅을 정복하여 약속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나뉘어줍니다. 비록 적극적이지는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락은 하솔왕 야민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이기고 나라를 지킵니다. 항아리와 횃불로 미디안을 물리친 기드온,
암몬을 이긴 입다, 블레셋은 물론 여부스와 아말렉 에돔족속을 정복한 다윗등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전쟁에 나가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겁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삶입니다. 믿음은 능치못하는일이 없다고 하는데 그냥 믿기만 되는것이아니라 반드시 전제가 필요한데 능력주시는자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사사들이나 다윗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때 그 믿음이 승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장된 승리앞에서 망설이지말고 믿고 나아갑시다. “할 수 있다 하신이는 나의 능력주하나님 나를 바라보시며 능력준다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주 할수있다하신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할수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능력주시는자안에서 다 이루실줄 믿고 그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의를 행하며 약속을 받는 능력 - 연약하면서도 강하게됨
- 사무엘에 대해서는 삼상12:3절이하를 보면 공적으로 이스라엘백성들앞에서 흠잡을데가 없었던 정직하고 공의로운지도자로서 자신을 보이고있으며
- 다윗은 사사시대이후 왕정시대사람으로서 삼하7:8-16절을 보면 사무엘을 통해서 예언하시되 가문의 보존과 왕권보존을 약속하시는 모습을 볼수있는겁니다.
- 히스기야왕은 육신이 병든중에 하나님께 구하므로 생명연장15년받습니다.
다 약속에 근거한 삶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약속의 사람들입니다.
저와여러분이 이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연연하지 않을수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약속 때문입니다.
“사41:10절에서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두려울것이 없는겁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거나 불의 세력을 멸하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자입에서 구출하시고 그의 세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구하시겠다고 하실 때 그 믿음대로 구원함을 받지않습니까? 이것이 약속에 근거한 삶입니다.
약속을 붙드는자는 결코 좌절하지않습니다. 실망하지않습니다.
오히려 능력있는 삶을 삽니다. 믿음으로 그 능력을 가지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을 통해서 능력있는 삶이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고통과 고난속에서도 인내하는 삶을 배우자는겁니다.
1) 부활을 소망하는 삶이기에
구약시대인물로는 엘리야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되살림 받은 사렙다 과부(왕상17:23)
엘리사를 통해 그 아들을 되살림 받은 수넴여인(왕하4:35-37)
신약시대인물로는 예수를 통해 죽었던 독자가 장사지내는중에 살림을 받은 나인성의 과부 (눅7:11-14) 죽은지 나흘만에 썩은냄새가 나는데도 살아난 나사로(요11:17-44)
2)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기에 - 영생소망
예수님은 자신이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저주하고 핍박하는자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하던분이셨습니다.
모든사람의 대속물로 드려지는 아픔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신것만해도 감사한일인데 죄없는자로서 죄와허물로 죽을 우리를 대신하는 고난과 고통을 받으셨던겁니다. 이것이 죄인을 위한 거룩한고난입니다.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사건은 참으로 많습니다.
- 희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힘, 돌로치는 것, 톱으로 켜는 것, 칼에 죽는 것
외경인 마카비2서6:18,19,28절에 보면 마카비가에 엘리아살이 받은 형벌이 나오는데
죄수를 형틀위에 뉘어놓고 사지를 팽팽하게 하여 말둑에 잡아맨뒤에 사지가 연결되는 부분을 창으로 찔러 피를내고 나서 배와 가슴을 북치듯이 쳐서 죽이는 비인간적인 극형으로서 이것을 받아죽었고 그 어머니와 7형제가 같은 형을 받아 죽었는데 그들이 죽으면서 자신을 죽이는 왕에게 “당신은 저주받은 불쌍한 사람이요 당신이 이생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것이며 당신이 나의 팔을 자르지만 나는 그분에게서 팔을 다시얻을것이며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러나 당신은 생명을 얻는부활이 없고 저주만 있을것이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예수의 고난과 고통이 얼마나 있습니까?
예수믿는다고 핍박을 당하고 조롱당하는일이 얼마나 됩니까?
내가 잘못하고 내가 실수하고 내가 욕심내려다 욕먹고 조롱당하고 저주당하지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받는일이 얼마나 있는가말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에 동참하지않으려는 신앙자세는 죽은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당하신 고난이 느껴지고 체험되어질 때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할수있는것입니다. “나의 달려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따르는 고난에 대해 인내하는 신앙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끝까지 소망잃지않고 사는 삶을 배우자는겁니다.
1)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이런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게 되는겁니다. 36-37절을 같이 읽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제목의 책이 생키비이치에 의해서 1896년도에 발표가 되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1세기초에 기독교를 박해하던 네로황제시대에 있었던 사건중에서 귀족 비키니우스와 왕녀 리기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투기장에 끌려나와 굶주린 개와 사자 늑대에게 공격을 받지만 결단코 비명을 지르거나 고통을 호소하지않고 기쁨으로 죽어가던 그리스도인들을 “그 시대사람들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라 다시말하면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지못한 사람들이라고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겁니다.
2) 세상을 바라보지않고 사는사람
예레미야는 구약의 인물이지만 렘20:2절을 보면 매도 맞고 착고에 채이게도 하였고
자기가족들에게까지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던겁니다.
뿐만 아니라 전승에 의하면 계속되는 우상숭배에 대한 항의를 하던 예례미야를 애굽인들이 돌로쳤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전하고 돌로맞아 죽는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지않고 죽음가운데서 부활하사 오직 하나님우편에 앉아계시는 주님의 환상을 목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박해시대에는 박해를 피해 광야나 동굴로 도망하였다가 그들의 은신처에서 붙잡히기도 했는데 그들이 바로 38절에서 말하는 그들이라는겁니다. 박해를 받던시절에 그들은 문명사회에는 맞니않는사람들처럼 보였고 세상법의 보호를 받지못했으며 도리어 문명사회가 그들에게 맞지아니하는 상황으로서
시편기자가 44:22절에서 “우리가 종일 주를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라고 노래하는것과 같은 현상이었던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일이 세상에서 반드시 위안만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더좋은 것을 소망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3) 더 좋은 것을 소망하는 사람
39-40절을 다시한번 읽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바라보는 이 생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온전한 구원 즉 영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 약속에 대해 확증하고 그약속을 따라 살았던겁니다. 비록 그들이 그 약속이 성취되지는 못하고 그것을 기대하며 살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데에 얼마나 실질적이었는제 그믿음 때문에 역경과 고통 고난 박해등을 견디어 나간겁니다.
그러나 그약속이 이제 이루어진겁니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드려 대제사장직을 수행함으로서 자신을 온전한 희생제물로 내어놓으심으로서 온전함을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절을 이렇게도 해석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셔서 더 좋은 것을 마련해 놓으셨다” 우리는 다 같이 이제 제한을 받지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갈수있게 되었고 그 약속의 성취를 통해서 영구한 산업, 더좋은 부활이 포함되어진 소망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고있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니면 이 온전함은 전해질수없을겁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아니더라도 이 믿음은 전해져야 하기에 저와여러분이 이 대열에 서야할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조상의 반열을 따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붙잡고 모든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죄들을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경주해야할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은 누구나 그 행위에 있어서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만큼은 잃어서는 안될것입니다.
비록 저와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을 가지고 성취하신 약속을 끝까지 붙잡는겁니다. 아니 붙잡을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리는겁니다. 능력주시는자안에서 무엇이든지 할수있다는 신앙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인내의 신앙으로 그리고 끝까지 소망을 잃지않고 살겠다는 신앙으로 무장하면서 말입니다.
그럴 때 저와여러분에게는 이세상에서도 참된 신앙생활로 말미암은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지만 장차 재림하실 때 생명의 면류관, 승리의면류관을 받으실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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